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멍한 눈과 뇌를 비운 채 무한정 영화를 반복해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목표 없이 걷고 싶은 만큼 걷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가끔은 걷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걷기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택시를 이용하거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그러나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도 그리 많지는 않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나에겐 가장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나는 히코모리 생활을 자처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잠시 동안 나 스스로 사회와 단절, 분리시키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몇 달, 때로는 몇 년을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 좋지 않은 습관이므로 고치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리 쉽지가 않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한 번 생각의 골에 빠지기 시작하면 그 속에서 정답이나 해결 방안을 찾을 때까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낸다. 예민함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는 그닥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예민함으로 일처리를 하거나 사람의 심리를 금세 알아차리기도 하는 무기로 사용할 때가 있다. 그 예민함은 심미안(審美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심미안은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이해하는 눈을 말한다. 그것은 훈련으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태생적으로 갖고 있어야 하며, 그것과 더불어 세상의 경험을 더하여 각 개인의 심미안은 더 확장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심미안으로 그림을 공부하였다.(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가 바로 심미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그림론중 하나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러한 예민함과 심미안으로 나는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에 빠질 때마다 식사하는 것과 날짜와 시간조차 잊는 때가 많다. 그러다 문득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그것은 내가 찾는 인생의 답일 수도 있고, 때로는 답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요즘 그랬다. 나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이 혼자 해결하여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하여야 하는데 정작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걷거나, 나에게는 먼 세상과 같던 한국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새벽에 드라마를 보며 혼자 낄낄대는 소리가 옆집까지 들렸는지 옆집에서 벽을 세 번이나 발로 차는 소리가 들렸다.)까지 몰아보기를 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개운하다. 무언가 해결된 느낌 그러나 다음에 다시 나에게 찾아올 인생의 숙제가 언제 올 지 몰라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 일은 그때 다시 생각할 것이다. 그 두려움이 나를 감싼다고 해서 다가올 일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팔십이 넘은 엄마는 아침부터 전화를 하신다. 그것도 카카오 전화로.(세련되기도 하셔라) "일어났니? 몸은 좀 어때? 밥은 먹고사니?" 요 며칠 완전한 잠수 생활에서 허욱적대는 나의 모습을 보다 못해 엄마는 걱정이 많이 되셨던 모양이다. 잠도 덜 깬 채 침대에 누워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지 말고 지금 집으로 와서 밥이라도 먹고 가. 배가 든든해야 강아지도 키우고 하지?"하고 말씀하신다. 이른 시간부터 일어나 오로지 나만을 위해 아침 밥상을 준비하셨다고 하신다. 나는 아빠와 많은 대화를 하는 편이다. 아빠는 여든이 넘은 나이신데도 이 나이 든 딸의 애교 섞인 뽀뽀와 허그를 너무 좋아하신다.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문득 나의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일어나 우리 아기들의 아침을 서둘러 준비해 주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식탁에 앉아 이른 아침 아빠와 대화 속에서 "우리 딸은 늘 긍정적이야, 나는 다른 딸들과 달리 무슨 일이든 늘 좋게 생각하려는 딸이 너무 이뻐"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고 아기들이 기다리고 있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나의 발목을 잡던 지구의 중력이 사라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었어. 또 이렇게 일은 해결될 수 있을 거야' 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아기들과 산책을 하고 돌아와 함께 씻고는 세 시간이 넘는 낮잠을 잤다. 무슨 생각으로 그리 많은 낮잠을 잤는지....... 긴 낮잠을 자고 일어나 나의 핸드폰을 확인하자 장문의 메시지가 나에게 도착해 있었다. '아빠는 딸을 많이 사랑하고 있으니 언제나 힘들 때는 아빠를 떠올리고 나를 찾아오렴. 아빠는 늘 너의 옆에 있단다. 잊지말어.!'라는 내용의 메시지. 팔십이 넘은 아빠가 핸드폰을 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나에게 사랑을 담아 보낸 글이라고 생각하니 더 마음 쓰려왔다. 나에게 가끔씩 찾아오는 이 방황의 끝은 언제일까? 더 힘내야지. 나만을 바라보는 나의 아이들과 사랑하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앞으로도 나는 힘들 때면 철저히 사회로부터 나를 분리시킨 후 나의 감정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다. 결국엔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동도해(仙童渡海) .심사정/18C/ 22.5 x 27.3cm,/지본수묵담채/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현재 심사정의 그림이다. 조선의 6대 화가를 흔히 삼원(三園) 삼재(三齋)라고 말한다. 삼원은 단원김홍도, 혜원신윤복, 오원장승업을 말하며, 삼재는 겸재정선, 공재윤두서 그리고 현재심사정을 일컫는 말이다. 그중 심사정은 조선화에 있어 남종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표현한 인물이기에 조선의 미술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조선화는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로 나눌 수 있다. 조선의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그림 역사를 이해하여야 한다. 그것은 중국 그림 화풍의 영향을 많은 받은 것이 바로 조선화이기 때문이다. 그 연원은 중국의 동기창((董其昌1555-1636)과 같은 서예인들로부터 시작되는데, 중국의 남쪽과 북쪽에 사는 서예인들의 필체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회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에 영향을 받게 되었다. 이후 조선으로 넘어온 중국의 그림들은 남종화와 북종화로 나뉘게 된다. 즉 조선에서의 남종화는 수묵을 이용하여 사대부들이 취미와 명상을 위해 그리는 산수화(화조도, 풍경화 등)를 포함한 인물화, 도석화(동양화에서 신선이나 부처, 고승을 그린 그림)를 의미한다. 그리고 북종화란, 직업화가들이 외면적 묘사에 치중하여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산수화 화풍의 그림이라고 쉽게 이해하면 될 것이다. 남종화의 특징은 수묵선염을 이용하여 그림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표현하는 것으로, 준법(皴法)도 비교적 부드럽고 우아한 피마준(披麻皴)등을 사용하여 운치 있게 산수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현재 심사정은 정선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산수화(山水畫)는 물론 화조화(花鳥畫),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畫) 등의 다양한 그림에 모두 능했으며 특히 중국 남종 문인화를 토대로 조선의 미감을 담은 조선 남종화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심사정은 매우 덕망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그의 조상은 역모를 꾀한다는 누명을 뉘집어 쓰고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의 집안이라는 오명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는 일생을 불우하게 살며 그림으로 연명하는 삶을 살았으나,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에 좌절하지 않고 그림에 타고난 자질을 주위의 시선과 사회적 압박?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생 동안 쉬지 않고 자신을 갈고 닦았다. 그러므로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화가가 될 수 있었다. 위의 그림은 달마를 모시는 선동동자를 그린 그림이다. 지금 선동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쪼그리고 앉아 양팔을 동그랗게 모아 무릎 위에 올린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선동동자는 지금 헤진 옷과 맨발의 상태로 작은 물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냥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선동동자 뒤의 갈대는 바람에 날리 듯하나 선동동자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림을 보아 마른 잎의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은 늦가을 쯤으로 예측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선동동자는 지금 갈대를 깔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이는 도상학적으로 갈대의 유무(有無)로 달마를 구분하는데, 지금 이 그림에서는 갈대가 보이고 있기 때문에 그림 속의 선동동자는 달마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심사정은 달마를 우리가 알고 있는 긴 수염과 짙은 눈썹 그리고 휘날리는 옷자락을 하는 모습과 달리 왜 소년의 모습으로 표현하였을까? 여기서 보이는 달마를 선동동자로 표현하는 경우는 종전에는 볼 수 없는 심사정만의 달마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분석을 나타낸다. 심사정은 당시의 화가들이 자연을 그대로 모방하며 그리는 방법과는 달리 그 풍경이 가지고 있는 의미까지 화폭에 담았다. 그러므로 인물화 즉 도석화 속의 달마 또한 그 겉 모습만을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닌 달마의 내면에 침잠한 심리까지 표현하였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달마는 성인(聖人)이다. 그것도 많은 이의 존경과 추앙을 받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달마 자신은 자신의 나약함과 고민을 누구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심사정은 달마 또한 인간임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달마의 마음 속에 무의식적으로 꿈틀대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 말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성인(聖人)이라고 하여 고민과 외로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성인(聖人) 또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를 심사정은 공간의 여백을 남겨둔 채 아주 간결하면서도 매우 부드러운 먹선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다. 동양화의 특징이 바로 '여백의 미'이다. 중요한 소재만을 표현한 채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공간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트이게 하며, 생각의 틈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서양화와는 매우 다르다. 서양화는 캔버스의 공간을 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있는 알레고리를(Allegory) 쉽게 찾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동양화는 매우 간결하지만 그림의 알레고리를 찾는 데는 각 개인의 경험과 사고를 바탕으로 여러 방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동양화와 서양화에 있어 무엇이 더 좋고 더 나음은 없다. 그저 각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림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지두절로도해/심사정/28.5x13.4cm/종이에 수묵담채/개인소장>
18C경 조선에서는 도석화(道釋畫)가 매우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도석화는 종교화 본래의 용도보다는 일상적인 용도 즉 감상용으로 그려지거나 병풍으로 제작되어 집 안의 장식이나 행사 시에 사용하기 위해 그려진 그림들이 많았다. 심사정이 남긴 도석화는 현재 15점 정도 되는데, 이는 아마도 주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위의 그림은 심사정의 지두화(指頭畵)이다. 심사정은 풍경화뿐 아니라 인물화도 지두화법으로 그렸는데 오히려 인물화에 지두화법을 더 즐겨 사용했다. 이 그림은 손톱으로 매우 빠르게 그리고 먹을 살짝 찍은 눈은 그윽하다. 그리고 달마가 먼 곳을 응시하는 얼굴은 붓으로 그린 것보다 달마의 내면을 더 심도 있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날카롭고 각진 달마의 가사는 바람에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물결은 여기저기 먹이 뭉쳐있다. 이러한 선들은 그림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선동의 헤진 옷과 신이 없는 맨발 그리고 달마의 휘날리는 헤진 옷과 맨발 그리고 어딘가를 응사하는 모습은 서로 닮아있다. 사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뒤돌아보기도 하지만 자연을 이해한다는 더 큰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사색을 통해 인간의 이해를 도모하며 더 크게는 자연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때로 내가 세상과 등지고 살아가는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에는 자연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즉 발버둥 쳐도 소용없는 일에는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부모님의 힘든 생활을 보며 성장해서 일까? 아니면 어떤 전문가의 말처럼 내가 어른 아이였기 때문일까? 나는 늘 생각한다. 나는 왜 어른이 되었을까? 그렇다고 나는 피터팬 증후군을 앓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가끔은 나 스스로 어른으로써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울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우 수수하게 차려입고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에게 말한다."너는 어쩜 그렇게 자신을 허투루 내버려 두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가꾸니?"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 좀 당황스럽다. 나는 운동화를 즐겨 신고 티셔츠에 청바지나 운동복을 주로 입고 다닐 뿐이건만. 나는 이제 사람들의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인생을 제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의 만물을 이해하기 위해 주어진 사색의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선동과 달마는 사색을 통해 세상의 덧없음을 깨달았고, 심사정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채 살았기에 그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을 후세에게 남겼듯 말이다. 앞으로도 나는 사색하는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즐기며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사랑과 이해라는 이름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NOTE.
-준법(皴法): 동양화에서, 산악이나 암석 따위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쓰는 기법.
-피마준(披麻皴):산수화 준법(皴法)의 일종으로 마피준이라고도 한다. 갈필(渴筆)에 의한 약간 물결짓는 필선으로 베(麻, 마) 섬유를 푼 것 같은 꺼칠꺼칠한 감촉을 가지며, 산의 겉면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기법.
-지두화(指頭畵): 붓이 아닌 손가락과 손톱을 이용하여 먹물이나 물감을 묻혀 그리는 그림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