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중년, 길 위에서 멈춰 서다
언젠가부터 몸이 생각을 따라오지 않는다. 마음은 이미 부엌을 지나 거실까지 갔는데, 몸은 아직 의자에서 “잠깐만”을 외치고 있다. 예전에는 “아, 깜빡했네” 하고 웃어넘길 일이 요즘엔 “왜 거기까지 갔더라”로 바뀌었다. 체력은 줄고, 대신 생각이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쓸데없는 생각이 늘어났다. 젊을 때는 몸으로 살았다.
피곤해도 움직였고, 이유를 따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꾸리고 하루를 버텨내느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데 중년이 되니 상황이 바뀌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은데, 머리는 쉬질 않는다. 누워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일어나면 무릎이 아프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자니 생각이 시작된다. 생각은 참 성실해서, 내가 부르지 않아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그때 왜 그 선택을 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뭘 하며 살아야 할까.” 이 질문들은 대체로 밤에 온다. 몸이 지쳐 조용해질 때, 생각은 그제야 출근을 한다. 그래서 중년의 밤은 유난히 길다. 젊을 때의 불면은 설렘이나 걱정 때문이었다면, 지금의 불면은 정산되지 않은 인생 장부 같다.
그동안 잘 살아온 건지, 놓친 건 없는지, 아직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하나씩 들춰본다. 체력이 줄었다는 건 인정하기 싫지만 부정할 수 없다. 예전엔 하루에 열 가지를 해도 멀쩡했는데, 요즘은 세 가지를 하면 ‘오늘 할 일 다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대신 생긴 게 있다. 생각의 깊이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을 말, 행동, 관계들이
이제는 마음에 오래 남는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하루 종일 곱씹어지고, 뉴스 한 줄에도 괜히 감정이 흔들린다.
이 나이가 되면 알게 된다. 체력이 줄면 생각이 많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몸이 조용해지니 마음의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이다. 문제는 그 소리들이 꼭 필요한 말만 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 늦은 거 아니야?” “이제 와서 뭘 더 바래?” 같은 말들도 꽤 큰 목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과 거리 두기를 연습 중이다. 모든 생각을 다 믿지 않기로 했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유로 인생까지 줄어든 건 아니니까.
하루에 많이 못 움직이면, 대신 천천히 움직이면 된다. 빨리 못 가면 돌아가도 되고, 멈춰서도 된다.
젊을 때는 속도가 미덕이었지만, 지금은 방향이 더 중요하다. 웃긴 건, 체력이 줄었다고 해서 의욕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하고 싶은 건 여전히 많다. 다만 예전처럼 무작정 덤비지 않을 뿐이다. 이제는 계산도 하고, 고민도 한다. 그게 바로 중년의 생각 많아짐이 아닐까. 무모함 대신 신중함이 들어선 자리. 실패를 덜 하기 위한 게 아니라, 나를 덜 소모하기 위한 생각들이다. 가끔은 이런 나 자신이 낯설다. 예전의 나는 어디 갔을까 싶다가도, 지금의 내가 더 솔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체력이 줄어드니, 싫은 걸 억지로 하지 않게 됐다.
생각이 많아지니, 진짜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게 됐다. 이건 퇴보가 아니라 변형이다. 다른 방식의 성장이다.
중년은 참 묘한 시기다. 내려놓아야 할 것과 붙잡아야 할 것이 동시에 보인다. 체력은 줄었지만, 인생을 보는 시야는 넓어졌다. 예전엔 남의 기준으로 바쁘게 살았다면, 이제는 내 기준을 세우느라 느려진 것이다.
느려졌다고 뒤처진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속도로 걷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몸은 예전 같지 않다. 계단 앞에서 잠깐 숨을 고르고, 장바구니를 들며 “이 정도면 운동이지”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나를 살피며 살아본 적이 있었나 하고. 체력이 줄어들어서 비로소 나를 생각하게 된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나이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체력은 줄고 생각은 많아졌지만, 그 생각 덕분에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예전처럼 많이 하지는 못해도, 이제는 나에게 맞게 살 수 있다. 그게 중년이 준, 생각 많아진 나이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