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오대산 상원사의 눈 내리는봄, 봄

by 곰돌진우

이년 전 봄 오대산 상원사에는 눈이 펑펑 쏟아졌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났던 무렵에 내린 대설경보, 폭설이었다. 강릉에서 진부를 거쳐 오대산으로 가는 길은 벚꽃을 보며 가다가 눈이 내린 설경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봄에서 겨울로 시간을 거꾸로 돌아가는 공간이었다. 하루 전날만 해도 강릉에서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 떠밀려 벚꽃을 보며 축제 분위기 속에 있었는데 하루 지나 눈 내리는, 그것도 너무 많이 쏟아진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 묻혔다. 전나무길로 유명한 오대산 월정사를 지나 산속 더 깊이 더 높이 자리한 상원사로 갈수록 눈이 더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다시 겨울이 돌아와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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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발목을 지나 묻힐 정도로 쌓였지만 상원사에 도착할 때에는 벌써 곱게 눈길이 나있었다. '번뇌가 사라지는 길'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 상원사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통과하는 것만으로 번뇌가 사라진다'면 그렇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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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올라가 만난 사찰은 부처님 오시는 날을 기다리며 연등 준비를 끝내 놓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 머물고 있는 겨울 속에서 알록달록한 연등이 반겨주었다. 잠시 산사를 둘러보고 있자니 눈송이가 폴폴 내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펄펄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의 봄날 내리는 눈송이 속에 서있을 때 고요한 산사에 스님의 불경 읊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봄, 눈, 그리고 불경 소리. 어리석은 인간의 번뇌가 뭐 그리 쉽게 사라지겠냐만은 그때 그 순간은 마음이 진공상태가 되어 오로지 눈 내리는 풍경과 불경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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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퀘렌시아'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투우장의 소가 싸움 중에 잠시 숨을 고르는 영역, 본능적으로 피난처로 삼는 곳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요즘에는 살다가 지칠 때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한 회복의 장소나 행동으로도 쓰이는 말. 그 봄날의 눈 내리는 상원사는 내 퀘렌시아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가끔 그날의 기억을 소환하게 된다. 이 년 전 그 평화롭던 시간으로 다시 가고 싶다. 그때의 번뇌라는 것은 지금의 것에 비하면 또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때는 오히려 여러 가지 설렘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설렘이 많아 불안정하고 불안했을 뿐이었다. 이년 사이에 설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풍선이 바늘에 찔려 뻥 터져버리듯 사라졌다. 어느 봄날 예기치 않게 쏟아졌다가 빠르게 녹아 사라지는 봄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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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눈 쏟아지는 봄날의 사찰을 볼 수 있을까. 올해는 5월 첫째 날 밤에 강원도 산지에 대설특보가 내렸다. 이십이 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오대산 정상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상원사 위쪽에 위치한 적멸보궁은 눈이 많이 쌓여있는 사진들이 소개되었는데 상원사는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5월의 눈이야말로 빠르게 사라지니 눈 내리는 그 순간에 그곳에 있는 것 밖에 답이 없다. 5월의 눈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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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어느 봄날, 연등 가득한 사찰 마당에서 서서 펑펑 쏟아지는 눈송이를 맞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는 그날의 추억을 두고두고 꺼내 써야겠다.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 본다. 힘을 내고 나 자신을 찾아 새롭게 변화할 때다. 이제 또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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