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중년, 길 위에서 멈춰 서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 이제 더는 못 참겠구나.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크게 상처받은 날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밥을 하고, 치우고,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는 삼킨 하루. 그런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억울한 것도 아닌데 숨이 막혔다. 그 순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너무 오래 참아왔다는 걸. 참는 건 나의 특기였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말 잘 듣는 딸, 분위기 맞추는 사람, 문제를 만들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참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참는 건 미덕처럼 여겨졌다. 조금 불편해도, 조금 억울해도, ‘내가 참으면 되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했다.그렇게 참다 보니 참는 게 성격이 됐다. 불만이 생기기 전에 스스로 눌러버렸고,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그 정도는 아니야”라며 넘어갔다. 문제는 참는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감정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저장되는 것이었다. 중년이 되어서야 그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이유 없는 피로, 사소한 일에도 울컥하는 마음, 혼자 있을 때 밀려오는 허무함. 처음엔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렇겠지, 호르몬 때문이겠지 하며 넘겼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건 단순한 노화가 아니었다. 너무 오래 참아온 사람의 신호였다.참는 데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이 나이에 알았다. 젊을 땐 체력이 넘쳐서 웬만한 감정은 몸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생각할 틈도 없었다.
그런데 체력이 줄어드니, 억눌러두었던 감정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었다. “나는 언제 쉬지?” “내 마음은 누가 들어주지?” 하고 묻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 질문들이 낯설고 불편했다. 내가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제 와서 나만 생각하는 건 아닐까, 가족을 덜 배려하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한 번도 나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야 조금 나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참기만 하긴 싫어졌다는 건, 소리를 지르겠다는 뜻은 아니다. 누군가와 싸우겠다는 선언도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을 무시하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불편하면 불편하다고 느끼고, 싫으면 싫다고 인정하는 것. 꼭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조차 부정하지 않는 것. 그게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신기하게도 참는 걸 줄이자 삶이 조금 단순해졌다. 모든 관계를 잘 유지하려 애쓰지 않게 되었고, 모든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지도 않게 됐다. 대신 선택을 하게 되었다.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저건 내려놓아도 되는 것. 예전엔 다 짊어지고 가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오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여전히 먼저 참을까 고민하고, 말하고 나면 괜히 후회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또 참았어” 대신 “그래, 아직 연습 중이잖아”라고 말해준다.
중년이 된다는 건, 포기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분명해지는 게 많아진다. 무엇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지, 어디까지가 나의 책임인지. 그 중 하나가 바로 무조건적인 참기였다. 참는 것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라는 걸, 이 나이에야 알게 되었다. 더 이상 참기만 하긴 싫어졌다는 건, 이제 나도 내 편이 되어주겠다는 뜻이다. 세상이 나를 배려해주지 않더라도, 최소한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이 적당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만큼 살아봤으니까, 이제는 말해도 될 자격이 생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연습 중이다. 참지 않고 느끼는 연습, 참지 않고 쉬는 연습, 참지 않고 나를 선택하는 연습.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평생 참기만 하며 살아온 사람이, 이제야 조금 달라지려는 중이니까.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