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있는 힘을 쥐어짜 겨우 겨우 살아내던 순간이 있었다. 눈을 뜨면 그 순간부터 찾아오는 막막함과 우울함이 내 머리와 가슴을 지배하고 무겁게 축 쳐진 힘겨운 몸뚱이를 가까스로 일으켜 또 하루를 억지스레 살아야 했던 순간. 서른 초 중반까지의 내가 그랬다.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엄마를 필요로 하고,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 살아도 부족할 만큼 바쁘게 일을 해야 했던 시기. 그렇게 부족한 잠과 씨름하며 아이들도 누구의 도움 없이 키웠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쥐뿔 가진 건 없고,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 자리에서 달리고 또 달리는데 결국 또 그 자리 그대로인듯했던 그때의 그 막막함이 어쩌면 몇 십 년이 지나도 결국 또 지금의 이 자리 그대로 일 것만 같아서 절망감이 나를 짓누르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우울감이 찾아오고... 조금씩 나를 갉아먹다가 어느 순간에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까지 손을 뻗쳤다. 아주 사소한 작은 소란에도 참지 못하고 분노를 넘어서 미친 듯 소리치며 화를 내던 순간들... 괴물 같은 엄마의 모습에 사시나무 떨듯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아이들이 가까스로 눈에 들어오는 그제야 밀려오는 후회와 자책감이 또 나를 괴롭혔다. 그러지 말아야지 매일 밤마다 다짐했으면서도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고 다시 반복되는 일상.
그러던 어느 날,
서둘러 아이들을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놓고는 무작정 차키를 집어 들고 나와 목적지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한 내 새끼들을 해할까 겁이 덜컥 났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얼마 못 가 갓길에 차를 세우고는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렀고, 가야 할 목적지도 정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가기도 그렇다고 출발할 수도 없어서 그저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순간.
결국, 찾아간 곳이 한강이었다. 겨우 집에서 30분 떨어진 그곳.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이 차다 느껴질 때까지 되도록이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내 인생도 저 강물처럼 흐르고는 있겠지?
쳇바퀴 돌고 있는 게 아니라... 보이지는 않아도 어디론가 흐르긴 할 거라고 나를 다독이며 한참을 앉아있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금방이라도 터질듯한 마음이 고요해지기 시작했고, 머리를 짓 누르던 고통도 조금씩 덜해지기 시작했다. 숨통이 조금 트이는 듯한 느낌...
아주 잠시의 일탈이 주는 숨 쉴 틈이 필요했을까?
꾹꾹 참았던 눈물을 마음껏 쏟아내서였을까?
비워진 마음속에서 아이들이 비집고 나왔다.
'아... 너무 오래 나와있었구나. 애들이 찾을 텐데...'
싶은 생각이 들자 서둘러 집에 돌아가야지 싶었다.
집에 돌아가면 올망졸망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꼭 안아줘야지 다짐하면서... 오늘은 사랑만 줘야지 하면서...
지금도, 혼란스럽고 복잡하다 싶어 질 때면 온전히 마음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무작정 찾아 나선다. 그런 흐린 날 없이 인생이 늘 맑고 밝은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굴곡 없는 인생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