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의 <책읽기 좋은날>
어느 날 밤, 책을 읽다 말고 불을 끄지 못한 적이 있다. 다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다 읽어버리기 싫어서였다. 한 장만 더 넘기면 끝이라는 걸 알았고, 끝나면 이 감정도 접혀 들어갈 것 같았다. 그때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읽기 좋은날>.
요즘의 나는 웬만해선 책을 두 번 읽지 않는다. 좋았다는 기억만으로 충분한 책도 많고, 다시 들여다보기엔 다음 책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펼쳤는데, 또 좋았다. 문장이 아니라 태도가, 정보가 아니라 결이 다시 나를 붙잡았다. 내가 어쩌다 책에 대한 글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왜 짧게나마 책 소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지, 그 이유가 이 책 한 권으로 또렷해졌다.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관계에 대한 책이다.
작가와 독자, 독자와 또 다른 독자, 독자
와 아직 만나지 않은 세계 사이에 생기는 연결의 이야기다. 이다혜는 책을 매개로 그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꿰어낸다. 그녀는 책을 소개하지만, 책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 속에 담긴 세상, 원저자가 바라본 세계, 그리고 그 책을 읽는 ‘지금의 나’가 서 있는 자리까지 함께 데려온다.
이다혜 기자를 처음 알게 된 건 <씨네21>의 글을 통해서였다. 영화를 다 읽고, 책을 다 읽고, 그 다음에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 그런데 그 다른 이야기가 이상하게 핵심을 비켜가지 않는다. 오히려 책의 중심을 다른 각도에서 비춘다. 책을 읽는 행위가 얼마나 사적인지, 동시에 얼마나 사회적인지 그녀의 문장은 늘 동시에 보여준다.
<책읽기 좋은날>에는 123권의 책이 등장한다. 소설, 추리, 과학, 정치철학, 만화, 동화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리스트는
‘추천 도서 목록’이 아니다. 한 사람이 살아오며 만났던 감정의 기록에 가깝다. 어떤 책은 외로웠던 시절에 읽혔고, 어떤 책은 분노하던 밤에 붙잡혔다. 책의 내용보다 그 책을 읽던 시기의 삶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순간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아, 나도 저런 밤이 있었지’ 하고 자꾸 내 기억이 끼어든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우리는 책 이야기를 하다 결국 삶 이야기로 가게 될까.’
이다혜의 글은 늘 그 방향으로 흐른다. 긍정을 말하는 책을 읽고 무작정 긍정하지 않고, 독서를 말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조금 덜 지루할까’를 묻는다. 상식에 대한 야릇한 반항, 주류에 대한 은밀한 조롱은 과하지 않고, 유머는 가볍지만 얕지 않다. 그래서 웃다가도 문득 멈추게 된다. 이 문장은 나를 웃기려는 게 아니라, 같이 생각하자고 손을 내미는 문장이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녀가 소개한 책들을 하나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씨네21에서 그녀의 글을 찾아 읽었다. 팬이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이 책은 독자를 행동하게 만든다. 읽고, 찾고, 다시 읽게 만든다. 책을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글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사실 조금 부러웠다.
요즘 책이 잘 읽히지 않는 사람에게,
읽어도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
이 글은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건넨다.
지루한 책은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책.
목적 없는 책읽기가 오히려 삶을 덜 목적지향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속삭이는 책.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 여전히 사람과 세상을 잇는 가장 다정한 매개일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책.
마지막 장을 덮고도 한동안 불을 끄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이 책은 끝났지만, 이 책을 통해 시작된 연결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에 관한 글을 쓰고, 또 다른 누군가의 밤에 이 책이 닿기를 바라본다.
이 책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