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문을 열면 내가 보인다

제1부. 태도 : 생활지원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것

by cej


생활지원사는 보호자가 아니라 동행자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보호자’라는 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어르신의 안위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은 나를 과도하게 긴장시켰다. 굽은 허리로 위태롭게 걸으시는 어르신을 보면 얼른 달려가 팔짱을 끼워야 했고,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가 보이면 어르신의 아쉬움 섞인 목소리를 뒤로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시켰다. 그것이 내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이자, 진심 어린 ‘보호’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눈빛은 나의 기대와 달랐다. 내가 정성을 다해 모든 일을 대신 해드릴수록, 어르신들의 눈동자에서는 생기가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마치 자기 삶의 운전대를 타인에게 빼앗긴 사람처럼, 어르신들은 점점 더 수동적으로 변해갔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휘두른 ‘보호’라는 이름의 칼날이 어르신들이 수십 년간 지켜온 ‘삶의 주권’을 베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날, 인지 기능이 조금 저하된 박 할머니 댁에서의 일이었다. 할머니는 낡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손을 떨며 된장찌개를 끓이려 애쓰고 계셨다. 국물이 넘치고 불꽃이 사방으로 튀는 아찔한 광경에 나는 질겁하며 할머니를 밀어냈다. "어르신, 위험해요! 제가 다 해드릴 테니까 저기 가서 앉아 계세요."

할머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내가 찌개를 끓이는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셨다. 고마워하실 줄 알았던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자네가 다 해버리니, 이제 이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구먼. 밥 먹는 입만 살아있는 인형이 된 기분이야." 그 말씀은 가슴 저린 통증으로 다가왔다. 아, 나는 지금 할머니를 보호하고 있는 게 아니라, 할머니의 존재 이유를 지우고 있었구나.


그날 이후 나는 ‘보호자’라는 무거운 완장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았다. 대신 어르신의 옆자리에 나란히 서는 ‘동행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동행은 보호와 다르다. 보호가 위에서 아래로 건네는 시선이라면, 동행은 옆에서 함께 바라보는 시선이다. 보호는 상대를 ‘약자’로 규정하지만, 동행은 상대를 ‘동반자’로 존중한다.

동행자가 되기로 마음먹자 내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이제 나는 어르신이 찌개를 끓일 때 국자를 뺏지 않는다. 대신 옆에 서서 "어르신, 불이 조금 센 것 같아요. 제가 살짝 줄여볼까요?"라고 묻는다. 어르신이 떨리는 손으로 양말을 신을 때, 5초면 끝날 일을 5분 동안 기다려준다. 어르신이 마침내 스스로 양말을 신어냈을 때, 우리는 함께 환하게 웃는다. 그 5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어르신이 당신의 존엄을 지켜내는 신성한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동행자로서의 삶은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기도 했다. 보호자라는 마음으로 어르신을 대할 때는 어르신의 아픔이 곧 내 아픔이었고, 어르신의 고집은 나를 향한 공격처럼 느껴졌다. 과도한 책임감은 나를 금세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행자라는 거리감을 두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어르신의 삶은 어르신의 것이고, 나는 그 길의 한 구간을 함께 걷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함께 걷되 내 다리로 걷지 않고 어르신의 발걸음을 지지해주는 것. 어르신이 넘어지려 할 때 손을 내밀되, 다시 일어서는 것은 어르신의 힘으로 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것. 이것이 얼마나 정교하고 따뜻한 기술인지를 나는 매일의 현장에서 배운다. 동행자는 어르신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걸어온 긴 세월의 결을 존중하며, 그 결이 마지막까지 아름답게 이어지도록 곁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줄 뿐이다.


한번은 거동이 몹시 힘든 할아버님과 동네 산책을 나간 적이 있다. 평소라면 휠체어를 밀어 단숨에 공원까지 갔겠지만, 그날은 할아버님의 제안대로 보행기를 밀며 천천히 걷기로 했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는 데도 신호등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미안해하는 할아버님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덕분에 평소엔 못 보던 길가에 핀 작은 꽃들도 보게 되네요. 천천히 가요. 저도 이 속도가 참 좋네요.“

그날 할아버님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내 손을 꼭 잡으셨다. "자네랑 걸으면 내가 아직 세상의 짐이 아닌 것 같아 참 고마워." 그 한마디에 나는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았다. 누군가의 짐을 억지로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짐의 무게를 함께 나누며 곁을 지키는 사람. 그것이 바로 생활지원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진정한 가치였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마지막 구간에서 누군가의 동행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를 무력한 존재로 대하며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는 보호자이기보다, 나의 서투름을 인내해주고 내 의사를 끝까지 물어봐 주는 동행자이기를 누구나 바랄 것이다.


생활지원사로 산다는 것은 매일 그 누군가의 동행자가 되어주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내 속도를 죽이고, 내 주장을 누르고, 오직 어르신의 존재 자체가 빛날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주는 일. 이 일은 결코 희생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의 생애가 마무리되는 가장 고결한 순간에 초대받아, 그 존엄의 끝자락을 함께 붙잡고 걷는 영광스러운 동행이다.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보호하려 들지 마라. 오직 함께 걸어라.' 내 마음의 완장을 내려놓고 어르신의 눈높이에 맞춰 허리를 숙인다. "어르신,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우리 같이 천천히 한번 지내볼까요?"

동행자로서 건네는 이 소박한 인사가 어르신의 닫힌 마음을 열고, 차가운 공기를 온기로 채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각자의 생이라는 길 위에서 아름답게 조우한다. 빠르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의 길은 충분히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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