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즈 3.24 2면 기사
< 뉴욕 뱅크시 미술관에 소장된 뱅크시의 " 꽃을 던지는 사람(Flower Thrower)". 뱅크시가 무명 시절 마크 제이콥스 광고판을 무단 수정한 죄로 체포되고 풀려난 후에,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꽃을 던지는 사람"을 발표합니다. >
젊은 거리의 예술가가 페인트 캔을 들고, 새벽이 오기 전 한밤중에 지붕에 올라가 패션 광고판을 불법으로 다시 그리기 시작합니다.
때는 2000년 늦은 여름, 장소는 뉴욕에서 파격적인 문화가 있는 지역인 Meatpacking District. 여기에서 매춘과 S&M 레더 바(반문화의 상징, S는 사디즘, M은 메조히즘의 약자)와 같은 하위문화는 자갈길 위에서 악취와, 피와, 기름을 공기 중으로 퍼뜨리는 식당들을 따라서 함께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옥외광고판을 불법 훼손하는 주인공은 그에게 눈길을 주는 2~3명의 매춘부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 아마 그 매춘부들은 무명의 예술가가 동성애에 반대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 아이비 브라운의 말입니다. 아이비 브라운은 그 젊고 열정적인 예술가에게 옥외 광고판을 무단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브라운 여사는 그 옥외광고판이 설치된 빌딩 내 공간을 임대합니다.
그러나, 그 예술가가 작업을 마치기 전에, 경찰이 나타나서 그를 현장에서 체포합니다.
그 체포는 지극히 정상적인 경찰의 행위였습니다. 그는 맨해튼 법원에서 기소인정여부 절차를 밟고, 밤새 술 마신 후 옥외 광고판을 불법 훼손하였다는 자술서를 작성하고 서명합니다.
그 자술서의 서명은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져서 그 예술가의 last name는 해독이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술서에 같이 첨부된 법원 문서에는 그 젊은 무명 예술가의 이름이 선명하게 나옵니다. : 로빈 거닝햄
정부당국은 당시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최근 로이터가 진행한 취재에 의하면, 그들이 당시 체포한 예술가는 수천만 불에 작품이 거래되는 21세기의 가장 성공한 거리 예술가 뱅크시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뱅크시의 철저한 익명성은 전 세계 미술계를 그의 작품만큼 매혹시켰습니다.
그의 이름(로빈 거닝햄)이 뉴욕 법률시스템에 입력된 후, 그의 이름은 공공정보의 일부가 되고, 누구든 검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단 누군가가 이런 배경을 안다는 전제 하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후, 누군가가 그런 행동을 진행합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법원 문서를 로이터는 추적합니다. 긴 조사 끝에 로이터는 26년 3월, 당시의 체포 대상인 1973년 영국 브리스톨 출신의 거닝햄이 뱅크시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로이터는 체포 문서와 법원 서류를 심층 분석하여, 2008년 'Mail on Sunday'의 보고서와 다른 매체의 기사 이후 회자되던 소문을 사실로 확정합니다.
뱅크시의 대표이사는 뱅크시의 본명이 로빈 거닝햄 혹은 다른 이름임을 오랫동안 부인해 왔습니다. 뱅크시의 작품을 보증하는 기관인 Pest Control은 로이터가 보낸 이메일에 대한 답변에서 자사 혹은 뱅크시 혹은 뱅크시의 전문변호사 마크 스티븐 모두 답변을 거부한다고 적었습니다.
스티븐 변호사의 런던 사무실로 보내진 질문들에 대한 회신은 아직 로이터에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담당변호사 마크 스티븐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 예술가 뱅크시는 로이터가 보낸 질문들에 포함된 세부 내용들이 사실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의 체포 사건은 젊은 예술가의 실수라고 로이터는 정리하였습니다.
2000년 당시, 그는 젊은 새내기 무명의 예술가로서 아직 자신만의 voice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는 최근 들어서야 그는 최근에 그의 활동명인 Banksy 외에, 뱅크시 특유의 유머가 담긴 Robin Banks, 그리고 언론/대중이 그를 지칭할 때 그가 격식 차리면서 사용하는 변주된 호칭 Mr.Banks를 활용하여 다양한 작품활동을 통해서 거리 예술 스타일과 그를 유명하게 한 이미지를 경지에 올려놓기 시작하였습니다.
2000년 체포 당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익명성이죠. 그 당시 경찰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 그는 실제 본명을 직접 밝히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미국 땅에서는요. ", 당시 뉴욕경찰서의 기물파손담당팀 팀장 스티브 모나의 말입니다.
" 그는 풋내기 범법자로서 아직 우리의 레이더망에 올라올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 이제는 정년퇴직하여 26년 된 체포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스티브 모나의 말입니다. " 우리가 별도로 통보받거나 혹은 통보받지 못했더라도, 우리는 그 사건을 그냥 단순 경범죄로 넘겼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초범이었으므로 그를 다른 사건에 연결시킬 ID 자체가 아직 내부망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
구체적인 ID가 없다면, 뱅크시의 옥외광고판 훼손은 흔하디 흔한 낙서범죄 혹은 술 취한 후의 난동으로 판단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뱅크시의 첫 범죄는 경감되어 5일 동안의 봉사활동으로 마무리됩니다. 이후 뱅크시는 자신의 완벽한 익명 활동을 통해 더 이상 체포되지 않습니다.
Meatpacking District의 중심인 허드슨가 675번지 빌딩은 삼각형 단면으로 인해 "작은 다리미 빌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물은 23번가의 더 유명한 닮은 꼴 빌딩과 매우 유사합니다. 이 구조는 뉴욕시의 여행자 친화적인 맨해튼 자치구의 매력을 즉, 럭셔리 부티크, 매끈한 호텔 그리고 애플 스토어에 의해 둘러싸여 있습니다. High Line과 Chelsea Market도 근처에 있습니다.
2000년 당시 Meatpacking District는 주거하기에 적합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작은 다리미 빌딩(Little Flat iron Building)"은 지하세계 반문화의 중심이었습니다. 빌딩 내에는 Manhole클럽과 Hellfire클럽이 있었고, 그 빌딩은 edgy 갤러리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뱅크시의 친구이면서, 그 빌딩에 거주하고 갤러리를 운영하는 브라운 여사는 지난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저는 예술세계 인맥을 통해 뱅크시와 알게 되었습니다."
2000년 뉴욕 패션 주간 동안 브라운 여사는 최근 자신의 빌딩 지붕에 있는 걸려있는 끔찍한 옥외광고에 대해서 뱅크시에게 설명합니다. 그 광고판은 마크 제이콥스 옷 광고였는데, 핵심 구절과 함께 젊은 남성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핵심구절은 " 소년들 이어 마크 제이콥스를 사랑합시다 "였습니다.
" 모든 게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 브라운 여사의 회고입니다. " 저는 당시 그 패션광고가 건물을 훼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녀는 마크 제이콥스의 서명을 싫어하고, 뱅크시에게 저 끔찍한 광고를 덮을만한 것을 그릴 것을 요청했습니다.
" 저는 말했어요: 그래요, 뱅크시. 그 지붕 위의 광고가 저를 정말 짜증 나게 합니다. 당신이 거기에 어떤 예술활동을 하고 싶나요? "
"그가 답했죠: 네에, 한번 확인해 볼게요. ", 그녀의 말입니다. " 뱅크시는 그 서명을 응시하면서 거리를 가로지르는 Gaslight Lounge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
" 저는, 이것이 그가 하려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정찰하였습니다. ", 그에게 예술적 자유와 예술적 의사결정권을 제공한 브라운 여사의 말입니다. " 그가 시도한 그림은 탁월했습니다. 저는 단지 그가 어떤 멋진 것을 만들어내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
뱅크시는 거리 예술에 몰입하였습니다. ; 그래서 그는 추후 자신을 유명하게 해 준 탁월한 stencile style( 미리 종이나 판을 내려온 후 스프레이만 뿌리면 끝나는 미술화법)과 관련하여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때였습니다.
2000년 당시의 법원 서류는 뉴욕시에서의 뱅크시의 초기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입니다. 그는 주거지를 묻는 정부당국에 자신이 Carlton Arms Hotel에 머물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호텔은 예술가들이 호텔방을 꾸며주면 공짜로 묶을 수 있게 해주는 관행으로 유명한 맨해튼의 핫 스팟이었습니다.
당시 옥외광고판에 가한 데미지는 1500불을 초과하였기 때문에 (법적인 비용까지 합하면 총손실은 1742.82불까지 증가) 법원은 처음에는 중죄를 뱅크시에게 선고합니다. 이후 여러 사유로 인해 감형이 되어서 사회 봉사 활동과 벌금 310불로 최종 선고됩니다.
당시 뱅크시가 묶던 Carlton Arms Hotel의 야간 짐꾼인 로버트 클라크는 1995년에 뱅크시와 친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 아마 그들은 자신들이 나중에 이렇게 유명하게 될 예술가가 철창신세를 지도록 했다고 지금 자책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 그는 영국 브리스톨로부터의 전화인터뷰에서 그 체포 사건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클라크는, " 뉴욕 시가 뱅크시로 하여금 탁월한 그만의 스타일과 익명성 활동을 발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뱅크시는 체포를 피하기 위해 수 초 안에 미리 오려온 종이 판에 페인트를 뿌린 후 다시 나타나서 경찰이 이를 발견할 때까지 지켜보는 경지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죠. "라고 덧붙입니다.
2000년 여름밤 경찰이 뱅크시를 체포한 후, 브라운 여사는 어떤 탐정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회고합니다. " 우리는 당신의 손님이라고 자칭하며, 자신이 당신 소유 빌딩의 지붕에 어떤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지금 데리고 있습니다. "
법원 서류에 의하면, 뱅크시는 1500불의 보석금을 지불하기 전까지 여권을 압류당해야 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체포 당일 오전만 유치장에 있었습니다.
" 몇 시간 후, 그는 풀려났어요. 저는 참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 브라운 여사의 말입니다.
그녀는 그토록 빨리 석방된 데 대한 뱅크시의 설명을 기억합니다. : 그는 여성 판사를 매료시켰습니다.
" 저는 어려움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그의 예술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브라운 여사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