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온우 Aug 06. 2023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 있습니다

언어, 문화, 인종도 다른 두 친구 이야기

잘못을 너에게 돌리고 싶어질 때면 말해. 
내가 몇 번이고 네가 얼마나 근사한 존재인지 이야기해 줄게.


얼마 전 친구와 연락을 했다. 나도 새로 들어간 회사일로, 친구도 너무 많이 맡게 된 프로젝트로 바쁜 와중에 짧게 시간을 내자고 했던 우리의 통화는 벌써 1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를 한 번씩 울렸다. 일부러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울림으로 다가와서 서로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최근에 엄마와의 새로운 관계 맺기로 힘들어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용감하다. 잘하고 있다고 되려 칭찬을 해주었다. 우리가 항상 착한 딸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곤 최근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해주며 내 용감한 직언이 엄마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난 나쁜 딸이 아니라고. 내가 지금처럼 나 스스로 나쁘다고 느껴질 땐 언제고 내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이야기해 주겠다고. 그 마음과 진심이 단단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한 명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살만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미는 한국인이 아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2살의 가을, 독일의 작은 시골 마을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갔을 때였다. 5명이서 함께 지내는 기숙사에서 시미와 나는 플랫메이트로 만났는데 우리 둘 다 영어가 서툴렀다. 독일어를 전공했던 시미는 당연히 독일에서 다른 친구들과 독일어를 쓸 거라고 기대했고, 처음 플랫에 들어오던 날 영어로 인사를 하는 동양인인 나를 보고 적잖은 당황을 했다.

"Hello...hmm.. Wait a moment"

시미는 이 말을 남기고선 그대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었다. 난 이 상황을 맞이하고 저 친구가 너무 수줍거나 혹은 영어를 전혀 못하는 걸까 걱정해서 말 걸기를 한 참 망설였는데 지금은 우리의 웃음 버튼이 되어주는 흑역사가 되었다.


아직 학기 시작 전이어서 5명이 정원인 플랫에는 한 달 동안 시미와 나 단 둘이었다. 지나 간 학기에 누군가 남기고 간 냉장고 안의 썩은 과일과 알 수 없는 음식물들, 그리고 집 곳곳에 자리를 틀어버린 거미들을 청소하고, 낯선 독일 생활에 고군분투하며 우리 둘은 친해졌다.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언어를 넘어서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미는 전공인 독일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했지만 영어는 고등학교 때 배운 게 전부였다고 했다. 나 역시 영어를 좋아하지만 시험을 보기 위해 읽기 쓰기 위주로만 할 줄 아는 전형적인 한국 교육 시스템의 산물이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대화를 했냐면,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했다. 둘 다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혹여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생기면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서 알려주면, 다시 시미가 영어를 슬로바키아어로 번역해서 이해를 하는 식이었다. 때론 '놀이동산'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그거 있잖아.. 가면 놀고 솜사탕도 먹고 회전목마도 타고"라고 스무고개를 해가며 서로 나 그거 단어 영어로 모르는데 뭘 말하는지는 알아 하는 식으로 대화를 했다.


그 해 가을부터 겨울 한 학기 동안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더의 작은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며 우린 평행 우주가 있다면 우리 둘을 이야기하는 것일 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만큼 우린 서로 닮은 점, 통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시내에 쇼핑을 가고,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때론 다리만 건너면 갈 수 있는 폴란드로 저녁도 먹으러 가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에는 슬로바키아에 있는 시미의 본가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하기도 했다.


학기가 끝나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우리는 마치 헤어지는 연인처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영혼의 단짝을 지구 반대편에서 만나서 너무 아쉽다며 서럽게 울었던 그날의 기억이 방 풍경과 기분마저 선명하다.






그렇게 영영 헤어져야 할 것 같던 우리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베프로 지내고 있다. 시미와 관계를 이어나가면서 기술의 발전과 세계화에 대해 새삼 놀라움을 느끼기도 한다. 페이스북으로 메세지하고,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것도 물론이지만 우린 서로 좋은 글, 책, 영상, 영화를 공유한다. 간혹 그 책이나 드라마가 한국에만 있으면 공유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넷플릭스라는 창구가 생기고 K콘텐츠 인기도 높아져 한국 드라마를 시미가 먼저 보고 나에게 추천해주기도 한다.


사는 나라가 다르고 언어도 문화도 달라도 사람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게 내가 시미와 친구로 지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토록 외국인과 가까운 친구로서 지낸다는 걸 놀라워한다. 나조차도 시미와 친구가 되지 않았다면 언어, 문화, 인종까지 다른 누군가와 이렇게 영혼이 연결된 듯한 관계를 맺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를 만났을 때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그게 나와 다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너무 당연하게도 삶에 대한 열정과 세상이 주는 모진 상처와 그를 극복해 가는 과정 또한 문화가 다르다고 해서 다르지 않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22살부터 32살까지의 우리의 삶의 기록이다.


꿈을 찾아나가고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사랑을 하는 이야기. 꿈꾸던 모든 것들이 이루어져 삶이 마법과 같다고 이야기했던 성장 이야기. 때론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잃어버리기도 세상에 배신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 그 안에서 우리 둘은 지금도 다시 일어서고 다시 꿈을 꾼다.







Epilogue.

내가 우리 둘의 삶의 이야기를 글로 담고 싶다고 그전에 허락을 구하고 싶다고 하자 시미가 말했다.

공식적으로 허락을 할 테니 마음껏 써달라고. 그리고 자기 삶에서 지금 얼마나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신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더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등장인물의 공식적인 허락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