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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Nov 06. 2024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늘은 사누르에서 유명한 빵집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Bread Basket Bakery - Sanur Bali


카푸치노 한잔과 용과 스무디볼을 주문했다. 커피가 정말 맛있었다. 용과 스무디볼도 괜찮았다. 견과류 중에 해바라기 씨앗 같은데 잇몸에 붙어서 우물우물 떼어내느라 고생하긴 했지만.

음식을 먹고 있는데 개구쟁이 꼬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둥그런 원통형 의자를 온몸으로 굴리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아들이었다면, 의자를 바닥에 굴리는 순간 바로

똑바로 앉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겠지만

내 자식이 아니니까 오히려 귀엽게 보이는 아이러니.

계산을 하러 왔다가 그 꼬락서니를 목격한 손님들도

대게 나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애 키워본 사람은 다 안다, 애들은 원래 다 저런다는 걸.

출입구까지 원통 굴리기를 하다가 결국 아빠한테 소환돼서 꼼짝없이 붙들려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아이와 여행하기에 가장 불편한 나라는 어딜까?

개인적으로 아이와 단둘이 여행하기 가장 힘든 나라는

바로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작년 겨울 아이와 단둘이 처음 국내 여행을 했다.

발리 여행 연습차, 솔직히 말하면 남편이 또 주말 껴서 출장 간다길래 홧김에 1박 2일 대전여행을 예약해 버렸다. 아이랑 국내로 해외로 많이 다녔는데, 게다가 한국인데 뭐 그렇게 어렵겠어?라고 자신만만하게 얘기했지만 사실 조금 쫄렸다. 처음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은가.

빵지 순례 명소이면서도 노잼 도시로 유명한 대전을 선택한 제일 큰 이유는 바로 기차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국립중앙과학관을 비롯해 아이랑 가볼 만한 장소도 꽤 있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기차에 올라타 예약한 좌석으로 간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우리 자리에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서로 자기 자리라고 이야기하다 결국 기차표를 까보았는데, 오 마이 갓!! 이런 초짜나 할 법한 실수를 해버린 거다. 기차 예약 시간이 오늘이 아니라 다음날로 되어있었다. 황급히 사죄를 드리고 기차가 출발하기 직전 아이손을 잡아끌고 탈출했다. 영문은 모르지만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한 아이 눈에 눈물이 고였다. 패딩 안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고 머리는 새 하얘졌지만 심호흡을 하고 떨리는 손으로 고속버스앱을 열었다. 다행히 한 시간 뒤에 대전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좌석 두 개가 남아있었다. 아이랑 떨어져 앉아야 했지만, 그런 걸 따질 틈이 없었다. 예약을 한 후 서둘러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결국 계획했던 도착 예정시간보다 두 시간 뒤에야 대전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건 솔직히 누가 봐도 나의 어처구니없는 실수 탓인데, 그걸로 한국이 아이랑 여행하기 힘든 곳이라고 할 수 있나? 사실 그 이후로는 별 탈 없이 돌아다녔고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내가 힘들다고 느낀 건, 인프라가 아니라 긴장감 때문이었다. 아이를 혼자 데리고 다니다 보면 지도도 찾아보고  아이도 챙기고 짐도 챙겨야 하는데, 거기다 사람들 눈치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게 너무 피곤했다. 행여 ‘맘충’ 소리 들을까 봐, 누가 아이 때문에 인상 쓰고 기분 나빠할까 봐 어딜 가나 조심스러웠다. 아이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안절부절 불편했다. 그저 말할 때 목소리가 크고 크게 웃을 뿐인데 뭔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대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는 아이가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지 않도록 해달라는 멘트를 들으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재잘재잘 질문을 해댔고 아이 목소리가 조금만 커져도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주의를 주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계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할머니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애가 원래 그렇지 뭐. 괜찮아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애들을 너무 훈육하지 않아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점점 아이에 대한 tolerance(관용, 아량, 용인)가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에게 우호적인 분위기나 태도를 느끼기가 어렵다.

이런 말을 하면 분명,

“네 새끼인데 왜 다른 사람이 예뻐해줘야 해?”

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새끼’라서 예뻐해 달라는 게 아니라,

작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자연스레 나오는 기분 좋음, 부드러움 그런 것들이 결여되었다는 말이다.


그 이후에 아이와 단 둘이 보라카이 여행을 갔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 그곳에서 단 한 번도 아이와 여행하는 게 불편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디.

아이가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 큰 소리로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고 함께 웃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는 행여 아이 목소리가 조금 커져서 누군가가 언짢아할까 봐 눈치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 아이’에게 친절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곳이기 때문에

어딜 가도 마음이 편했다.


이곳 발리도 마찬가지다.

느리고 불편한 것 투성이지만

다정하고 따뜻하다.

특히 작고 어린것들에게 포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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