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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 삶이 되는 순간

고전 단편으로 알아보는 인간의 선택 | 이반 투르게네프 외

by 짱고아빠

고전 단편으로 알아보는 인간의 선택을 읽으며


우리는 늘 무언가를 선택하고 살아간다. 아침에 무얼 먹을지부터 시작해서 저녁에 어떻게 잠들지까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우리는 늘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 선택을 잘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알고 있던 단편도 있고, 처음 보는 단편도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난 이후 인간이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에 대해 조금은 생각이 깊어졌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대체로 극적인 결단의 순간을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선택은 늘 일어났다.


말하는 대신 침묵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대신 멈추는 쪽으로,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방향으로.


이 선집은 그런 선택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전이라는 시간의 두께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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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기로 결정한 사람들


이반 투르게네프의 <무무>, 레프 톨스토이의 <아들의 거부>가 이 장에 실려 있다.

<무무>는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하인이 결국 사랑하던 존재를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 이야기다. 그는 저항하지 않는다. 대신 체념과 복종 사이 어딘가에서 선택한다. <아들의 거부> 역시 거대한 갈등보다는 가족 안에서의 판단을 다룬다.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지 않는 선택, 혹은 맞서지 않겠다는 태도가 삶을 어떻게 고착시키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의 이야기들은 '남는다'는 말이 단순히 자리를 지킨다는 뜻이 아님을 드러낸다.

남는다는 것은 상황을 바꾸지 않겠다는 선택이며, 그 결과를 고스란히 감당하겠다는 책임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


기 드 모파상의 <겁쟁이>, 셔우드 앤더슨의 <손>은 말하지 않는 선택을 중심에 둔다.

<겁쟁이>는 한 인간이 과거의 행동을 끝내 고백하지 않기로 하면서 평생을 어떤 시선 속에 가두는 이야기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선택은 즉각적인 안정을 주지만, 그 침묵은 점점 삶의 중심이 된다. <손>은 더 내면적인 이야기다. 상처와 욕망,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끝내 언어로 옮기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한 인물의 초상을 그린다.


이 장에서의 선택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비겁함일 수도 있고, 자기 보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이후의 삶을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이다. 한 번 침묵을 택한 순간부터, 인물의 세계는 그 침묵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지켜보는 쪽을 택한 사람들


안톤 체호프의 <내기>, 허먼 멜빌의 <필사원 바틀비>가 이 장에 실려있다.

<내기>는 행동과 사유, 삶의 방식에 대한 실험 같은 이야기다. 선택은 격렬하지만 결과는 허무하다. <필사원 바틀비>에서는 선택이 더욱 특이한 형태로 나타난다. 바틀비는 "그러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세상과 거리를 둔다.

그는 맞서 싸우지도, 도망치지도 않는다. 그저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반복한다.


이 장의 이야기들은 행동하지 않는 태도 역시 분명한 선택임을 보여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세계와 관계 맺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주변 사람들과 사회에 예상보다 큰 균열을 남긴다.



스스로를 버리는 선택


에드가 앨런 포의 <심술궂은 악령>,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가 마지막을 장식한다.

<심술궂은 악령>은 인간이 왜 스스로를 파괴하는 선택을 반복하는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성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 어떻게 필연처럼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욕망이 선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다룬다. 더 많이 가지려는 판단은 결국 모든 것을 잃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장에서 선택은 명백히 실패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선택을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왜 그런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끝까지 바라본다.

자기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지점, 그곳에서 인간의 가장 취약한 얼굴이 드러난다.



선택은 순간이 아니라 궤적이다


<고전 단편으로 알아보는 인간의 선택>은 선택을 단순한 한 번의 결정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에게 선택은 이후의 삶을 끌고 가는 궤적에 가깝다.

말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움직이지 않겠다고 판단한 이후부터, 삶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책은 그 흐름을 고전이라는 서사 속에서 차분히 보여준다.


나는 어떤 선택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의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빠른 답을 찾는다.

그런데 지금 나의 선택이 언젠가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될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조금은 사려 깊을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게 고전 읽는 재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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