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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고아빠 Dec 10. 2023

어떤 것도 판단하지 않기 위하여

<어떤 섬세함> 이석원 저

감동은 오래가지 않은 대신 새로운 세상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혼자가 되기 싫어 그렇게 관계에 연연할 때 세상은 내게 어떤 변변한 인연도 선물해 주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더는 그에 대한 미련을 두지 않게 되자, 세상은 그제야 선물처럼 내게 그걸 준 것이다.

혼자가 되는 것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p.264)


4년 전 처음 서울로 발령이 났을 때 다짐했던 게 있다. 누구와, 어떤 관계도 맺지 않고 5년 잘 숨어있다 집으로 돌아오자. 굳이 관계라는 걸 해야 한다면 일이라든지 배워야 할 것들만 열심히 배워오자. 그리고 지난주 문득 깨달았다. 내가 꽤 많은 송년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다짐처럼 되지 않은 많은 오지랖으로 주위를 괴롭히고 있음을.


어릴 적 내게도 사람이 필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많은 이들과 친해지고 싶었고, 괜찮아 보이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었다. 하지만 평범하디 평범했던 나만 빼고 커뮤니티는 만들어졌고 끼지 못한 나는 그들을 비난했지만 내심 부러워했다. 때론 이 질투가 강짜가 되어 공동체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언젠가 성경을 읽던 중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가 다른 제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냐고 묻자, 그런 것과 상관없이 너는 나를 따르라 했던 말씀을 따르라는 예수의 이야기에 화가 나기도 했다. 인싸인 당신이 무얼 아느냐고. 언제나 병풍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그냥 너는 병풍으로 살라는 말이 얼마나 상처인지 아냐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고 관심을 갈구하는 것보다 단지 지금 내가 오늘에 충실하는 것이 그렇게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어쩌면 나와 세상이 화목할 수 있는 길임을. 그렇게 나는 고양이를 안고 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에니어그램 4번. 평생을 9번으로 알고 살았지만, 나는 결국 예술가형으로 불리는 4번 유형의 사람이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며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 건 본연의 자기의 형질보다 좋을 때와 스트레스 시 다른 번호의 유형의 장단점을 끌어다 표현하는 통합과 분열의 이야기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4번은 본연의 단점인 시기심을 넘어 2번의 단점들을 불러내는데 언제고 유니크한 척 해대던 내가 갑자기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갈구하거나, 집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무엇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 즉시 나를 잡아 세워야 한다는 걸. 그것이 나와 모두를 보호하는 길임을. 반대로 내가 좋을 때에는 1번의 질서정연함이 표현되기도 한다.


이석원의 글을 읽으며, 지난 4년간의 서울 생활이 떠올랐다. 조용히 숨어서 있다 고향으로 내려가겠노라 다짐했지만 삶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그렇게 늘어난 관계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잃고 나는 해야 할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 채 엉망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마음과 달리 상황은 언제나 반대로 향했고 그렇게 길을 잃은 게 아닌가 의심하던 찰나,


“모쪼록, 저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과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우리 삶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불안과 공포에 대해, 또한 지키고 싶고 지켜야만 하는 우리 일상과 여러 소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우리의 삶이 예전처럼 단순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러니 적어도 이 책을 다 마칠 때까지는 모두 불안 없이 평안하시길….”


히트곡 하나 없는 가수라 스스로를 소개하는 <언니네 이발관>의 이석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대구로 내려오는 가치에서 잠깐 마음을 놓아버렸다. 나의 불안과 공포, 지키고 싶은 일상과 소중한 것. 그리고 어떤 것도 판단하거나 받지 않고 편하게 떠들어댈 수 있는 관계. 조금은 편안해졌다.

집에 도착하니 변함없이 내 고양이가 나를 마중 나왔다. 신발을 벗는 그 짧은 순간에도 어서 들어오라 쉼 없이 야옹거린다. 그리고 아내의 얼굴이 보인다.


에세이란 결국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글이다. 자신의 살아온 이력이나 현재 살아가는 모습이나 하고 있는 생각 등 글로 옮기는 삶들을 그래서 우리는 에세이스트라고 부른다.(p.293)


이런 글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리뷰어라기 보다 에세이스트가 더 어울리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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