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짱고책방

다시 이 땅에 꽃을 피우며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저

by 짱고아빠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성선설과 성악설의 오래된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기독교는 인간을 선한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선한 존재로 규정한다. 인간은 본래 선하기에 환경에 의해 악해질 수 있지만 언제든 인간 본연의 선함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게 반해 순자로부터 시작된 성악설은 인간은 본래 악한 존재라 규정한다. 도덕과 규범이 인간을 선하게 보이게 할 수는 있으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한 존재이고 환경이 인간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갈 때 인간의 본성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너무도 다른 두 주장 가운데, 그럼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전쟁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어떤 인간은 인류애를 발휘하기도 했고, 어떤 인간은 인간이 차마 상상하기 힘든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사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종말론 : 어쩌면 예고된 미래

꽤 오래 전 일이다. 한 사이비 단체에서 92년 모월 모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들은 그날이 되면 구원 받은 이들은 하늘로 들려 올라가고 남은 이들은 이 땅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경고했다. 당시 꼬맹이였던 내가 왜 이 종말론에 그렇게 흥미를 가졌는지 모르나 난 9시 뉴스를 도배하던 이 전 지구적인 이벤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약속된 그날 밤 12시, 혹 우리 가족 중 누군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누워 이불 너머로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확인하기도 했다. 당연히도 그날 아침은 평범한 어느 하루였고, 종교단체 관계자들이 줄줄이 체포되는 모습이 아침뉴스에 보였다. 허무하게 끝난 이벤트였지만 가끔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날 밤을 떠올리곤 한다.

이후 세기말 종말론 이벤트는 줄줄이 이어졌다. 하지만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했다던 어느 날도, 2000년에 들어서며 대혼란이 일어난다는 밀레니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종말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2010년대에 접어 서며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종말의 전조가 이 땅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좀비도 외계인도 아니었다.

기후 위기.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특별 보고서에 의하면 지구의 온도는 산업혁명 이후 이미 1도가 올랐으며 이후 가속도를 붙여 2028년에는 1.5도가 상승한다고 한다. 문제는 온도에 따른 기후변화인데, 지구의 온도 2도가 오르면 그린란드 전체가 녹고, 3도가 오르면 아마존이 사라진다. 4도가 오르면 뉴욕 전체가 물에 잠기고 5도가 오르면 정글이 불타고 가뭄과 홍수로 인해 인간이 거주 가능한 지역이 얼마 남지 않는다고 한다. 6도가 오르면 지구에 거주하는 생물의 95%가 멸종한다고 보고서는 경고한다. 물론 시뮬레이션 된 미래지만 지구가 분명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인다.

더스트 : 종말의 이유

소설은 어쩌면 예고된 이 암울한 미래에서 출발한다. 2050년, 한 실험실에서 시작된 오염된 폭풍 ‘더스트’는 몰아치는 곳마다 생명들을 죽이고 지구를 점령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더스트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돔 시디를 만드는 데, 한정된 공간의 돔은 살아남은 모두를 담지 못한다. 인류는 살육을 반복하며 돔 안에 살아남은 자와 돔 밖의 죽음을 기다리는 자로 나뉜다. 돔 안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더스트를 해결할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소위 '내성종'이라고 불리는 돔 밖의 이들을 납치해 실험체로 사용하고, 돔 밖의 이들은 더스트 뿐 아니라 같은 인간에게 사냥당할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공동체는 사라지고 각자도생만이 절대선이 되어버린 아포칼립스에서 더스트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인류를 계속 파괴한다. 그리고 2070년 과학자들은 마침내 더스트 해독제 개발에 성공하고 다시 지구를 재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는 인류의 70%가 사망한 이후였다.

2129년 <더스트 생태연구센터>에서 근무하는 식물학자 아영은 폐허가 된 강원도의 도시 해월에서 ‘모스바나’라는 식물의 조사를 담당하게 된다. 식물과 관련된 이들을 차례로 인터뷰하던 아영은 점점 더 이 '모스바나'가 더스트의 종식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에티오피아에서 '모스바나'를 활용해 더스트를 치료했다던 마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아영은 이들을 직접 만나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더스트가 점령한 지구 끝의 온실 <프림빌리지>에 대해 듣게 된다.


프림빌리지

더스트가 점령한 디스토피아에서 해독제 제조 능력을 지닌 인조인간 레이첼과 지수는 돔 밖의 대안 공동체 <프림빌리지>를 만든다. 그리고 그곳에는 쫓겨난 사람, 사람으로부터 도망친 사람, 세상의 끝으로 밀려나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지수는 이미 수많은 대안 공동체의 끝을 목도했기에 그 의미 없는 헤어짐을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의 공동체를 꾸리고 세상의 끝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던 그의 바람과 달리 삶을 위해 그를 찾아온 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알게 된 순간 차마 그들을 외면하지 못한다. <프림빌리지>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고, 이제 지수와 멤버들은 언젠가 무너질 그 공동체를 이제 유지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살아남기로 한다.

하지만 하나둘씩 늘어난 사람들은 결국 지수의 예상대로 서로를 의심하고, 미워하며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린다. 설상가상으로 외부의 침입까지 더해지자 지수는 결국 <프림빌리지>를 해산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 끝은 여느 공동체와 조금 달랐는데 지수는 레이첼이 개발한 해독제(모스바나)를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것들을 정착하는 어느 곳이든 심어 달라고 부탁한다. 마을의 해산은 아팠지만 지수는 아니 사람들은 어쩌면 이 지옥을 끝낼 수 있는 희망을 안고 헤어졌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모스바나'를 안고 떠난 이들은 세계 곳곳에서 때론 마녀로 불리며 민간의 영역에서 사람들을 치료했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인류를 구원할 더스트 종식의 씨앗이 되었다.

다시 이 땅에 꽃을 피우며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사실 정신없는 오늘을 살다 보면 인간이 선악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인간은 삶을 결정할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눈앞에 다가온 종말의 소식에 어떤 이는 스스로 무너져내렸고, 또 어떤 이는 살겠다고 돔안밖에서 싸우다 죽었고 또 어떤 이는 그 지옥도에서 살아남기로 그렇게 삶을 다시 재건하기로 결정했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한 자들에 의해 다시 쓰였다. 삶을 개척하기로 한 이들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돌아보는 마음, 그렇게 서로의 곁을 지키는 이들의 손에서 꽃은 다시 피어났다.

기록상 더스트로부터 인류를 구원한 건 공식적으로는 더스트 해독제를 만들어 낸 과학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분명히 기억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외되었고, 마녀로 불렸고,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지만 그곳에 우리가 되살아날 거라 믿은, 그 희망을 가득 안고 그들이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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