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여름밤에 불어온 시원한 바람

<밤의 끝을 알리는> 심규선 저

by 짱고아빠


열대야가 일찍 찾아왔다. 더위에 취약한 나는 쉬 잠들지 못하는 밤이 계속되고 있고, 잠을 못 자다 보니 편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여러모로 여름은 내게 그리 달갑지 않은 계절이다. 더위에 지쳐 한동안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이 책을 봤고 까만 밤 오래간만에 여름에 취해 책을 읽었다.


심규선 씨의 곡을 좋아한다.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와 '어떤 날도, 어떤 말도'는 지금도 내플리의 최애곡이다. 그의 글을 읽다 그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들었다. 취했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아도 글과 음악에 취하는 느낌이다. 심규선 씨 노래만 잘 쓰시는 줄 알았더니 글도 아주 잘 쓴다. 여름밤, 그의 글 속에서 그의 음률 속에서 마음껏 헤엄쳤다. 조금은 마음이 풀렸다.


내가 밑줄 친, 내가 옮겨 적은 그의 문장들이다.


동경은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분하려 들었던 이분법적인 내 어린 시절의 고집 속에서 굳건한 경계석이 되어 늘 거기 있었다. 쓰기에 대한 꿈은 아름다웠으나 늘 내 키보다 까마득히 더 높게 뻗어 있는 담장이었다. 감히 올려다보기에도 무안할 만큼, 너무나 아름답지만 너무 높은 벽처럼 말이다.(p.13)


나도 그랬다. 쓰기는 언제나 내게 높이 솟은 벽이었다. 아름다우나 까마득하게 높은 벽. 그리고 언제부턴가 나도 그 벽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노래는 그의 연인이 되어줄 이와 반드시 옳은 순간 만날 것이다. 길에서, 지하철에서, 카페 안에서.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의 소개로 우연히 만나게 될 것이다. 마치 흐르는 시내와 같이 우리는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지줄대며 낮게 흘러 결국에는 먼 바다까지 살아가 닿기 위해서.(p.43)


노래는 반드시 옳은 순간 만난다고 한다! 뭐야, 이 단호하고도 사랑스러운 선언이라니. 내게 온 수많은 노래들을 떠올렸다. 이 모든 것들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설렜다. 만나야 할 것들을 결국 만나 고야 만 이 기막힌 인연이라니.


그것은 오직 두 존재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하는 사건이다. 심지어 한 존재가 더 이상 세상에 없어 만지거나 볼 수 없어도, 계속 똑같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불가해한 신비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다른 종과 영혼으로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사랑'이라는 매개체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아이'라고 칭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자식이라고 착각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진실로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우리의 잿빛 날들을 채색해 주었기 때문이다.(p.133)


나는 내 반려묘를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데, 내 반려 묘도 그럴 거라는 생각은 차마 하지 않았는데 옳았다. 우리는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고, 그 아이의 가장 순수한 모습으로 10년째 나의 잿빛 날들을 채색해 주고 있다. 때론 밝음으로, 때론 사랑으로, 때론 위로로. 고양이의 눈을 보고 있자면 내게 온 모든 불행들이 사라진다.


믿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한 때는 반드시 오고, 그러려면 죽어 있지 않고 삶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소리에 귀가 멀거나 자기가 욕망하는 모습에 눈이 멀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p.208)


기다리지 못해 우리는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그리고 죽어있지 않고 네 삶을 살아가라고.


다시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후덥지근하기만 했던 여름밤, 시원한 한 줄기 바람이 울어온다. 이 밤이 끝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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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끝을 알리는 / 심규선 저 / 큐리어스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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