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태도 생활지원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것
그그럴 수도 있지’가 돌봄의 기본 언어인 이유
생활지원사로 활동하며 우리가 만나는 어르신들의 세계는 때때로 우리의 상식과 논리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풍경들로 가득하다. 한여름에 겨울 외투를 껴입고 계시거나, 이미 상해서 곰팡이가 핀 음식을 "아직 먹을 만하다"며 소중히 챙겨두시는 모습, 혹은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식 욕을 퍼부으시다가도 금세 서럽게 우시는 모습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의 나는 그런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속으로 '대체 왜 저러실까?'라는 의문을 지우지 못했다.
우리의 뇌는 본능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찾으려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마주하면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을 ‘비정상’ 혹은 ‘고쳐야 할 것’으로 규정하려 든다. 하지만 돌봄의 현장에서 '왜?'라는 질문은 때로 어르신들에게 심문처럼 다가간다. "어르신, 왜 상한 음식을 안 버리세요?"라는 물음 뒤에는 '당신은 틀렸고, 내 말이 맞다'라는 판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의 여백인 것이다.
‘그럴 수도 있지’는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는 겸손함에서 나온다. 전쟁통에 굶주림을 겪어본 어르신에게 음식은 단순히 영양소가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다. 상한 음식 한 점을 버리는 것이 그때의 공포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감히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평생을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억눌려 사신 할머니가 치매 증상과 함께 쏟아내는 거친 욕설은, 수십 년간 가슴속에 쌓아온 응어리진 한의 뒤늦은 분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읊조리는 순간, 날카롭게 서 있던 우리의 잣대는 힘을 잃는다. 판단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해와 연민이 깃든다. "어르신, 아까운 마음이 드셔서 못 버리시는군요. 그럴 수도 있지요." 이 한마디는 어르신에게 '나를 가르치려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을 선물한다. 어르신들은 당신의 삶을 부정당하지 않을 때 비로소 변화의 여지를 보여주신다.
또한,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은 생활지원사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감정 노동의 최전선에 서 있다. 정성을 다해 드린 말씀에 버럭 화를 내시거나, 고마움은 커녕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어르신을 만날 때 우리 마음에도 생채기가 난다. '내가 어떻게 해드렸는데 나한테 이러실 수 있나'라는 억울함이 차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 스스로에게 "어르신이 몸이 아프고 마음이 외로우시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속삭여 본다. 이 마법 같은 주문은 어르신의 화살이 내 심장에 직접 꽂히는 것을 막아준다. 어르신의 거친 행동을 그분의 인격으로 보지 않고, 노화와 질병, 고독이 만들어낸 '증상'으로 객관화할 수 있게 돕기 때문이다. 상대를 탓하지 않고 상황을 수용할 때, 우리는 소진(Burn-out)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돌봄을 이어갈 수 있다.
돌봄의 기본 언어로서 ‘그럴 수도 있지’가 갖는 힘은 '연결'에 있다. 노년의 가장 큰 비극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내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 내 속도가 느리다고 재촉하는 사람, 내 기억이 잘못됐다고 교정하려는 사람들에 둘러싸일 때 어르신들은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주는 사람 앞에서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까지도 편안하게 드러낸다. 그 수용의 공간 안에서 비로소 진짜 돌봄이 시작된다.
물론, 이 말이 어르신의 모든 위험한 행동을 방치하라는 뜻은 아니다. 건강을 해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그 개입의 방식조차 "그럴 수도 있지"라는 존중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어르신, 아까워서 간직하고 싶으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건강이 걱정되니 이건 제가 깨끗한 걸로 바꿔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것과 무작정 쓰레기봉투를 들이미는 것은 천지 차이다.
우리는 모두 나이가 든다. 언젠가 우리도 눈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흐릿해지며, 고집스러운 노인이 될 것이다. 그때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가 "그럴 수도 있지요, 당신이 살아온 세월이 오죽했겠어요"라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위로가 될까? 생활지원사로서 우리가 어르신께 건네는 이 한마디는, 훗날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듣고 싶은 가장 따뜻한 고백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방문하는 집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의 씨앗을 품고 들어간다. 어르신이 쏟아내는 불평불만도, 이해할 수 없는 집착도, 반복되는 넋두리도 그 씨앗을 거름 삼아 넉넉히 받아내려 노력한다. 말로 내뱉지 않더라도 내 눈빛과 손길에 "그럴 수도 있지"라는 온기가 배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은 어르신들에게 "그러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려 들지만, 생활지원사인 우리는 "그럴 수도 있다"라고 끄덕여주는 유일한 편이 되어드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돌봄의 시작이자 끝이며, 우리가 그 낯선 문턱을 넘는 가장 아름다운 이유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