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의사 결정의 연속이다. 일상 생활에서 무엇을 먹을까, 언제 잘까? 내일은 무슨 일을 할까? 누구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까? 등등. 무심코 하는 행동도 사실은 머리 속에서 내리는 결정에 의한 것이다. 아동기를 지나 청소년 시기가 되면 무엇을 공부할까? 어느 대학교, 무슨 과를 지원할까? 등 결정해야 할 들이 많아진다. 성년이 되어서는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누구와 언제 할 것인지, 취업은 어디로 할 지, 인생의 중요한 의사 결정과 대면하게 된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의 비즈니스스쿨, 팜플린 경영대는 평균적으로 미국인들은 하루에 35,000 개의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35,000개? 너무 많은 것 같지만 앉아 있다가 일어서는 것, 대화 중에 문자를 확인하는 것, 길을 가다가 신호등 앞에 잠시 서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에 대해서도 의사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보면 하루에 30,000개 정도의 결정을 내릴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인간은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을 끊임없이 내리고 있으며 이것들은 개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제임스 클리어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우리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 가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내리는 사소한 모든 결정들이 크던 작던, 오랜 시간 동안 쌓여가며 우리의 정체성과 내면을 형성해 나간다는 것이니 의사 결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사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구할 때 직업 선택에 대한 결정, 젊은 청년이 이성과 교제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혼에 대한 의사 결정, 어떤 회사의 CEO가 회사 경영 상 내려야 하는 중요한 결정, 개인의 노후 생활을 위해 여유 자금을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 등, 인생에는 내리기 어려운 결정들이 많이 있다. 특히 내려야 하는 결정이 자신과 주변에 대한 영향력이 크고 의사 결정의 책임이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는 경우, 의사 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러나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결정 만이 힘든 것은 아니다. 본인과 주변 사람에 대한 영향력이 작은, 사소한 일상에 대한 것도 때로는 결정내리기가 어렵다. 중국음식점에서 누구나 가지는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하는 망설임. 산책을 지금 할까 좀 더 있다가 할까, A 영화를 볼까 B 영화를 볼까, 조조를 볼까 여유있는 오후 시간에 볼까 등등. 이러한 의사 결정은 나와 주변 사람에 대한 영향력이 작은 사소한 결정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사소한 결정을 위해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양자택일의 경우 한 번 비교하기 시작하면 마치 심오한 논문을 쓰고 있는 것 마냥 망설임의 깊이가 꽤 깊어진다. 사랑하는 이성을 만나러 가기 위해 거울 앞에 서서 이 옷을 입을까 저 옷을 입을까 망설이며 즐거운 고민을 했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 감정이 개입되면 의사결정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별로 관계없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한 의사 결정이 쉬워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의사 결정이 어려운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잘못된 의사 결정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지금 내리는 결정이 틀린 것이라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잘못내린 의사 결정으로 회사가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지 등과 같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기에 더 두렵게 느껴진다. 두번째는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리스크가 가장 작은 선택, 생각해야 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모두 고려된 선택, 성공 가능성이 가장 크고 성공시 보상이 가장 큰 선택,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선택을 하기 원한다. 그래서 의사 결정에 대한 압박감이 점점 커진다. 세번째 이유는 의사 결정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참조하지 않거나 너무 많은 데이터를 참조하는 극단의 경우이다. 정확한 기준없이 선택을 하게 되니 경험과 직관에 의한 휴리스틱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반면에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따져 보기도 한다. 정확하지 않은 결정을 실수로 내릴 가능성이 있고 너무 많은 정보를 참조하느라 결정을 못내리고 지연시키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편 내려야 하는 의사 결정의 수가 너무 많은 것도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 우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정보들을 모두 참조하여 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과 사회는 시기에 맞춰 결정 내리기를 종용하고 있다. 결정이 조금 밀리기 시작하면 해야할 일과 내려야 할 결정 들이 금방 산더미처럼 쌓인다. 이 많은 것들을 때에 맞춰 결정하려면 우리는 모두 결정 머신이 되어야 할 판이다.
어려운 문제에 대해 쉽게 바른 결정을 내리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크레이그 그로쉘은 "미리 결정하라 Think Ahead"에서 나중에 할 것을 미리 결정해 두면, 내려야 할 결정의 가짓수가 줄어들고, 그릇된 결정을 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며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나중에 해야 할 결정은 구체적인 상황이 분명히 드러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결정을 지금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에서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기준이 되는 지침을 미리 결정해 둘 것을 제안하고 있다. 결정에 대한 원칙을 늘 명확히 가지고 있으니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큰 고민없이 미리 정해 놓은 기준에 의해 결정하면 된다. 일종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같은 것이다. 필요한 양보다 많이 먹는다,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후회할 말을 한다, 삶의 속도를 충분히 늦추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저자는 본인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예로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의사 결정의 기준과 철학이 없으니 몸이 가는데로 살고 있는 것이다. 중요 결정에 대한 기준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결정 장애를 극복하는 첫번째 방법이다.
보통 회사에서는 조직이 새로 생겼을 때, 중장기 전략과 발전 계획을 세운다. 이 때 거의 모든 회사가 조직의 비전과 미션, 핵심 가치를 선정한다. 여기서 핵심 가치는 의사 결정의 기준이다. 내가 현대차 유럽연구소 법인장으로서 세운 핵심 가치는 창의, 개방, 파트너십이었다. 나는 모든 직원들에게 어떤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연구소의 핵심 가치를 기준으로 하라고 하였다. 핵심 가치에 부합하는 의사 결정이라면 과감하게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높게 평가하였다. 핵심 가치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지키고 싶고, 지켜야 하는 기준이다. 이 가치에 맞는 결정이라면 잘못된 결정에 대한 두려움,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 모두 본인의 핵심 가치를 정해보자.
자동차 회사에서는 선행개발이 중요하다. 전에 선행개발에 대해 자세히 얘기한 바 있듯이 선행개발은 개발되는 신차의 원가, 차량 구성, 설계 사양 등의 주요 항목을 프로토 이전에 결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미리 결정하는 행위인 것이다. 실제 시험차를 만들어서 평가를 해보고 사양을 결정하게 되면 비록 원가와 성능에 최적화된 사양이더라도 양산 때까지 일정을 맞춰 개발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사 결정의 내용보다 결정 시기가 더 중요하다.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부품(Long Lead Item)에 대해서는 정해진 기준에 의해, 시기에 맞춰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 선행 개발의 핵심이 된다. 차량 선행개발 시 의사 결정의 기준 수립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데이터 축적이 선행되어야 하고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우리가 의사 결정을 할 때도 비슷하다.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시간을 너무 많이 끈다면 의사 결정의 내용이 소용없어질 것이다. 결정은 때를 맞춰 내려야 한다. 미리 결정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를 가진다.
결정 장애를 극복하는 두 번째 방법은 결정에 대한 두려움과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잘못된 결정에 대한 두려움, 최고의 선택을 못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야 좋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 해도 진행 상황을 보고 대책을 수립하여 실행하면 된다. 인생이 무너질 만한 잘못된 결정은 범죄 말고는 없다. 조금은 더 잘 되고 조금은 더 못 될 뿐이다. 최고의 선택을 못해도 좋다, 차선의 선택도 좋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의 선택을 위해 심사숙고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귀중한 시간은 흘러 간다. 차선의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차선책이었던 것이 상황이 바뀌어 최고의 선택이 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경쟁에 의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정립되어 있고 사회의 정서도 그렇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아등바등 최고의 선택과 결정을 하려고 노력하며 힘들게 살고 있다. 차선의 길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의사 결정은 우리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올바르고 좋은 선택을 하면 좋다. 그러나 의사 결정보다는 실행력이 더 중요하다.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 보면 그들은 모두 자기 주관과 가치에 따라 의사 결정을 하고 그 방향으로 끈질기게 삶을 이끌어 온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너무 많은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지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으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력을 키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으로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상황도 삶의 행복의 일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결정에 대한 두려움과 최고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라. 의사 결정의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중요한 사항들을 미리 결정해 두어라. 그리하면 의사 결정의 어려움에서 자유로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