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문을 열면 내가 보인다

제1부. 태도 : 생활지원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것

by cej


기다림이 돌봄의 실력이 되는 순간


생활지원사로 현장에 투입된 초창기, 나는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어르신 댁에 머무는 시간 동안 손이 쉬고 있으면 왠지 일을 게을리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늘 무언가를 닦고, 옮기고, 질문을 던지며 그 공간의 공기를 나의 활동으로 채우려 애썼다. 그것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질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돌봄의 실력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어르신이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얼마나 ‘기다려주느냐’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번은 거동이 몹시 불편하신 최 할아버님 댁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할아버님은 외출을 위해 양말을 신으려 사투를 벌이고 계셨다. 굽지 않는 허리와 떨리는 손으로 양말 끝을 잡으려 애쓰시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나는 본능적으로 다가가 양말을 뺏듯 낚아채 직접 신겨드렸다. "어르신, 제가 해드릴게요. 이게 훨씬 빠르잖아요.“

내 손길에 양말은 단 5초 만에 할아버님의 발목까지 예쁘게 신겨졌다. 나는 스스로 기특해하며 할아버님을 보았지만, 할아버님의 표정은 고마움이 아닌 씁쓸함으로 가득했다. "내가 아직 이건 할 수 있는데..." 할아버님은 힘없이 읊조리셨다.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단축한 그 ‘시간’은 할아버님에게는 당신의 쓸모를 증명하는 ‘존엄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내가 베푼 과잉 친절이 어르신의 마지막 자부심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의 돌봄 철학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나는 어르신이 양말 한 짝을 신는 데 10분이 걸려도 가만히 곁에 앉아 기다린다. 어르신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도 성급히 손을 내밀지 않는다. 대신 "어르신, 거의 다 됐네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라고 나지막이 응원할 뿐이다. 마침내 어르신 스스로 양말을 신어냈을 때, 그분의 얼굴에 피어나는 아이 같은 미소와 "나 아직 안 죽었네!" 하는 당당한 목소리. 그 순간을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생활지원사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전문성이라는 사실을 나는 온몸으로 배웠다.

기다림은 대화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인지 기능이 조금씩 저하되는 어르신들은 단어를 떠올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문장의 주어는 던져놓았는데 서술어에 도달하기까지 한참의 정적이 흐를 때가 많다. 예전의 나는 그 정적을 참지 못하고 "아, 밥 먹었다는 말씀이시죠?", "아드님 오셨다는 거죠?" 하며 문장을 가로채 완성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확인에 불과했다.


기다림의 실력을 갖춘 지금의 나는 정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르신의 눈을 바라보며 그분이 단어를 골라내고, 혀를 움직여 소리를 만들 때까지 넉넉하게 시간을 내어드린다. 비록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1분이 걸릴지라도, 어르신 스스로 당신의 마음을 표현해냈을 때의 만족감은 내 가로채기 대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어르신의 위축된 언어 신경을 자극하고, 닫혀가던 마음의 문을 여는 가장 따뜻한 열쇠가 된다.


또한, 기다림은 어르신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도 필요하다. 새로 배정받은 어르신 중에는 유독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 잠그신 분들이 계신다. 집 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거나, 내가 건네는 안부 인사를 무뚝뚝하게 쳐내시는 분들이다. 이럴 때 조급한 마음에 "제가 도와 드리러 온 사람인데 왜 그러세요"라고 다가가면 관계는 더 어긋나고 만다.

나는 그런 어르신들에게 ‘문 앞의 기다림’을 선물한다. 매번 거절당하면서도 같은 시간에 찾아가 문밖에서 인사를 건네고, 작은 간식이나 편지를 문고리에 걸어둔다. 당신이 언제든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을 때 내가 그곳에 있을 거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는 것이다.


한 달, 두 달... 그렇게 계절이 바뀔 때쯤 어르신이 먼저 "차 한 잔 마시고 갈 텐가?" 하고 문을 열어주시는 순간, 나는 기다림이 어떻게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지 그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한다.

돌봄의 현장에서 '빨리빨리'는 금물이다. 서두름은 실수를 낳고, 실수는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무엇보다 서두르는 생활지원사의 태도는 어르신에게 '내가 이 사람의 짐이 되고 있다'는 죄책감을 심어준다. 반면, 넉넉히 기다려주는 지원사의 태도는 어르신에게 '나는 기다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자존감을 선물한다.

결국 돌봄이란, 어르신의 느린 시계 태엽에 내 시계의 속도를 맞추는 동기화 작업이다. 내 걸음이 아무리 빨라도 어르신이 보폭을 맞추지 못한다면 우리는 함께 갈 수 없다. 내가 한 발 뒤처져 걷고, 한 템포 늦게 말하며, 그저 가만히 지켜봐 주는 그 기다림의 시간 속에 진정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오늘도 나는 방문지 앞에서 마음을 다잡는다. 시계를 보며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대신, 어르신의 느린 호흡을 먼저 살핀다. 서투른 동작을 대신해주고 싶은 손길을 꾹 참고, 단어가 나오지 않아 애타는 어르신의 침묵을 인내로 채운다.


기다림은 결코 멈춰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속도를 존중하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며, 어르신의 존엄을 지켜내겠다는 생활지원사의 숭고한 다짐이다. 이 느릿한 기다림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돌봄의 실력임을 나는 매일 현장에서 증명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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