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라 구름 기린 Feb 01. 2021

바닷물 마시는 나무

자기 연민에 관해

 충실한 상담자, 대나무 숲이라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역할을 못하는 리스너는 아니었다. 호들갑스러운 반문/호응보다 무슨 얘기든 잘 놀라지 않고 그 일이 존재함과 상대의 반응이 그럴 수 있음을 인정하는, 그런 지점에서 성실한 내담자이자 청취자였고, 너 자신을 잘 챙기란 말을 곧잘 하는 나였다.


 언젠가부터 내 고독과 공허보다 주변의 일들이 깊고 기구한 사연들이 많아 보였고, 말을 뱉기보다 삼키는 일이 많아졌다. 상견례 자리에서 식장을 성당으로 툭 던지던 신부집에 결혼 뒤엎으려던 절친, 남자 친구를 반대해 매일 밤 엄마와 본인 서로 이불속에서 우는 학교 선배 이야기, 사표 쓴 뒤 8년 동안 간간이 파트타이머로 지내는 또 다른 선배, 고시 10년 차에 녹내장으로 급작스럽게 취업하게 된 유쾌하던 형, 애인의 3류 야설만도 못한 배신에 무너져 내린 친구. 나이 들고 이제 아픈 곳이 많아지는 걱정 많은 엄마. 남자 애가 둘이 되어버린 사촌동생.


말을 꺼내기도, 기껏 말을 꺼내봤자 내가 더 힘들다는 말을 듣거나 다 아는 잔소리와 같은 염려를 듣는 일이 대부분인. 결국은 말을 삼키는 편이 나았고 나는 점점 더 그렇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나 자신을 불쌍히 여기기 시작했다. 내 안의 나를 지키기 위해, 무너지지 않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눈을 나 안으로 돌려 나를 옹호하고 불쌍히 여기며, 밖에 사연들에 향해있던 그것을 내 자신에게 돌리기 시작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힘이 되었다. 남이 안아주고 알아줄 리 없는 풍파에 쓸리고 상처 받은 내 마음 나무의 가지를 혼자 오롯이 끌어안고 옹호하는 일은 상처가 곪아 터지는 것을 막는 일처럼 보였다. 나를 지키는 일. 나는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고 그것들의 불합리와 동의할 수 없음을 생각하며 자신을 옹호했다. 그리고 때로는 이를 이유로 밖으로 내 팔과 몸, 입을 멋대로 흔들거나 밖에 소리를 뱉기도 했다.


 그렇게 어느샌가 나는 바닷물을 마시는 나무가 됐다.


 나를 옹호하기 위해 나 안에 집중해가는 일은 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자신에게서 난 물을 다시 내게 붓는 일이 지속될수록 나는 외부에서 부는 세찬 바람에 버틸 힘이 생겨갔지만, 반면에 나의 색과 농도를 짙어져가게 했다. 흐르지 않고 머물고 남과 섞이지 않는 물은 진해져 가 소금 같은 농도로 나와 주변을 황폐하기 만들었다. 나무가 되겠다던 나는 앙상하게 마른 가지를 가진 바닷물 마신 나무, 내가 선 곳은 진한 내 색깔에 새들도 지쳐 날아가는 땅이 되었다.


 물은 고여있을 수 있었고, 나를 옹호하는 일은 필요했다. 하지만 결국은 시간이 흘러 머물지 않고 밖으로 흘러야 하는 거였다. 내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이 만든 물과 섞여 흘러야 했고 나는 그렇게 섞인물을 마셔야 했다. 내 우물만을 마신 한참 후에 내 나무가 마르고 황폐해진 주변을 마주하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하얗게 질리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