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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드라마라는 이름의 역설

〈나의 아저씨〉, 버티는 힘의 위로

by Jwook

〈나의 아저씨〉는 ‘인생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는다. 나 역시 그랬다. 힘든 시절, 이 드라마는 오래 남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왜 우리는 모두 이 드라마를 ‘위로’라고 부를까?

〈나의 아저씨〉는 따뜻하지만, 동시에 냉정하다. 구원을 약속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나는 이 역설을 풀기 위해, 이 드라마를 ‘건축학의 시선’으로 다시 보았다. 우리가 느낀 위로의 구조, 그 안에 숨어 있는 버티는 힘을 알고 싶었다.


균열이 보이는 시간


드라마는 박동훈의 출근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같은 엘리베이터, 같은 지하철, 같은 책상. 하지만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어제는 아내의 외도를 알았고, 오늘은 부하 직원이 자신을 도청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그는 출근한다.

이미지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현장포토)

〈나의 아저씨〉의 핵심은 이 ‘반복’이다. 균열이 생긴 일상을 그대로 살아내는 시간.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과 손끝,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을 길게 잡는다. 지루하고 고요한 그 반복이야말로 삶의 구조가 버티고 있다는 증거다.


박동훈은 말한다.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이 한마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의 역학을 꿰뚫는 문장이다. 진리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버티고 있기에 삶은 계속된다.


버티는 힘 - 보이지 않는 저항


건축에서 건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외부의 압력과 싸운다. 바람이 불고, 무게가 실리고, 진동이 전해질 때 건물 내부에는 그것을 밀어내려는 힘이 생긴다. 이것을 응력(應力), 즉 ‘맞서는 힘’이라 부른다.

보이는 균열은 보강의 기회이지만, 보이지 않는 균열은 한순간의 붕괴를 부른다. 무너지지 않는 건물은 균열이 없는 건물이 아니라, 균열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저항력이 작동하는 건물이다.


박동훈의 내면도 그렇다. 배신, 책임, 무력감이 뒤섞여 있지만 그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매일 회사에서 일을하고, 형들과 만나 술을 마시고, 다음 날 또 출근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이 바로 그가 버티는 힘이다.

이미지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 현장포토)

소리를 통해 이어지는 내면


이지안은 그 일상의 ‘소리’를 도청한다. 밥 먹는 소리, 숨소리, 형들과의 대화. 처음 도청은 감시였지만, 점차 다른 것으로 변한다. 지안이 듣는 건 박동훈의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을 버티는 진동의 구조다.


그녀는 자신이 듣고 있는 것이 누군가의 저항력임을 감지한다. 그 순간, 도청은 감시가 아니라 서로의 삶이 공명하는 장치가 된다.

이미지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 현장포토)

나란히 앉는 사람들


〈나의 아저씨〉의 주요 공간은 위계가 없다. 후계동 골목, 술집, 회사 복도 — 모두 수평의 구조다. 박동훈은 영웅이 아니다. 그저 형제 중 둘째, 회사의 중간관리자, 평범한 한 사람이다. 세 형제가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 그 상징이다.


서로에게 조언하지 않는다. 판단도, 위로의 말도 없다. 다만 같은 주파수로 떨린다. 누군가의 고통이 울리면, 다른 이의 가슴이 진동한다. 이것이 한국적 위로의 구조다 — 말보다 공명, 해결보다 함께 버티는 기술.


지안 역시 그 구조 속으로 천천히 들어온다. 처음엔 이방인이었지만, 점차 박동훈의 일상 속 소리에 자신의 리듬을 맞춘다.


그녀가 말한다. “아저씨, 저 많이 힘들어요.”

박동훈은 짧게 답한다. “괜찮아요. 잘하고 계세요.”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제 자신의 균열을 말할 수 있고, 누군가 그 균열을 함께 견딘다.

이미지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 현장포토)

가장 낮은 곳의 힘


박동훈은 이지안을 채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달리기 잘한대. 됐어, 그걸로 해.” 달리기는 발의 힘이다. 지안의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 능력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생존력의 다른 이름이다.


빚에 쫓기고, 세상에 내몰리면서도 달릴 수 있는 사람. 그 발의 힘이야말로 그녀의 내력이자, 박동훈이 본 ‘버티는 사람의 조건’이었다.


발은 건물의 기초다. 가장 낮고, 가장 더럽고, 가장 많은 무게를 견디는 곳.


〈나의 아저씨〉는 바로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둔다. 세상은 여전히 무겁지만, 그 발이 여전히 달리고 있다는 사실 — 그것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단단한 위로다.

이미지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 현장포토)

균열 속에서 쌓이는 시간


〈나의 아저씨〉는 구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대신 시간을 쌓는다. 똑같은 출근길, 똑같은 밥상, 똑같은 대화 — 그 안에 이제 서로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전진이 아니라 적층(積層)의 시간, 무너짐 속에서도 쌓이는 내밀한 구조다.

“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팔린 거? 인생 망가졌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거? 다 아무것도 아니야.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박동훈)
“죽고 싶은 중에, 죽지 마라. 파이팅 해라. 그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박동훈)
균열을 견디는 힘, 그 저항의 진동이 우리를 살게 한다.

〈나의 아저씨〉의 위로는 부드러운 말이 아니라, 균열을 견디는 사람들의 구조적 긴장 속에서 온다. 그 힘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한, 건물은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여전히 서 있다는 사실. 그것이 이미 위로였음을.


그리고 그 빛을 남기고 떠난 한 배우의 목소리는, 이제 우리 마음속에서 여전히 울린다 — 고요하지만 단단한, 버티는 힘의 여운처럼.

이미지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 (〈나의 아저씨〉 현장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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