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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머치드러거 Apr 11. 2018

하;; 내 연애의 기억 감독 옥상으로 따라와

사랑합니다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감격에 차서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이 덜덜 떨리네요. 놀라지 마세요. 이전 글이 자그마치 조회 수가 15! 15를 달성했습니다!!! 여러분, 박수는 이럴 때 치는 겁니다. 여러분이 모모카 짱 앞에서 좋다고 치는 박수는 물개와 다를 바 없죠. 지극히 본능적인 욕구에서 나오는 걸 아셔야 해요. 아무튼 정말 15지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조회수마저 이렇게 드립을 칠 수 있도록 도와주다니 오늘 밤에는 하늘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자야겠습니다. 위에 있는 분은 더욱 정진해주세요.



 무슨 개소리를 이렇게 길게 하냐고요? 걱정 마세요. 제게는 아직 할 개소리가 비자금처럼 남아있습니다. 편하게 봐주세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자들이 너무 좋아해서 공중제비를 연거푸 돈다는 군대 얘기를 준비했습니다. 예비역 선배들이 술에 잔뜩 꼴아서 풀린 눈으로 군대 얘기를 하려고 들더라도 피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들은 그저 지금까지의 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얘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복학을 하고 화장실에서 김밥을 먹으며 단무지 빼 달랬는데 안 빼준 아줌마를 괜히 원망하는 그들도 서서히 깨닫고 있을 겁니다. 현실은 냉혹하고 여자 친구는 환상의 동물이라는 것을요. 인간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앞으로 더 힘든 일들이 닥쳐올 예비역 선배를 좀 더 응원해주세요. 대신 '지금 얼마나 해놓은 게 없으면 저렇게 군대 얘기만 맨날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하셔도 말리지 않겠습니다. 팩트니까요! 하하! 네? 본인 얘기냐고요? 그 입 다무십시오. 여러분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될 수도 있습니다.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주말이니 당직사관은 TV 시청시간을 2시간 정도 주었죠. 저는 이등병이었고 TV가 제일 안 보이는 자리를 쓰고 있었습니다. 이등병의 숙명이랄까요. 당연히 누워서 고개만 살짝 틀면 TV가 한눈에 보이는 자리는 최고 선임 차지였겠죠? 굳이 그 자리의 장점을 따지자면 그거 하나였지만, 그 자리는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무튼 최고 선임은 TV 시청 시간이 아까운지도 모르고 볼 게 없다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죠. 저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지만 가만히 있었습니다. 이등병이니까요.^^


 그때 선임은 씨쥐뷔 채널에서 리모컨을 멈췄습니다. 영화 채널이니 당연히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겠죠? 보아하니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난 것 같았습니다. 세계 최고 영잘알인 저는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고로 영화는 처음부터 제대로 봐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닭다리 2개를 혼자 다 처먹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영화 시간에 늦는 건 용서를 못합니다. 저 영잘알 맞죠? 맞죠 맞죠? 내 말 맞죠?



 더 열 받는 건 그 영화가 볼 가치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목만 놓고 보면 그저 그렇고 흔해 빠졌으며 진부하기 짝이 없고 길가의 돌처럼 발에 차이는 '양산형 한국 로맨틱 코미디'였거든요. 세계 최고 영잘알로서 이런 영화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뭐 이딴 영화를 틀어놓냐고 역정을 냈죠. 물론 마음속으로요. 이 추운 날씨에 밖으로 불려 나가 저보다 어린 선임에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저는 수족냉증이 있습니다. 이불 밖에서 치명적이죠.


 그런데 정확히 30분 후에 생활반에 있던 모두가 그 영화에 빠져들었습니다. 물론 저도 포함해서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뭐가 나오길래 군인들이 영화에 빠져든 걸까요? 맥심이 찬조출연이라도 한 걸까요? 영화 제목은 '내 연애의 기억'입니다. 송새벽, 강예원 주연이죠. 극장 성적은 4만 5천여 명입니다. 실패한 영화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정도로 실패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00만 관객은 이 영화를 봐야 했어요. 자, 이제 이 영화를 안 보신 분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제가 이 영화를 아무런 정보 없이 접했듯이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뭐, 이 영화를 앞으로도 볼 일이 없겠다 싶으신 분들은 읽어도 큰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손해지 제가 손해입니까? 하지만 태평양급 마음을 지닌 저는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충고를 드리고 싶네요. 뒤통수를 알루미늄 빠따로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하는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죠. 이 영화는 그런 기분을 경험시켜주는 몇 안 되는 영화입니다.




영화 '내 연애의 기억'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는 글입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를 맡은 마케팅 팀은 골머리 좀 썩었을 겁니다. 반전 영화를 대놓고 반전 영화라고 홍보하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죠. 반전 영화를 제일 재밌게, 그리고 감독의 의도에 맞게 즐기는 방법은 반전이 있다는 걸 몰라야 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지금까지 여자 친구가 없을 걸 미리 알았다면 인생이 굉장히 따분했겠죠? 여자 친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희망, 그것 때문에 우리는 여자가 말만 걸어도 그녀와의 노후계획을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는 겁니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여러분 때문에 공지하는 사람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전설의 이누공


 안타깝게도 포스터에 '반전 로맨스'라고 적혀있네요. 어쩔 수 없었겠죠. 저는 이해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충분히 와 닿지만,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내 연애의 기억'이라는 제목은... 음... 아무래도 임팩트가 약하죠. 주연 배우 라인도 연기력으로는 흠잡을 수 없지만, 티켓 파워가 강하다고는 할 수 없는 배우들입니다. 송새벽과 강예원의 마지막 흥행작을 꼽자면 꽤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죠. 마케팅 팀은 울면서 겨자먹기로 '반전'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을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결과는 실패였지만요.


 굳이 줄거리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다 아시는 내용만 말해봤자 지루할 뿐이죠. 절대 제가 귀찮은 건 아닙니다. 저야말로 근면성실의 아이콘이죠. 성실하게 결석을 했던 수업에 오랜만에 나갔더니 교수님이 무슨 일 있냐며 걱정을 해주실 정도입니다. 대신 송새벽에 대해 얘기해보죠. 강예원에게 좀 미안하지만 송새벽은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말 그대로 두 얼굴을 가진 것만 같은 배우입니다. 보신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아실 거예요.


 세상 어떤 사람이 결혼을 앞둔 행복한 남자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를 동시에 연기해낼 수 있을까요? 그것도 이분법적으로 튀어 보이지 않도록 말이죠. 저 두 인격을 따로 연기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여러분도 평소에 하고 있잖아요? 학교에서는 화장실에서 단무지 씹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소심하게 김밥을 먹지만, 방구석에서는 엄마에게 못하는 소리가 없죠. 방천화극을 든 여포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 송새벽은 마치 쌍쌍바같죠. 쌍쌍바는 스틱이 두 개입니다. 평범한 배우는 스틱 두 개를 잡고 쪼갠 뒤에 한쪽을 먹죠. 송새벽은 스틱 두 개를 잡고 쌍쌍바를 한꺼번에 베어 뭅니다. 영화 후반부에 송새벽이 강예원에게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고백하는 장면 기억하시나요? 마치 일상인 듯 무덤덤하게 자신의 살인 행적을 털어놓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에게서 살인자의 얼굴을 봅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리숙하고 어눌한 송새벽의 말투를 통해 그가 여전히 강예원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송새벽의 상반된 인격이 절묘하게 뒤섞여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명장면입니다. 정말 대단한 배우예요. 


출처: 네이버 영화


 송새벽의 연기 말고도 제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권 감독의 연출입니다. 영화의 분위기가 비교적 가벼운 중반부까지 연출이 참신하게 통통 튀는 느낌이죠? 제 기준으로 꽤 웃긴 장면도 있었고요. 제가 다른 한국 로코물을 안 봐서 확언은 못하겠지만, 다른 한국 영화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B급 감성이 전반적으로 넘쳐흐릅니다. 아! 그런 영화가 하나 있네요. 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 이 영화도 대단했죠.


 이 밝은 분위기가 약간의 미스터리 요소가 나오는 중반부까지 이어지면서 관객들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송새벽의 숨겨진 비밀이라고 해봤자 불륜이겠거니 한 거죠. 그래서 후반부의 스릴러가 더욱 돋보일 수 있었습니다. 외에도 내레이션, 애니메이션 감독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이런저런 참신한 시도를 많이 해보려 것이 보이죠.


 이권 감독은 영화의 각본을 처음 받아 들었을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내 연애의 기억'은 절대 연출하기 쉬운 작품이 아니죠.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 두 장르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독특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서는 꼼꼼한 연기 디렉팅이 필요합니다. 잠깐 이권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볼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 남자 아이돌에게 왠지 모를 적대심을 품고 있던 중학생 시절, 이 영화는 물어뜯기 좋은 소재였습니다. 저걸 극장으로 보러 가는 슈퍼주니어 팬들이 정말 한심하게 보였죠. 물론 안 봤습니다. 앞으로도 볼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궁금하긴 하네요. 역시 이 영화의 평이 좋지는 않지만, '의외로 재밌다'는 평이 조금씩 보입니다. 심지어 영원한 영잘알의 동반자, 이동진 평론가는 별점 3점을 줬습니다. 사실 기획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이런 영화를 잘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죠. '세븐틴', '평화의 시대', '긴급조치 19호'는 다들 기억하시죠? 이 영화를 이권 감독이 연출했었다니 살짝 놀랐습니다.


 긴 공백기 이후 '닥치고 꽃미남 밴드'라는 tvN 드라마의 감독을 맡았네요. 또 꽃미남이라니, 또 타깃이 지나치게 명확하다니. 이 드라마 이후 맡은 작품이 '내 연애의 기억'입니다. 멋지네요. 이권 감독은 각본을 받고 드디어 자신의 재능을 펼칠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 잘 해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영화의 실패가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권 감독이 빛을 볼 기회였는데 말이죠. 그래도 제작사들은 이권 감독을 눈여겨봤을 겁니다. 다음 작품은 뭘까요?



출처: 네이버 영화


 이로써 이권 감독이 SM에게 직박구리 폴더를 들킨 것이 틀림없다는 제 가설이 맞아떨어졌습니다. SM.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 이 정도면 '내 연애의 기억'에 왜 아이돌이 안 나왔는지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혹시 이권 감독은 역하렘물에 지나치게 빠져있는 건가요? 이권 감독의 필모그래피의 마지막이 이 웹드라마였을 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아, 충무로의 야심 넘치는 한 젊은 감독이 역하렘의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갔구나.


 그런데!


출처: 네이버 영화


 

 올 것이 왔습니다. 장르는 스릴러. 무려 공효진 주연. 스틸 사진을 보니 이제 막 시나리오 리딩을 마친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개봉하겠죠? 현재 한국 영화는 한창 스릴러가 양산되는 중입니다. 예전에 로코물이 쏟아져 나왔던 때처럼 말이죠. 저는 이권 감독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다 똑같은 로코물의 바다에서 한 마리 학처럼 빛났던 '내 연애의 기억'처럼 이 작품도 빛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부디 이 작품이 성공해서 이권 감독의 영화를 많이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권 감독의 B급 감성과 잘 맞는 것 같거든요. 이런 비주류적인 감성을 갖고 있는 보니 이권 감독도 분명 우리와 같은 부류일 겁니다. 역하렘 좋아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사진 볼까요? 파오후! 쿰척쿰척!


출처: MBN

? ?? 뭐야? 아, 사진 기사가 실력이 좋은 것일 수도 있죠. 우리도 여기저기 깎고 비틀면 대충 저런 식으로 비슷하게 나올 겁니다. 한 장 더 보도록 하죠. 일단 침착합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여러분, 기만자입니다. 이런 하드웨어를 가지고 왜 비주류 인척 코스프레를 합니까? 분노가 들끓어 오르네요. 죽창을 드세요, 여러분. 하늘을 향해 높이 들되 언제든지 적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도록 정면을 향해 45도 정도 기울여주세요. 특히 앞사람 등을 찌르지 않도록 주의해주세요. 등드름 터지면 옷 빨기가 매우 귀찮아집니다. 자, 이 기만자의 영화를 타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쿰척댈 동안 이권 감독은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옆으로 길어질 동안 이권 감독은 키를 키웠습니다. 우리가 팔짱 낄 수 있었던 건 아스카 짱이 그려진 베개뿐이었지만 이권 감독은 미녀 배우와 팔짱을 끼고 있네요. 일단 제 장래 희망을 영화감독으로 바꾸겠습니다. 여러분, 비주류는 우리의 것입니다. 인싸가 비주류 코스프레를 한다면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는 러닝머신 위뿐입니다.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기만자 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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