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나를 부르다

제1부. 중년, 길 위에 멈춰 서다

by cej

1.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낯설어졌다


아주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사표를 냈다거나, 인생을 뒤흔들 사건이 벌어졌다거나, “이제부터는 나답게 살겠다!” 같은 선언을 한 날도 아니었다. 그날은 그저 평범한 아침이었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고, 일어나자마자 허리를 한 번 잡고 숨을 고른 뒤,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시작했다.


문제는 양말을 신다가 발생했다. 어느 날 문득, 인생이 낯설어졌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신던 양말이 어느 순간부터는 작은 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허리를 굽히는데 숨이 찼고, 그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왔나?’ 순간 웃음이 나왔다. 양말 하나 신다가 인생을 되돌아보는 나이라니.

그런데 웃고 나서 조금 서글퍼졌다. 이게 웃을 일인지, 울 일인지 애매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꽤 성실하게 살아왔다. 해야 할 일은 했고, 피해야 할 일은 피해 왔다. 큰 사고 없이, 큰 일탈 없이, 남들이 말하는 ‘괜찮은 인생’의 궤도 안에 있었다.


문제는 그 궤도가 언제부터인지 내가 원해서 들어간 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젊을 때는 인생이 직선이라고 믿었다. 열심히 하면 위로 올라가고, 조금만 더 참으면 좋은 날이 오고,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이제 됐다”는 안도감이 찾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중년에 와서 보니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출구가 여러 개인 회전교차로 같았다. 열심히 돌았는데, 어디서 빠져나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면 뒤에서 경적이 울릴 것 같았고, 그렇다고 계속 돌기에는 연료가 부족했다.


가장 헷갈리는 건 이것이었다. 지금의 삶이 내가 선택한 결과인지, 아니면 그저 여기까지 흘러온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점.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택했고, 솔직한 말보다는 무난한 말을 골랐고, 지금보다는 나중 이를 더 자주 말하며 살았다. 그 선택들이 하나씩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질문이 ‘어쩔 수 없지’라는 말로 덮이기 시작했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나였다. 그런데 어딘가 낯설었다. 예전에는 밤을 새워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잠을 조금만 설쳐도 하루가 무너진다. 건강검진 결과지는 더 이상 참고 자료가 아니라 다음 인생 계획을 좌우하는 문서가 되었다.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경고처럼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이상한 건, 인생이 힘들어서 낯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바쁘게, 너무 성실하게 살아온 끝에 문득 멈춰 섰을 때 낯설어졌다는 사실이다.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우리는 늘 괜찮아야 했고, 누군가의 기대에 맞춰야 했고, 나보다 중요한 것들이 항상 앞에 있었다는 걸. 그러다 보니 정작 ‘나’는 항상 다음 순번으로 밀려나 있었다.


인생이 낯설어졌다는 감각은 그래서 불편하지만 정직하다. 그동안 애써 무시해 왔던 질문이 더 이상 미뤄지지 않는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만족하고 있는가. 앞으로도 이 방향으로 가고 싶은가.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직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포기한 상태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중년의 삶은 생각보다 솔직하다. 거짓말을 하려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 좋은 척, 괜찮은 척, 다 잘된 척하기에는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인생은 낯설어지고, 대신 조금 더 진짜에 가까워진다. 아직 답은 없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는 남들이 정해준 방향이 아니라,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속도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양말을 신다 숨이 차는 나이라도, 그게 인생의 끝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이 다시 운전대를 잡으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인생이 낯설어졌다면, 그건 망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일 것이다. 익숙함에 속지 않고, “이대로 괜찮은가”를 묻는 용기. 중년의 삶은 아마도 그 질문을 안고 살아가는 시간일 것이다. 완벽한 답을 찾기보다는, 적어도 나에게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조금씩 방향을 조정해 가는 것.

오늘도 여전히 서툴고, 가끔은 다시 같은 자리를 돌겠지만, 이번에는 최소한 왜 돌고 있는지는 알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양말을 신는다. 숨을 한 번 고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러나 예전과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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