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주의는 영혼을 잠식한다
-나의 요즘 PC방 탐방기
급한 서류 마감이
두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카페의 인터넷 속도
혹은
내 노트북 사양의
뒤떨어짐으로 미루어 볼 때
서류 제출이 집중될
마감 두 시간 전,
내 서류 탑재는
위태로웠다
때마침
딸아이의 말이 생각났다
아이돌 그룹 TXT의 콘서트 티겟 예매를 위해
친구를 동원해 PC방을 점령하고
PC방 인터넷의 속도를 빌어
결국 예매에 성공했다는.
이 사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그 순간 스쳐갔다
나는 이 서류를 반드시 제출해야 했고
그간 뭐 하다 게으름을 피웠던가 등의 자책은
시간적으로 내게 사치였다
주위의 PC방을 검색하자
2분 거리에 있단다
일단
아주 조금 걱정이 되었기에
딸아이에게 우선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엄마가 PC방 가서 할 수 있겠어?"
라는 냉정한 평가가 돌아왔다
이유인즉
의지적 신문물 회피자이자,
PC방=게임을 장려함으로
한 인생의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케 하는 곳이라는
자기 마음대로 개념화가 되어 있는 엄마를
딸아이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PC방의 문턱을 넘자면
소소하나 귀찮고
마주하기 싫은 것들을 넘어가야 하니
엄마 같은 사람
(=옛날 사람인데
게다가 까다롭기까지 한 사람!)이
할 수 있겠냐 싶었나 보다
예를 들면,
구글이나 카톡 아이디를 통한 회원가입이나
선불 결제
앉는 자리 예약이나
게임 중 난무하는 욕의 향연에
화내지 않을 자신 있냐 그런 말이다
몇 천 원씩
현금 주고 PC방을 사용하던 때의 이야기는
라테 한 잔 속으로 사라진다
엄마 같은 옛날 사람이
할 수나 있으려나 싶었겠지.
매우 객관적이나
살짝 기분 나쁜 팩트를 날렸지만
이후의 상황을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싶다
그러나
이럴 때
아주 정확하게
'나이 듦'이 가져오는 타자화의 시선이
온몸을 통과하는 것을 느낀다
평소 딸에게
PC방이라는 곳에는
꼭 필요하지 않으면
가지 말거라,
가도 오래 있지 말아라,
게임을 꼭 거기 가서 해야 되니,
가야 하면 혼자는 안된다,
꼭 친구하고 가거라
등등
미국 공화당원쯤 되는
보수주의 어미의 시각으로
PC방을 이야기한 나의
잔소리 이력 때문에 한
단순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초고속 인터넷망을 통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른
파일 업로딩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해지는 상황인지라
딸아이의 걱정대로
가서는 안될 그곳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나의 20대에도 PC방은 있었고
분명 그곳에 가기도 했건만
그토록 PC방 입성을
주저하고 회피한 이유의
밑바닥을 들추어보면
혹여나 실수할까 봐,
잘 모를까 봐,
그래서
딸아이 나이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이것저것 묻게 될까 봐,
그래서 도움을 받아야 할까 봐,
그것이 나이 든 사람 티를
팍팍 낼까 봐 등등의 것들을
미리 걱정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연령주의는
이미
내 영혼을
깊숙이
잠식하고 있었다
사실
그 모든 일은
'요즘' PC방을 방문하게 된 내게
예언처럼 일어났다
어쨌든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감 전 서류 업로딩을
아슬아슬하게 마쳤다
그리고는
다시는 오지 않을 곳인양
뒤도 돌아보지 않고
' 요즘' PC방을 나왔다
나는 그곳에 있으면 안 되는 누군가로
스스로 느꼈던가 보다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난 이미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구별하고 있었다
내면화된 연령주의의 심각성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자랑스럽게
MZ세대들 사이에서도 기죽지 않고
서류는 잘 제출했노라
딸아이에게 요즘 사람 부심을 하며
너희 아버님께서는
'요즘' PC방 못 가겠더라 등등
호기로운 척했지만
실상은
연령주의에 침잠된 나 스스로가
필요 없는 무기력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똑똑히 목격했다
터벅터벅
네 정거장 버스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젊은 날 보았던
영화 제목들이
약간 비틀어지며
떠오른다
'연령주의는
영혼을 잠식한다...'
그래?
그렇든 말든,
다시 내 영혼을 향해
선포한다
'쫄지 마
울지 마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