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 다빈치코드방식의 접근

뉴욕타임즈 3.12 문화면 기사

by 정재욱

2020년, 이탈리아 제노아의 미술 경매장. 100년 전 쯤으로 추정되고 원작자 미상의 '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 ' 작품이 대략가 2,300 불 ~ 3,500 불 ( 325 만 ~ 525 만 원 )로 경매에 올라갔으나 낙찰엔 실패합니다.


< 원작자 미상의 '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 ' 작품 >



4년이 지난 2024년, 다시 이탈리아 제노아 미술 경매장. 두 명의 수집가는 동일 경매인을 통해 이 Pieta 작품을 35,000 불 ( 5250만 원 ), 즉 4년 전 가격의 10배 가격으로 구입합니다. 4년 뒤에서야 구입한 이유는 이 작품이 가치가 더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 관점의 예감입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 두 명의 수집가들은 기술적 분석과 미술사 연구를 통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이번 작품이 미술사 측면에서 주요 발견임을 600페이지 보고서에 공유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 벨기에 왕립 미술관의 전 관장이던 마이클 드라게는 원작자 이상의 '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 ' 작품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제안합니다.


< 제노아 경매장에서 거래된 그 작품이 미켈란젤로 작품임을 주장하는 600페이지 보고서의 저자, 마이클 드라게 >




같은 주, 이탈리아의 프리랜서 미술사 연구가 발렌티나 살레르노는 로마에 있는 성 아그네스 성당의 바실리카 (끝부분이 둥그렇고, 내부에 기둥이 두 줄로 서 있는 교회 부속 건물)에 있는 예수의 대리석 흉상이 미켈란젤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온라인 글을 올립니다.


< 로마에 있는 성 아그네스 성당의 바실리카에 있는 예수의 대리석 흉상 >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다비드상을, 그리고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려낸 지 수 백 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잊혀졌던 그의 작품들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것이 가능한 걸까요? ( 마이클 드라게의 주장처럼 ) 미켈란젤로는 몇몇 작품들이 이단적 성격을 보여서 교황에게 보복당함을 두려워하여 그 작품들을 꽁꽁 숨겨놓은 것일까요?


이는 흥미로운 추정입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전문가들은 진실을 알면 흥미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 즉, 그 작품들은 실제로 미켈란젤로가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탈리아 피사에 있는 스콜라 노르말 슈페리오레 대학의 미술사 교수이자 미켈란젤로 전문가인 프란세스코 카그리오티의 말입니다. " 다빈치 코드 소설의 저자 댄 브라인이 연상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휘장 혹은 유화 작품 밑의 캔버스에서 어떤 숨겨진 비밀을 찾습니다. 항상 그들에겐 스릴 넘치는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마치 셜록 홈스 소설처럼요. "


카그리오티의 말이 계속됩니다. " 이런 접근은 미술사가 아닙니다. 미술사는 아주 느린 과정입니다. 그리고 예술가의 진품들은 수십 년간 축적됩니다. 그저 며칠이 걸리는 게 아닙니다. "


일반적으로 새로운 발견이 주요 미술사적 작품들과 연결될 때, 그 작품의 가치는 폭등합니다. ; 즉, 새롭게 등장한 작품이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400억 원에 낙찰된 " 리비아 예언자 발의 습작 "이 좋은 예입니다. 2017년에 4500만 불 (675억 원)에 거래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 Salvator Mundi '도 최초에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작은 경매에 등장하였습니다.



< 맨 위: 최근 크리스티 경매에서 2700만 불(400억 원)에 거래된 리비아 예언자 발을 위한 습작,

가운데: 시스티나 천장화 중 리비아 예언자 부분

맨 아래: 시스티나 천장화 리비아 예언자 부분에 대한 습작

( 출처 ) 한국화가 박명선 갤러리 >


네덜란드 Haarlem 테일러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 테리 반 드루텐의 말입니다. " 2026년에 미켈란젤로가 그린 유화 작품을 발견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미켈란젤로 작품들 중 캔버스에 그린 유화는 없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나무판에 그린 작품 5개가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벽에 그린 프레스코화들입니다. " 참고로 테리 반 드루텐은 최근 " 미켈란젤로와 그의 남자들 "이라는 전시를 주관한 바 있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인터뷰한 어느 미켈란젤로 전문가도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 '와 성아그네스성당의 예수 흉상이 진품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유화 ' 예수를 안고 있는 동정녀 마리아 '는 익명의 두 소장가 요청에 따라 ' 영적인 피에타'로 부릅니다.)


카그리오티의 말입니다. " 영적인 피에타는 완전히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습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와 정말로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영적인 피에타를 미켈란젤로 작품으로 인정한다면, 추가로 그의 작품으로 인정해야 할 작품들이 5000개 정도 더 있습니다. "


덴마크 코펜하겐 글립토텍 미술관의 연구소장이자 최근 2건의 미켈란젤로 전시회의 큐레이터를 맡은 미켈란젤로 전문가 마티아스 아이블의 말입니다. " 저는 영적인 피에타가 미켈란젤로 작품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분명히 영적인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미켈란젤로 시절 중앙 이탈리아에서 작품활동을 하던 화가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미켈란젤로를 모방하고 있었습니다. "


카그리오티와 아이블은 그 예수 흉상에 대해서도 유사한 평가를 하였습니다. 이 흉상의 작가도 오랫동안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흉상이 미켈란젤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살레르노는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 저는 미켈란젤로에 대한 역사 소설을 쓸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과정 중 그의 노년 시절에 대한 새로운 내용들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소설 집필은 포기하고, 논픽션 글로 방향을 바꿉니다. "


그녀가 academia.edu 사이트에 올린 글의 제목은 ' 미켈란젤로, 그의 마지막 날들 '입니다. 그 글에서 살레르노는 그 흉상이 당시 미켈란젤로가 성당의 비밀 방에 숨겨진 작품들 중 하나라고 적고 있습니다.


와이블의 말입니다. " 그 흉상은 미켈란젤로 작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표현방식도, 마감방식도 미켈란젤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흉상은 17세기 즈음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


'영적인 피에타'를 연구한 미술사학자 드라게가 브뤼셀에서 있었던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 익명의 두 벨기에 소장자들은 캔버스 하단에서 두 글자를 통해 발견한 후, 이 작품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두 글자는 서명 혹은 미켈란젤로가 적은 이니셜과 유사한 모노그램 (주로 이름의 첫 글자들을 합쳐 한 글자 모양으로 대단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대문자 "M"과 "A"였습니다. 이 두 글자는 그림에서 예수 발등의 어두운 윤곽 위에 존재합니다. "



세계 최고의 연구기관인 벨기에 왕립 문화재단은 기술적 연구를 진행합니다. 적외선 사진, 반사복사법, 거시적 엑스레이 형광법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영적인 피에타를 분석합니다. 연구자들은 캔버스 세 개 위치에서 작은 물감 샘플들을 채취합니다.



Institute's pigment analysis laboratory 연구소장, 스티븐 세이버윈즈의 말입니다. " 우리는 다소 짧은 기간인 2주간 테스트를 통해 진행하였습니다. 테스트 기간이 2주밖에 안된 이유는, 영적인 피에타가 보존 목적으로 파리로 가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미술은 저희의 전문 분야가 아닙니다. "


그 테스트 결과는 그 그림이 언제쯤 제작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스티븐의 말입니다. " 95%의 확률로 영적인 피에타는 1520면에서 1660년 사이에 제작되었습니다. 그 근거는 캔버스의 연도를 분석한 결과입니다. "


미켈란젤로는 1475년에 태어나 1564년에 사망합니다. 그는 사망하던 88세에도 여전히 작품활동을 중이었습니다.


드라게가 말입니다. " 저는 처음 이 작품의 진품 여부에 의심을 갖고 있다가, 캔버스 하단의 모노그램 (M, A)가 그 작품이 그려지던 시절에 새겨진 것임을 확인하고 난 후 이 작품이 진품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 주 전공은 르네상스 시절이 아닌 19세기와 20세기 미술사이지만 말입니다. "


런던의 대영미술관 미켈란젤로 전문가 사라 보울이 이메일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 몇몇 사람들은 그 모노그램이 드라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작품들 대부분에 서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 모노그램이 미켈란젤로를 의미한다면, 아마 그 모노그램은 후대 소장자들이 추가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서명은 종이 위에만 나타나며, 그 종이에는 메모나, 편지의 일부 조금 소네트(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


드라게는 영적인 피에타의 배경 스토리를 재구성할 때 난관에 부닥칩니다. 왜냐하면 그 소장자들이 작품 구입 시 출처 보고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출처 보고서에는 이전 소장가, 전시 기록, 판매 기록 등이 나와있습니다. 2020년 전의 출처 보고서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드라게의 말입니다. "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음은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왜냐하면 1550년 이후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당시 미켈란젤로는 '스피리투알리(영적인)'로 알려진 로마 가톨릭 내 종교개혁 운동의 지지자였습니다. 특히 가톨릭 내 자생적 개혁운동인 에반젤리즘에 대한 그의 믿음이 교황 바오로 5세와의 불화의 원인이었습니다. 드라게는 그의 보고서에서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를 죽음과 부활 사이에서 안아주고 있고, 그림에는 고문이나 십자가형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특이한 표현은 바티칸을 불편하게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드라게는 보고서에서 그 작품이 미켈란젤로 친구인 알레산드로 파니스에 의해 영국으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뉴올리언즈의 경매장에 등장하기 전까지 수 백 년 동안 기록에서 사라졌다고 추정합니다.


비록 드라게가 다른 미술사학자나 미켈란젤로 전문가들의 지지는 얻지 못했지만, 자신은 2년 동안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충분한 토론과 피드백을 받은 후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합니다. 사실 현재 미켈란젤로 작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의사결정주체가 미술계에서 별도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테일러 미술관의 반 드루텐은 심지어 미술사학자들도 예술가의 기운에 이끌려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연구 성과 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을 위대한 발견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하면서 말입니다.


반 드루텐입니다. " 위대한 예술가들은 항상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어쨌든 그들을 신성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우리 스스로의 도덕성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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