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문을 열면 내가 보인다

제1부. 태도 생활지원사가 가장 먼저 배우는 것

by cej


신발을 가지런히 놓는 순간 시작되는 신뢰


생활지원사로 일하며 수많은 집의 현관을 드나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신발이었다.

정리의 상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건 늘 신발의 방향이었다. 앞을 향해 가지런히 놓인 신발, 벗어놓은 채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신발, 한 짝은 안쪽을 다른 한 짝은 바깥을 향한 신발. 말이 없는데도 신발은 그 집의 오늘을 조용히 알려주었다.


혼자 사는 어르신 댁을 방문했을 때였다. 신발장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신발들은 제각각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과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한자리에 섞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어르신은 무심하게 말했다. “나도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

나는 일을 마치고 나오며 신발 하나를 살짝 돌려놓았다. 정리를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음에 작은 기준점 하나쯤은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표시처럼.


또 다른 집에서는 신발이 늘 정확히 바깥을 향해 놓여 있었다. 규칙적인 생활, 정확한 시간, 흐트러짐 없는 동선. 하지만 어느 날 그분은 말했다. “요즘은 나가는 게 겁나요.”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신발의 방향이 늘 같은 쪽을 보고 있다고 해서 마음까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자신이 바뀐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본 많은 삶은 그렇지 않았다. 변화의 시작은 대개 아주 사소했다. 신발 하나의 방향을 고치는 정도의 움직임이었다.

어느 날 늘 신발이 흐트러져 있던 어르신 댁에서 한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히 바깥을 향해 놓여 있었다.

“내일 병원 가려고요. 미루지 않으려고.”

그 말은 계획도 다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한 방향 선택이었다. 나는 그날의 신발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삶이 엉킨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신발부터 보라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나만 돌려놓아 보라고.

허리를 조금만 숙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오늘의 태도를 바꾸고 내일을 다르게 만든다.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서 있는가. 말보다 먼저 신발이 알고 있다.


나는 이 일을 하며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말로 설명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을. 대신 생활의 가장 낮은 곳, 가장 무심한 자리에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을.

현관은 집의 시작이자 끝이고 신발은 그 경계에 놓인 물건이다. 그래서인지 신발은 늘 말이 없으면서도 솔직했다.

어떤 집의 신발은 오래 신지 않아 굳어 있었고 어떤 집의 신발은 닳은 뒤꿈치를 숨기듯 벽 쪽으로 밀려 있었다. 급히 벗어던진 신발에서는 피로가 보였고 가지런히 맞춰진 신발에서는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는 그 신발들을 통해 오늘 하루의 무게를 가늠했다.


생활지원사의 일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곁을 지켜주는 일에 가깝다. 대신 판단하지 않고 대신 선택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주변을 조금 정리해 줄 뿐이다. 신발 하나를 돌려놓는 일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다시 나설 수 있는 자리는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바꾸려면 마음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순서가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몸이 먼저 움직일 때 마음이 뒤따라오는 경우도 많다.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생각을 끌어내고 생각이 다시 행동을 밀어준다. 그렇게 변화는 조용히 시작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현관 앞에서 잠시 멈춘다. 그리고 속으로 묻는다. 지금 내 신발은 어떤 방향을 보고 있는지. 나도 모르게 미루고 있는 일은 없는지. 나가야 할 곳을 알면서도 서성이고 있지는 않은지. 대답은 언제나 말보다 먼저 눈앞에 놓여 있다.


신발의 방향을 바꾼다고 삶이 당장 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향을 정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 사실 하나로 하루를 견디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수많은 현관에서 그런 순간을 보았다. 아주 작고 조용하지만 분명히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누군가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누군가는 다시 밖으로 나선다. 그 차이는 능력이나 의지보다도 지금 발끝이 향한 곳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마음에 남겨두었다. 신발장은 말이 없지만 삶의 방향에 대해서만큼은 늘 정직하다는 것을.


오늘도 누군가의 현관에서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신발을 보며 삶을 읽는 이 일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또 감사하다. 나 역시 누군가의 시선 앞에 놓인 한 켤레의 신발일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현관은 늘 배움의 자리다. 나와 타인의 하루가 잠시 겹치는 곳, 그 경계에서 나는 오늘도 방향을 배운다. 신발 하나가 가르쳐 준 삶의 태도는 생각보다 오래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도 나는 그 배움을 잊지 않으려 현관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방향을 정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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