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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이 말하는 숙론의 리더십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 최재천 저

by 짱고아빠

‘내가 리더를 해도 될까’라는 질문을 하는 이들은 대부분 어쩌다, 갑자기, 피할 새도 없이 그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는 그렇게 피할 수 없게 리더라는 자리에 부딪힌 이들에게 위로처럼 다가온다. 이 책의 저자 최재천은 스스로를 리더십 전문가라 부르지 않는다. 대신 생태학자의 자리에서 리더십이라는 인간의 제도를 다시 묻는다. 그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다.

자연에는 왜 우리가 상상하는 ‘강력한 리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가.


여왕개미에게서 배운 한 발 물러남


최재천은 자연 속에서 카리스마형 리더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대신 그가 주목한 존재는 여왕개미다. 여왕개미는 지시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으며, 앞에 나서지 않는다. 큰 방향만 남기고, 대부분의 일은 일개미들에게 맡긴다. 각자가 맡은 역할에 집중하도록 신뢰하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리더의 역할을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버티는 사람’으로 재정의한다.

과정을 중시하고, 구성원을 품는 리더십.

그는 이를 지속가능한 리더십 혹은 품는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이 관점은 리더를 더 강하게 만들기보다, 조직을 덜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판단을 혼자 짊어지는 리더가 아니라, 판단이 오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리더.

자연이 오래 살아남은 방식은 늘 효율보다 관계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이 책은 차분히 설득한다.



토론보다 숙론, 말하기보다 듣기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숙론이다.

토론이 빠른 결론을 향해 달려간다면, 숙론은 시간을 들여 생각이 쌓이는 과정을 존중한다.

최재천은 “이를 악물고 들어라”라는 다소 투박한 표현으로 경청의 태도를 강조한다.

리더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오래된 착각을 내려놓고, 잘 듣는 사람일 때 조직은 비로소 숨을 쉰다.


숙론을 잘하는 리더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무엇이 불편한지, 어디에서 막히는지, 왜 망설이는지를 묻는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은 지시를 수행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가 된다.

집단지성은 이런 순간에 비로소 작동한다.



군림하지 말고 함께 서는 리더십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군림(君臨)하지 말고 군림(群臨)하라”는 말이다.

위에 서는 리더가 아니라, 함께 서 있는 리더.

이 문장은 정치 이야기로 확장되지만, 사실 일상의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작은 팀, 작은 공동체일수록 리더의 태도는 곧 조직의 분위기가 된다.

실수한 직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회의에서 누구의 말을 끝까지 듣는지, 결정 이후 책임을 어떻게 나누는지가 모두 리더십의 언어다.


최재천은 리더가 반드시 리더(reader)여야 한다고 말한다.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생각을 통과해보는 일이고, 다른 삶의 속도를 이해하려는 연습이다.

숙론의 문화는 결국 읽고, 듣고, 기다리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어쩌다 리더가 된 사람에게 남는 문장


이 책은 리더가 되기 위한 기술서가 아니다.

오히려 리더가 된 이후에도 계속 질문해야 한다는, 조금은 불안한 용기를 건넨다.

어쩌다 리더가 된 당신에게 필요한 건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귀일지도 모른다.

빠른 결론보다 느린 합의, 화려한 말보다 조용한 경청.

이 책은 그 느린 리더십이 결국 더 멀리 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자연에는 왜 우리가 상상하는 ‘강력한 리더’가 거의 존재하지 않을까.

최재천의 대답은 분명하다. 자연은 한 명의 탁월함보다 구조와 관계의 안정성을 선택해 왔다.

지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할을 나누고, 통제하는 존재가 아니라 신뢰하는 존재.

자연이 수천만 년 동안 증명해 온 리더십은 강력한 통치가 아니라 오래 함께 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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