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머치드러거 May 03. 2018

[숲 속의 작은 집]이 특별한 이유_3

[결론]

 [본론]에 이어 계속됩니다.



 우선 결론부터 짓자면 이렇다. 별 생각없이 이 프로그램을 보게 됐지만,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 같다. 한편 CJ의 문화계 독점이 문화의 다양성을 없애고 있다며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런 다양성도 CJ에서 나오는 씁쓸한 현실, 일단은 제쳐 두도록 하자.


 본래 예능 보는 것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나영석의 프로그램도 삼시세끼나 윤식당을 제외하고는 보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들도 누군가 같이 보자고 해서 본 것이지, 내가 원해서 본 것은 아니었다. 1시간 정도 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볼 바에는 차라리 짧은 영화 한 편이나 드라마를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왔다. 굳이 예능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필요 없이 SNS를 좀만 찾아봐도 화제가 되었던 부분을 클립으로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내가 예능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방식은 그렇게 지속될 줄만 알았다. 과제만 아니었다면 '숲 속의 작은 집'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인정하고 들어가야 할 부분은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또 나영석의 마법에 걸렸다는 것이다.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제시하는 판타지는 내가 꿈꿔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삼시세끼나 윤식당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아, 그래. 저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네.’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면, ‘숲 속의 작은 집’은 ‘저렇게 사는 거구나.’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내가 바라던 삶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누가 마다할까. 뛰어난 영상미와 기존 예능에는 없었던 ASMR 음향효과까지. 사실 이미 객관적인 비평은 힘들 것 같다. 제대로 ‘취향 저격’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영상이 시종일관 나오는데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없을까.

 

 그러나 세상 만사가 그렇듯이 ‘숲 속의 작은 집’에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의외로 호불호가 갈리는 반응이 심심찮게 나온다. 비판적인 의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는 바로 ‘제작진의 지나친 개입’과 ‘내레이션’이다. 출연자들이 고립된 집에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보고 싶었는데 제작진이 ‘행복추진위원회’ 랍시고 출연자들의 자유로운 행동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청자들에게 이렇게 해야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듯한 프로그램의 태도가 불편하고,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내레이션이 몰입을 깬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유들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존중한다. 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오히려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개입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션이라도 주지 않았다면 방송할 수 있는 분량을 뽑지 못했을 것이다. 많은 짐을 싸온 박신혜에게 아무런 개입이 없었다면, 시청자는 그저 한적한 곳으로 휴가 온 듯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을 게 뻔하다. 소지섭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아마 1박 2일 동안 스테이크를 굽고 책을 읽다 자는 일상을 반복했을 것이다. 아예 지령을 내리는 장면을 편집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듯한 모습이 오히려 인위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본인이 뭘 해야 행복을 느끼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적으니까.


 그리고 제작진은 단 한 번도 행복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피실험자들에게 상황을 제시하고 관찰한 후, 뭘 느꼈는지 인터뷰한다. 이게 제작진이 프로그램 내에서 하는 일의 전부다. 어떻게 생각해도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내레이션 또한 몰입을 깨트리기보다는, 단조로운 프로그램의 흐름에 생기를 불어넣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더욱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게 했다고 생각했지만, 취향 차이로 그게 아닌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렇게 프로그램의 본질적인 형식에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대중을 폭넓게 사로잡는 것에 실패했다는 의미다. 나영석의 프로그램 치고는 미미한 평균 3% 정도의 시청률이 그것을 방증한다. 물론 이러한 수치가 방송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이 화제성이 부족한 것은 확실하다. 사실, '숲 속의 작은 집'에 주관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누군가에게 이 프로그램을 같이 보자고 말하는 것은 약간은 꺼려진다. 역시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의 처음 시도된 기획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는 케이블에서 결코 낮다고는 할 수 없는 시청률이다. 아직 이 프로그램이 대중적으로 실패했다고 단정짓기는 이르다. 나영석 PD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에게 말초적인 웃음을 줬던 '신서유기' 부터 한없이 담백한 '숲 속의 작은 집'까지. 나영석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다소 자가복제의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있지만 끝까지 자기 소신대로 프로그램을 이끌어줬으면 좋겠다.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을 마무리 지은 지금, 나영석은 누가 뭐래도 지금 대한민국 최고의 PD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적인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YOLO나 소확행, 스몰 럭셔리 등 행복에 관련된 키워드가 유행하는 것은 현 시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하기를 원하면서도 행복해지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행복이란 것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곁에 항상 머물러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인 방송에서 인간의 행복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하고 행복의 방향성을 우리에게 제시해주는, ‘숲 속의 작은 집’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반갑다. 그것도 프라임 시간대인 금요일 밤 10시에. 다른 방송사에서도 단순히 '숲 속의 작은 집' 포맷을 따라 하기보다 행복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이 기획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숲 속의 작은 집]이 특별한 이유_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