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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샤나 Sep 23. 2017

조커의 양면 철학

영화 <다크 나이트> 속 조커에 대한 생각

 악역의 존재감이 압도적인 영화를 고르라면 <다크 나이트>를 빼놓기는 힘들 것이다. 조커를 연기한 故 히스 레저의 죽음을 놓고 설왕설래하는 사람들도 그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히스 레저의 연기력에 묻혀 작가와 감독의 캐릭터 설계 능력이 저평가됐다고 생각한다. 조커는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촘촘하게 구성된 인물이다. 등장부터 추락까지 조커의 행동에는 선과 악에 대한 ‘양면철학’이 녹아 있으며, 이는 고담 시가 아닌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커는 오히려 선할수록 더 쉽게 악(惡)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마약거래상과 같이 이미 악에 찌든 사람들은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배트맨과 하비 덴트에게 다가간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악을 처단하는 하비 덴트는 선(善)이다. 하비가 약혼녀 레이첼을 잃고 크게 절망하자 조커는 그를 사로잡는다. 조커는 하비에게 계획도 규칙도 없는 것, 즉 혼돈은 공평하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하비가 지금껏 지켜온 신념을 잃고 ‘악행을 되돌려주는 것이 공평하다’는 그릇된 믿음을 갖게 만든다. 결국 하비는 레이첼의 죽음에 일조한 사람들을 죽이는 방향으로 치닫게 된다. 그렇게 조커는 고담 시에서 정의의 상징이었던 하비 덴트를 무너뜨린다.

     

 마찬가지로 조커는 배트맨의 생명보다는 시민을 수호하는 ‘기사’라는 배트맨의 상징성을 결딴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조커는 배트맨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트맨이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게 하기 위해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선의 상징인 배트맨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취조실에서 배트맨에게 "너도 나와 똑같은 괴물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만 봐도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처럼 악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죽이면서 배트맨을 자극한다. 조커가 생각하건대 배트맨의 정체를 밝히려면 가면을 벗기는 게 아니라, 선 혹은 악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들어야 한다. 배트맨이 브루스 웨인이든, 누구든 조커는 관심이 없다. 취조실이나 빌딩 끝에서 단둘이 대치했을 때도 조커는 배트맨의 가면을 벗기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다.

 선과 악이 동전의 양면처럼 뒤집힐 수 있다는 그의 ‘양면철학’은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든다. 조커는 사람들이 악행을 선택하면서도 필요악이라고 믿게 만든다. 첫 장면에서도 은행을 털자고 공모한 사람들에게 동료를 죽여 스스로의 몫을 챙기라고 충고한다. 돈을 독차지하고 싶었던 강도들은 결국 서로를 죽이고 조커 혼자 남게 된다. 두 척의 배에 탄 사람들에게는 '상대편의 배를 폭파할 것인가, 폭파하지 않을 것인가?'를 놓고 갈등하게 만든다. 몇백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정당화할 여지를 남겨둔다.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순간, 폭파 버튼을 누르는 건 매우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면 무조건 악을 저지른다는 조커의 생각은 틀렸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기도 한다. 또 악행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더라도 소신 있게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인간은 상황만 잘 설계하면 무조건 악인이 된다는 조커의 전제는 틀린 것이다. 두 척의 배가 모두 무사한 것을 알았을 때 조커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는 자신의 인간관이 빗나갔다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그의 실패를 의미한다. 조커는 악행을 저질러버린 시민들이 선과 악의 경계를 잃어버리고 폭주하는 ‘혼돈’을 만들고 싶었을 터다. 소신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버티는 한, 조커의 카오스 월드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안심하기엔 이르다. 영화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조커는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조커는 원칙을 파괴하려고 드는 모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칙과 관념들이 동전처럼 뒤집힌다면 혼란이 찾아온다. 취임 당시 모든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원칙을 새긴 대통령이 있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찍어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발견됐을 때, 그 원칙이 너무나도 쉽게 어그러졌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았다. 조커 역시 사람들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간단히 비트는 데에 아주 능숙하다. 그가 가면을 쓴 무리들과 은행을 터는 영화 첫 장면에서 은행 점장은 묻는다. 넌 무엇을 믿느냐고. 조커는 조롱하듯 대답한다. "난 죽을 만큼의 고통이 인간을 이상하게 만든다고 믿어." 이는 철학자 니체의 '죽을 만큼의 고통이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살짝 바꾼 것이다(stronger→stranger).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자는 흉터로 일그러진 얼굴을 한 악당보다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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