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임신이 두려웠던 걸까
딩크로 살 생각은 없었지만,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었다.
서른 셋에 결혼해서 서른 여섯이 되었고 3년의 결혼생활이 지나갈 무렵이었다.
피임을 잘 했어야 했는데, 근데 뭐 오히려 잘 된 걸 수도 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에 대한 엄마의 압박같은 잔소리가 심해질 무렵, 덜컥 임신이 됐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대부분
1) 욱욱 헛구역질을 하다가
2) 설마? 하며 혼자 화장실에서 임테기를 해본다
3) 두줄을 발견
4) 남편에게 '당신, 이제 아빠됐어~'
5) 행복해하며 '고생했어!!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6) 그리고 갑자기 시간 지나가며 만삭이 된 아내 등장
뭐 이런 순서로 임신을 표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둔하게도 임신했다는 걸 전혀 몰랐고(술을 그렇게 먹었다..), 너무 황당하게도 회사 건강 검진으로 임신임을 알게 됐다. 당당하게 임신 가능성 없음에 체크를 하고 자궁경부암 예방주사에 엑스레이까지 찍었더랬다. 검진이 거의 끝날 무렵 자궁 초음파를 받다가, 의사가 좀 이상한 거 같다며 수면내시경 하지 말고 산부인과부터 가보라고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초음파 전에 임테기부터 하자고 했고, 임테기를 가져다주고 몇분 뒤 병원 로비에서 '원님, 임신 맞으세요~!' 하는 간호사의 우렁찬 소리로 남편과 함께 그때 병원에 있던 모든 환자들과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평소에도 결혼이나 임신에 대한 로망은 없었기 때문에 크게 난감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더 주도적으로 임신에 대해 인지하고 알릴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그 다음주에 초음파로 처음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내 몸에 누군가가 있다니,,, 처음엔 신기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임신 초기에 나를 힘들게 한 건 몸보다는 마음, 구체적으로 정신적인 힘듦이었다. 아무런 생각이나 준비 없이 찾아온 임신이었기에 이걸 받아들이고 나름대로의 해석과 의미를 두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 없이 살 거라는 확고한 신념도, 그렇다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의지도 없었던 내게 아이가 생겼고, 이제는 이걸 감당하고 받아들이고 다른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는 신기하고 감사하다가도 하루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그런 시간이 3개월은 지속됐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건 '나를 잃는 것' 이었던 것 같다. 아이라는 존재가 나를 잠식할까봐, 그래서 내가 없어질까봐, 모든 걸 포기해야 할까봐 무서웠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내가 영원히 책임져야하는 존재가 생긴 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인간은 보통 9개월 간의 임신 기간을 거쳐 출산을 한다.
'일주일만에 임신하고 낳으면 얼마나 좋아~' 이런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 9개월이란 시간도 (너무 힘들지만) 참 짧게 느껴진다. 9개월이란 시간 동안 나에 대해, 아기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했다. 여러가지 자료와 글, 책을 보면서 생명에 대해, (그리고 조금 과장하자면) 우주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벌었다. 펌웨어 업데이트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임신을 지나 출산을 하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무사히 복직을 했고 조금씩 원래 알던 나로 돌아가고 있다. 더 잊어버리기 전에 그 기억을 기록하고, 아이와 더불어 '나' 또한 지키고 싶은 이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