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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쇼샤나 Jun 30. 2020

'좋아하면 울리는' 시대, 행복할까?

측량할 수 없는 것을 측량하는 기술의 함정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은 반경 10m 이내에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을 알려주는 '좋알람'이라는 앱이 있다는 설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좋알람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마음'을 측량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서 금새 보편화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너도 나도 깔기 시작한 좋알람은 많은 이의 일상을 바꿔버린다. 드라마를 보면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좋알람이 울리지 않은 사람들이 동반자살을 하는 장면이다. 좋알람이 보편화된 시대에서, 알람이 울리지 않은 사람들은 삶의 의지를 상실할 정도의 외로움을 느낀다. 알람이 없을 때는 나를 연애감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없더라도 가족, 친구, 반려동물 등의 관계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좋알람은 다른 소중한 감정과 관계들을 잠식해버렸다. 이에 좋알람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는 '안티 좋알람' 시위도 작중에서 그려진다. 그러나 대다수의 좋알람 세계관 속 사람들은 이들을 유난스럽게 여기며 좋알람을 계속 이용한다. 내게 이 장면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수도 있는 무서운 일로 다가왔다. 원작은 디스토피아적인 요소보다는 세 주인공의 얽힌 감정에 집중하지만, 나는 좋알람이 바꿀 어두운 미래를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현대 과학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거나 추상적인 것들을 측량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측량 불가능한 것들을 수치화한다면 일단 편리해지겠지만 수치화된 정보에 통제되고 조종될 가능성 역시 높아진다. 차량공유업체 리프트에서 운전 기사로 일했던 사라 메이슨은 '게이미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을 소개한다. 플랫폼 업체는 이용자가 원하면 언제 어디서든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노동자)를 직고용하는 관계가 아니기에 통제에 한계가 있었다. 고민 끝에 고안한 방식은 서비스 제공자(노동자)의 성과를 수치화하여 게임하듯 일을 하게 한 것이었다. 우리가 게임을 멈출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점수, 등급 등 성과가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나 경쟁심이 타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리프트 역시 기사에 대한 평점, 등급이 정교하게 구축돼 있다. 리프트 기사는 원하는 시간에 일을 시작하고 마칠 수 있다. 언뜻 편리해 보이지만 기사들은 게임 퀘스트를 깨듯 계속 손님을 받고 운전을 하다가 과로에 시달리기 일쑤다. 예컨대 한 기사가 운행을 잠시 쉴 경우, 평점이 떨어지고 다른 손님에게 선택을 받을 확률이 줄어든다. 기사들이 높은 평점을 유지하려면 운전대를 놓을 수 없지만, 정작 그들은 이 과정이 비자발적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손님의 콜을 받는 것도 자신이며, 퇴근 시간을 정하는 것도 자신이기 때문이다.


기술이 고도화된 세상이 곧 좋은 세상은 아니다. 기술만큼 기술을 어떤 방향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언론은 4차 산업혁명을 구호로 내걸고 한국이 더 앞서지 못하는 것을 지탄하곤 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은 단지 기술적인 진보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동반되는 문제들을 예측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독일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비슷한 개념인 인더스트리 4.0이 있다. 독일은 디지털 시대에 노동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내다보고 전국 단위의 토론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논의 내용을 토대로 생산 이익 분배 및 교육 방식 등이 담긴 노동 4.0 백서를 발간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많은 국민이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현 상태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에서는 기본소득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냥 소득이 아니라 노동을 통한 소득을 지키고자 합의했기 때문이다. 노동 4.0 백서는 노동을 통해 일정한 수익을 거두는 일상이 그만큼 독일 국민들에게 소중하기에 지켜내야 한다는 믿음이 보편적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물이다.


달라질 미래에도 우리가 유지하고 싶어하는 일상은 어떤 것일까. 각자 형태가 다르겠지만 독일에서 그것은 노동이었다. 기술이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을 잠식하지 않도록, 앞서 고민한다면 기술의 발전 방향도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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