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화투 친구들

-여성 노인을 위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

by 김한나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현역 정치인 시절

삭발 투쟁도 불사하던

울 엄마는

여든셋의 오늘을 받아들이며

연약해진 몸을 조심스레 돌보고 계셨다


지난달

119를 불러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어느새 많이 여위고 수척해진

울 어무이의 하루는

참으로

심플하다!

식사를 하셨는지

목욕을 다녀오셨는지를

매번 확인하고

혹 체력이 남아

시장이나 마트를 다녀오셨는지

여쭙는다

약은 드셨는지

좀 걸어 다니셨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딸인 나의 반복되는 일상이다


그럼에도

자식으로서는 다 할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는데

여성 노인인 울 엄마의 그 큰 외로움은

어찌하여도 채워드릴 길이 없었다

아버지가 소천하신 지

이미 십여 년이 지났으니

비록 갈등과 다툼이라는 모양이었지만

혼자는 아니었던 때도

훌쩍 지나가 버렸다

2년 여 전

우리 가족이 분가를 하면서

방 네 개의 큰 집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울 어무이.

매일 찾아가고

하루 한 번이라도 같이 식사를 하고 오려 하지만

그 이상의 시간은

엄마 혼자의 몫이었던 거다

그 빈자리를 결코 다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매번

여든셋 여성 노인의 독거가

마음에 아린다


엄마가 병원에서 퇴원하시고

여전히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던 때

엄마의 오래된 친구분들이

누워있던 엄마를 보러 오셨다

그리고 열이 왔다 갔다

비몽사몽 중인 엄마를 격려하기 위해

화투에 최적화된 마루 탁자를 옆으로 뉘어 굴려서

방에 들이고는

세 분이 둘러앉아 화투를 치시는 것이 아닌가!

환자가 누워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는

이 세 분의 경륜과 집중력에 감탄한 나는

영상으로 이 사실을 남겨두었다

아직 병 중에 가끔 딴 소리를 하던 울 엄마는

일단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아

돌아가는 화투판을 바라보셨다

이에 엄마의 멋진 친구분들의 흔들림 없는

화투 진행에 그만

합류하고야 마는 울 엄마를 목격하던 나는

다소 엉뚱하지만,

성경 속

병든 친구를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로 막힌 통로가 아닌

지붕을 뜯어 침상을 내려

예수님 앞에 환자가 갈 수 있게 한 이야기가

잠시 생각났다


이후로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친구들이 몰려와 화투를 치면

자연스럽게 실내복을 걸친 그대로

수십 년 세월의 희로애락,

때로 화려하기도 침통하기도 했던

켜켜이 쌓인 시간들의 동반자인

그들과의 연대와 지지에 화답하며 합류한다

때로 4시간씩

혹은 그 이상도 계속되는 집중력으로

함께 기쁨을 나누는 엄마와

소중한 화투 친구분들의 뒷모습을 보노라면

말할 수 없는 존경과 사랑의 감정이 피어난다


여성 노인의 평균 수명이

훨씬 긴 현실에서

세월이 갈수록

우리 어무이들에게는

더 큰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연대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과 관심으로

충분하고도 넘칠 것이다


울 엄마는

진짜 멋지게 살아오신 듯하다

몸져누운 엄마의 침대 옆에서

화투에 집중하는 것으로

마음 가득한

그들의 사랑을 전하는

친구분들이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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