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과 보자기.

2019.12.10. 화요일. 하늘이 뿌연 날이다.

by Celine

내가 매일 빼먹지 않고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이다. 누워 지내는 시간에 음악을 듣기도 하고 나에게 필요한 강연을 듣기도 하고 먹방을 보기도 한다.

어제저녁 공황의 상태가 되어 조금 힘들었다. 잠시 쉬었다 유튜브에서 강연을 하나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강사는 바로'김창옥'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거친 세월의 질곡 속에서 살아서인지 사람에 대한 이해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제 시청한 강의는 '서양 옷과 우리 옷'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나라 최고의 한복 명장께서 하신 말씀을 한다.


김창옥 "선생님, 한복이 참 곱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왜 한복을 중요한 행사에만 입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한복의 장점이라고 하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복장인 "강사님 나는 강사님을 참 존경해요. 그런데 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한복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그러니 강사님이 강의하실 때 혹시 한복에 대해 말씀하시게 되면 이것만은 꼭 말해주세요. 우리는 보통 공장에서 만들어진 서양의 입체적인 옷을 입잖아요. 그러나 한복은 평면적이랍니다. 서양식으로 공장에서 만들어지거나 맞추어 입는 옷들은 몸에 딱 맞게 만들어져요 그래서 내 몸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그 옷은 입지 못하게 되지요. 그리고 여행가방도 마찬가지랍니다. 그 네모난 상자의 크기와 형태에 딱 맞추어 옷을 넣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서양의 옷은 입체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의 한복과 보자기는 다르답니다. 넉넉한 품이 있어요. 세상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보자기에는 그 어떤 물건도 담을 수 있어요. 그런 넓은 품이 있는 옷이 바로 우리의 한복과 보자기랍니다. 내몸에 변화가 생겨도 입을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의 것은 평면적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자꾸 자기 몸에 맞는 옷 그리고 자기에게 맞는 사람만 만나려고 하잖아요. 우리 조상들은 한복을 입고 보자기를 사용하며 서로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답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조급하게 딱 맞추어서 살려고 하는지 참 안타까워요"


강연을 들으며 나는 한복과 보자기와 같은 사람이 되기에는 이미 글러먹은 사람이란 것에 스스로 동의하였다.

어제 퇴원을 하고 서울 집이 아닌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으로 왔다. 피곤했는지 서너 시간의 낮잠을 잤다. 눈을 뜨고 손전화를 확인하니 나와 가끔 연락하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전화도 아닌 메시지.

나는 몸이 아픈 이후로 사회적 관계를 모두 정리하였다. 그리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지내고 있다. 메시지의 내용인즉 자신에게 돈을 좀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상대와 친하게 지냈나?' 하는 의구심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보내달란다. 나는 말하였다. "내가 아픈 거 너도 알고 있지. 나 지금 팔 수술하고 오늘 집에 왔어. 그리고 정히 돈이 필요했다면 전화를 했어야지! 메시지는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상대는 나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팔 수술을 하기 위해 오후에 입원을 하였다. 그리고 오전에는 정신과 담당교수님의 면회가 있는 날이었다. 교수님은 나에게 입원을 다시 권유하셨다. 집에서는 괜찮지만 거리를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할 때도 많고, 운전을 하면 가끔 차선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는데 요즘 부쩍 그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뇌 회로에 문제가 생긴 것은 작년 여러 가지 검사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현재 나의 뇌는 매우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였다고 말씀하신다. 교수님은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만나고 싶은 감정이 드는 사람들과만 만날 것 그리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모조리 무시하라는 당부를 몇 번이나 하시며 다른 환자들보다 나를 볼 때면 너무도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상대에게 이러한 사정까지 다 말하였지만, 나의 사정과 의도를 절대 이해하려거나 동조하려는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전화를 그냥 끊어 버렸다.


자고 일어나 오전에 약간의 공황 증상이 보여 약을 복용 후 휴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상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너 나하고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니?" "그건 왜 물어?" "나는 너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네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어. 솔직히 나는 너와 다시 연락하고 싶지 않아. 너의 생각은 어때?"라고 묻자 상대는 ".................." "건강히 잘 지내도록 해."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한복과 보자기 같은 사람이 되려 하였으나, 나는 이제 이기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오늘 또 한 사람과 멀어졌다. 아니 원래 먼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가 드디어 용기를 내어 상대에게 나의 불편함을 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좋았다. 일을 하며 사회적으로는 매우 정확한 논리를 바탕으로 아주 작은 실수나 오차를 용납하지 못할 만큼 일을 하였던 것이 바로 나란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에게는 싫은 소리 하는 것이 나 스스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나의 말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나의 툭 내뱉는 말투로 인한 오해?)또 관계가 멀어질까 봐 내심 조바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나의 인생이 지금은 한순간에 변해버렸다. 오늘의 나의 용기가 나를 사랑하게 되는 시초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나아가 한복과 보자기 같은 사람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늦은 시간 돌린 세탁기가 나를 부른다. 향기가 폴폴 나는 빨래를 거실에 널고 잠들어야겠다. 이쁜 우리 아가들과 함께 그리고 조용한 힐링음악을 들어야지.....

어쨌든 나는 오늘 나를 지키기 위한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