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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Apr 05. 2023

살기 위해 사고, 사기 위해 산다

<사는 마음> 이다희 저


1.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제목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은 이 제목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버렸다. live, buy 가운데 어느 지점. 사는 마음. 책은 저자가 산(buy), 그리고 저자를 살아있게(live) 하는 반려 물건들에 관한 이야기다.

'반려''라는 용어는 언제부턴가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예전엔 그저 '반려'동물로 그치던 것이, 반려 사람, 반려 곤충, 반려 식물 심지어 반려돌까지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반려가 필요한 사회. 어쩌면 우리 그만큼 다들 외롭다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외로움을 이겨내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저자는 반려 물건들을 통해, 그렇게 스스로 살아낸 이야기를 조금씩 우리게 꺼내 놓는다.


2. 살기 위해 사고, 사기 위해 산다. 책의 세 번째 챕터의 대제목이다. 무릎을 쳤다. 그랬다. 나도 살기 위해 사고, 사기 위해 살았다. 결혼 전 월급날 근처만 되면 사무실은 내 택배 상자로 가득했다. 결혼을 하고 쓸 수 있는 용돈이 벌이의 십일조만큼 아니 더 줄어들면서 씀씀이가 줄다 줄다 못해 지금은 당근마켓 헤비유저가 되었지만 그 없는 주머니에도 끊임없이 나는 무언가를 갈구했다. 좋은 물건을 들이면 뿌듯해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며칠을 즐거워한다. 행복은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소비, 쓸데없는 쇼핑은 죄악의 다른 이름처럼 여겨지기도 해서 꽤 마음 한쪽이 불편하고 부끄럽고 민망했었다.

그런데 저자가 들려주는 사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그렇게 샀던 이유를 알아버렸다. 살기 위해, 조금이나마 의미 있게 하기 위해. 책장, 맥, 의자, 신발, 만년필, 가방 같이 저자의 위시리스트와 같은 나의 위시리스트를 읽으며 양껏 뿌듯해했다. 와 그래 맞아. 내가 이래서 사는 거지. 누군가는 지금도 있는 키보드 놔두고 왜 그렇게 (비싼) 키보드를 사대냐고 하지만 이게 다 이유가 있는 거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3. 나는 물건을 못 버리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많은지 최근에는 정리를 대신해 주는 직업도 있다고 한다. 정리의 달인이 내 방이나 내 서랍을 본다면 아마 절반 이상은 아마 쓰레기통에 넣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물건 잘 버리는 방법에 관한 책도 언젠가 꽤 읽었던 것 같은데, 이후 나도 정리라는 걸 실천해 보겠어!라고 다짐하지만 보통 3일을 못 넘겼다. '언젠가 쓰겠지'라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모아둔다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돌아보니, '언젠가 쓰겠지'라는 대책 없는 희망보다는 내 손때 묻은 것들에 대한 애착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로 버려지기 아쉬운 것들에 대한 마음. 쓸데없는 잔정일지 모르나 나는 이 마음이 참 좋다. 손때 묻은 볼펜 한 자루 함부로 버리기 미안하다. 영수증, 타다 남은 캔들. 내 서랍엔 참 이런 것들만 가득하다.


4. 문득 내 주위의 나의 물건들을 돌아보았다. TV를 대신하겠다며 아마존 직구로 구매한 빔프로젝터, 지방까지 가서 사 온 흔들의자, 지금도 내 공간을 밝히고 있는 각각의 조명들, 프렌즈 레고, 에어팟 맥스, 캔들 워머, 픽업이 없는 기타, 스타벅스 머그잔까지 그러고 보니 이것들 모두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의 추천사에 누군가 썼듯 나 역시 이 물건들을 '돌보는 사람'이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하나하나 그것들에 대한 추억을 꺼내며 고마웠던 것들에게 하나둘 다시 인사하기 시작했다.



* 작가가 키웠던 고양이를 나도 똑같이 키우고 있고, 고양이 심장병(HCM)으로 떠난 아이의 질병을 나의 고양이도 똑같이 앓고 있다. 아직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고 발견 이후 꾸준히 관리함으로 발병 2년째 심장의 두께가 아직까지는 더 커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 무릎 위에 앉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무릎에 올려두고 그릉대는 고양이를 받침 삼아 책을 읽다 왈칵 무너져 내렸다. 내게 있는 모든 반려들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녀석. 이 녀석 없이 살 수 있을까. 행여라도 나중에 작가님을 만나게 된다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반려들을 떠나 보내야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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