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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Nov 11. 2024

뜨리 마까시(Terima Kasih)

사마 사마(Sama-sama)

한 달 동안 정들었던 Pondok Ayu를 떠나 아야나 리조트로 옮기는 날이다. 숙소에 택시예약을 부탁했더니 지인을 소개해줬다. 숙소 직원들만큼이나 미소가 다정한 분이었다. 아이 학교에 들러 픽업하는 것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일주일 전부터 벨라와 헤어져서 너무 아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는, 학교에서 나와 아야나로 향하는 택시를 타자마자 오늘 벨라를 봤는지 물었다. 오늘 아침부터 벨라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떠나기 전날 아이가 하교했을 때 벨라가 숙소에 있었다. 벨라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쓰다듬어 주고, 함께 사진을 남겼다. 아이 체조수업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벨라가 조식당에 있길래, “벨라!”하고 큰 소리로 불렀더니 “야옹 “하고 돌아봤다. 여느 때처럼 총총총 달려오지 않길래 봤더니, 숙소 매니저인 카덱이 통조림을 들고 있었다. 특식은 참을 수 없지! 30분 뒤, 세탁한 빨래를 받아 들고 방으로 걸어가는데 벨라가 보였다. “벨라!”라고 부르는 소리에 총총총 달려오는 모습이란! 이렇게 친절한 고양이라니! 한참을 우리 방 앞에 누워있다가 사라졌다. 이곳은 고양이마저도 친절한 신들의 섬, 발리이다. 


아야나 리조트에 체크인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한 달간 사누르에 있으면서 해 떠있을 때 비를 맞아 본 적이 없는데 짐바란으로 옮기자마자 폭우가 쏟아졌다. 그것도 큰맘 먹고 온 고오급 리조트에서. 비가 막 쏟아지는데 신기하게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아무 이유도 없이 마당에 나가 소리를 지르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어떤 날은 개미가 비에 맞아 불쌍하다며 손수 땅을 파서 개미가 비에 맞지 않게 묻어주었다. 배고플까 봐 풀도 뜯어서 야무지게 함께 넣어주었다. 그런 기억들이 순간순간 피식 웃음 짓게 만든다. 아이에게 말했다.

“언제 또 비 맞으며 수영하겠어? 그치?”

아이도 엄마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맞아. 어차피 괜찮아. 우린 이미 젖었으니까.”

둘이 수영장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깔깔깔깔 웃어댔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빗방울이 수면 위로 통통 튀기는 모습만 봐도 재밌었다.


날이 어둑어둑 해지자 드디어 아빠가 왔다.

아들은 한 달 만에 보는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우리 아들로 말할 거 같으면

아빠가 퇴근하고 와도 눈길도 안 주고,

심지어 일주일 넘게 출장을 가도 영상통화 하기 귀찮다고 도망 다니던 녀석이었다.

그래서 출국할 때 아빠 품에 안겨 울던 모습이 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빠는 아들이 품에 안겨 울어서 내심 기뻤다고 한다.

늘 홀대받다가 그런 대우를 받으니 감격한 듯했다.

세 달간 떨어져 있어서 새삼 애틋해졌는지 아빠랑 영상통화하자고 하면 쪼르르 달려오는 건 기본이고 엄마랑 아빠랑 조금이라도 얘기하면,

“아빠는 엄마하고만 얘기할 거면서, 흥!“

금세 토라져서 둘이 영상통화할 때 나는 묵언수행을 해야만 한다.

뜨거운 부자 상봉이 끝나고 서둘러 예약한 식당으로 갔다. 원래 노을이 정말 멋진 곳이라고 하는데 구름이 많아서 그런지 엄청 인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신선한 해산물은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었다.

물론 가격도.


다행히 무시무시한 가격을 정신 승리로 이겨낼 만큼 분위기나 음식 맛도 좋았고 무엇보다 서버들이 너무 친절했다. 사누르에 있다가 왔다고 했더니 자기 집이 바로 그 근처라며 환하게 웃는데,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는 미소였다. 고급 리조트라 당연히 서비스 교육을 엄청 받았겠지만, 발리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는 좀 남다르다.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발리 사람들 같은 웃음을 지어주진 않으니까. 베트남 출장을 자주 가는 남편도 말했다. 여기 사람들의 미소는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테니스 레슨에서 만났던 현지인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발리 사람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삶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매일 아침 찬당 사리(Canang Sari)를 신들에게 바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스란히 그들의 넉넉한 삶의 태도가 담겨있다. 고급 리조트에 있든, 4만 원짜리 숙소에 있든 발리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다정하고 따뜻하다. 

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다 보면 나도 절로 웃음 짓게 된다. 숙소에서 직원들을 마주칠 때마다,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마다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말하다 보니 뭘 하지 않아도 마음에 행복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체크인하자마자 그리고 체크아웃하기 전까지 꽉꽉 채워서 수영을 했다. 남편이 오니까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 물이라면 환장하는 남편이 아들과 수영장에서 놀 동안 선베드에 누워 낮잠을 잤다. 아들은 수영 잘하는 아빠를 보고 자기도 잘하고 싶어 졌는지, 발이 닿는 수영장에서 처음으로 튜브를 벗어던졌다. 코에 물들어갈까 무서워 코를 쥐어잡던 손도 과감하게 떼고 물에 몸을 맡긴 채 뜨는 연습을 했다.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큰 즐거움이다. 그렇게 수심이 얕지 않았는데 어느새 아들의 키가 그렇게 컸다는 것도새삼 실감이 났다.


아이가 문득 말했다.

“발리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하니까 좋아.”

그거면 됐다.

학교에 보내고는 있지만 갑자기 영어를 유창하게 잘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기대는 수리수리 마수리 얍! 같은 그런 거다.

수영도 배우고 체조도 배우지만 마찬가지로 짠! 하고

실력이 월등히 늘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경험의 가치를 믿는다.

새로운 것들에 겁 없이 도전하고

그 속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어느 순간 이게 삶의 태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발리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다정함이 베어 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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