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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우 Mar 20. 2020

옐로모바일 창업가,
투자의 귀재 이상혁을 만나다

스타트업은 어떻게 유니콘이 되는가

초창기 옐로모바일은 신사동 사거리 주유소를 지나면 나오는 높지 않은 건물 중 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옆에 조용한 커피숍이 있었는데, 우리는 종종 그곳에서 회의를 하곤 했다. 이후 대규모 펀딩을 받고 15층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J타워)로 옮기기 전까지 나는 신사역 사거리에 서면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약간의 불안과 걱정 그리고 그 모든 걸 압도하는 기대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옐로모바일, 이건 츄러스 가게와는 리스크의 규모가 다른 모험이었다. 사실 합류를 결정하고 나서도 불확실성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옐로모바일 경영진과 만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설령 만났다고 해도 내가 가진 의문점을 솔직히 물어볼 수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러지 못했을 거다. 내 질문은 결국 “당신 사기꾼 아닌가요?”라고 묻는 것이었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의문점을 풀지 못한다면 불편한 마음은 계속될 것 같았다.


친구는 이상혁 대표와 리더 그룹에게 “여행 비즈니스를 같이 할 친구를 찾았다”고 전했고, 바로 시작해야 할 일을 협의했다고 했다. 그건 바로 인수할 기업을 찾는 거였다. 사실 난 여행업에 대해 전혀 몰랐기 때문에 상장사를 중심으로 스터디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산업 구조와 연평균 성장률, 그리고 주요 회사의 전략 등과 관련한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확실히 여행 시장은 예상한 것보다 변화가 느렸다. 패키지여행에서 자유 여행으로 트렌드가 바뀔 거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패키지 여행 상품이 대세였다. ‘마이리얼트립’ 같은 여행 스타트업이 이제 막 생겨나고 있긴 했지만 아직은 생존을 고민하던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을 인수해야 할까? 그건 산업마다 다르다. 산업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뷰티 산업처럼 개별 브랜드가 곧 차별화 요소로 인식되는 경우, 새로운 브랜드가 성장의 축이 될 수 있다. 특히 지역과 인종에 따라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르고,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소규모 브랜드를 인수하는 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생산 및 기술과 브랜드 소유가 이원화되면서, 높은 기술력 없어도 마케팅 등을 통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다. 뷰티업계에서는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 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을 제외한다면 인수를 마다할 이유가 별로 없다.


하지만 기술 산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술 기업을 인수해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야 하는 복잡한 계산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요즘 같이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는 인수합병의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하나의 기술을 검토하는 사이에도 그 기술의 생명은 타 들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검증되지 않은 초기의 기술 기업들을 인수하고 실패하는 일들을 반복하기 위해서는 리스크에 대한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패한 사례에 대한 책임의 수준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초기 기업 인수를 꺼리는 이유가 이러한 시너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한 금액의 5% 정도만 회수될 것을 각오하는 과감한 베팅은 ‘구글’ 정도의 내공 있는 회사들만 할 수 있다.


여행업의 경우 뷰티 산업에 가까웠지만, 점차 기술 산업 성격의 딜이 생겨나고 있다. 여행업은 보통 1개의 특정 카테고리에서 성공을 거둔 뒤 다른 카테고리로 확장하는 전략을 쓴다. 호텔 예약으로 시작해 여행지에서의 F&B(food and beverage) 혹은 레저 활동으로 카테고리를 확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최근엔 기존 시장에서 여행업이라고 하기 어려운 기능이나 서비스를 인수하기도 한다. 여행 플랫폼이 일정 앱을 인수해 본 서비스와 결합하는 식이다.


다음으로 체크할 건 옐로모바일의 전략이다. 나는 이상혁 대표와 친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수를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여행업체 인수 후 어떠한 확장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다. 실제로 롱리스트(long list, 1차적인 인수 타겟 기업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중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을 추려나가는 건 확장 및 인수 전략이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원론적인 것이다. 보통은 자신이 잘 아는 기업을 우선적으로 검토한다. 옐로모바일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 상품 유통 경험을 가진 내 친구를 영입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알아야 할 건 내 친구 머릿속에 있는 기업의 리스트와 그 친구의 업계 네트워크였다.


나와 친구는 업무를 암묵적으로 이렇게 나눴다. 친구가 옐로모바일과 협의하여 인수 대상 기업 리스트를 정해오면, 나는 해당 기업과의 미팅에 참여해 설득하는 일을 함께 하고 인수에 필요한 기타 절차를 진행하기로 말이다.


이상혁을 만나다

2014년 5월의 어느 수요일이었다. 나는 친구로부터 첫번째 인수 대상 기업을 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주도에 있는 기업인데, 내가 이 회사 대표랑 한 번 만나서 인수 관련 내용을 전달했어. 회사 대표가 이번 주에 서울에 와서 이상혁 대표를 만날 거야. 인수를 위한 첫 미팅인 셈인데, 그 자리에 너도 나와.”


그 자리는 인수 대상 기업과의 첫 미팅이기도 했지만 나와 이상혁 대표의 첫 미팅 자리기도 했다. 내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중요한 미팅이었다. 옐로모바일을 의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인수 방식이었다. 다가올 미팅에서 바로 그 지점, 인수 방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인수 전략을 포함한 전체적인 전략도 엿볼 수 있고 말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상혁 대표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문제의 바로 그 날. 회사를 마치고 급하게 신사역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엄청난 긴장감에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합류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나는 내 판단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섣부른 결정을 한 건 아닌지, 지금이라도 번복해야 하는 건 아닌지 여전히 갈등하고 있었다. 오늘 미팅은 그런 의심을 걷어낼 수 있는 자리일 수도 있었다.


역사적 미팅에 앞서 나는 인근 커피숍에서 친구와 만나 간략한 회의를 했다. 묘한 긴장감과 경건함에 휩싸여 커피숍으로 향했다. 하지만 친구가 입을 여는 순간 긴장감과 경건함은 싹 사라졌다. 피인수기업의 대표는 이날 미팅의 상대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친구의 전 회사에 자신의 기업을 매각하는 걸로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나와 친구는 그 대표에게 ‘지금 당신의 회사를 살 기업은 애초 생각한 곳이 아니라 옐로모바일이며, 잠시 뒤 만나게 될 대표는 너가 알던 그 회사 대표가 아니다’라는 것부터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황당했지만, 자초지종을 물어볼 여유조차 없었다. 미팅이 코 앞이었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게다가 피인수기업의 대표가 만약 이 사실을 듣고 미팅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면, 이상혁 대표의 인수 전략을 들을 기회가 사라질 터였다. 일단 그 대표를 협상 테이블에 붙잡아둬야 했다.


잠시 뒤 피인수기업의 대표가 커피숍으로 왔다. 서로 간단히 인사를 한 뒤 옐로모바일로 이동했다. 옐로모바일 사무실엔 적잖은 사람들로 붐볐다. 성장하는 회사다운 분주함이 묻어났지만, 스타트업 특유의 붕 뜬 분위기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건 열기였다. 로켓에 올라탄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특유의 열기가 모든 걸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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