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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Dec 10. 2020

고통에 대하여 뒷얘기 3

편집자라는 직업의 보람


편집자는 원고를 단순히 교정만 하지는 않습니다. 원고를 교정하는 일도 편집자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건 편집자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낮은 수위 혹은 가장 나중 일입니다. 일단 원고가 있어야 교정작업을 하는 것인데, 이 "원고의 탄생"까지가 어렵거든요.


먼저 기획이 있어야 합니다. 편집자들은 책의 컨셉을 기획한 다음 그 컨셉에 가장 어울리는 저자를 찾습니다. 혹은 저자를 먼저 특정한 다음에 그 저자가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책을 기획해낼 수도 있습니다. <고통에 대하여>는 전자의 방식으로 기획했습니다.


그다음 저자가 집필하여 원고를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저자가 1차 원고를 집필한 다음 편집자가 그 1차 원고를 읽고 서로 의견을 교환합니다. 저자가 원고를 다시 쓰겠지요. 저자와 편집자는 중간중간 소통하기도 합니다. 아주 탁월한 문장가가 아니라면 1차 원고로 곧바로 편집작업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몇 가지 이유로 집필과 편집이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첫째 저자가 공무에 너무 바쁜 상황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원래 매우 바쁜 사람들이지요. 편집자가 저자 원고를 마냥 기다리다가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책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자의 집필을 '보채는' 차원에서 집필과 편집을 동시에 해야만 했습니다. 둘째 이 기획을 편집자가 먼저 했으므로 기획에 어긋나지 않게 도와줘야 했습니다. 일주일 분의 집필이 끝나면 편집자는 거의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그다음 일주일 분의 집필에 대해 조언합니다.


편집자가 이렇게 긴밀하게 도와주면 저자는 몹시 편해집니다. 안심도 되고요. 물론 귀찮아집니다. "그렇잖아도 바쁜데..." 하면서 편집자와의 약속을 뒤로 미루고, 그러다 보면 "책은 나중에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유혹에 빠집니다. 저자가 이런 유혹에 빠지면 출판기획도 무너지고 맙니다. 하지만 <고통에 대하여>의 저자는 편집자를 믿고 끝까지 이런 과정을 따라와줬습니다. 아주 고마운 일이지요.


물론 편집자는 '개고생'합니다. 하지만 이런 개고생이 또 편집자의 보람이에요. 저자의 원고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이며, 많은 정치적 사건과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잘못되거나 부정확한 사실을 기록할 수는 없잖아요? 편집자가 일일이 다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자가 안심하고 집필할 수도 있고요. 이렇게 편집자는 엄청 공부를 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이런 '공부력'이 편집자의 보람이지요.


잠시 제 이야기를 해 보지요.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수십 년 동안 정치를 일관되게 관찰하고 공부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직업정치인이 아니고서야 거의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지금 당장 공부하는 게 바빠서 한눈을 팔 수 없는 경우도 있지요.

먹고사는 일이 바빠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할 수도 있잖습니까.

아이를 낳고 키울 때의 정신없음도 있고요.


이렇듯 공부다 직장이다 양육이다 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어떤 순간순간을 놓칩니다. 단절의 시간이 생깁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그런 단절의 시간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정치의 흐름을  모르는 입니다. 그걸 그냥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이런저런 파편적인 지식으로 메꾸는 것이지요.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탄생합니다.


<고통에 대하여>를 편집하면서... 책이 선생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의 얘기를 경청하고 조언하고 편집하면서, 정말 내가 놓친 한국 현대정치사를 다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나로서는 정말 커다란 수확이었습니다. 뭐랄까요... 드디어 정치에 대해 좀더 균형감있는 식견을 얻은 것 같다는 기분? 이런 기분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모든 책은 '사견'입니다. 역사에 관한 책은 더욱 그러하고요.


그러므로 이 책에 수록된 정치역사 이야기가 모두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1979년에서 2020년까지의 살아있는 한국사의 대강의 흐름을 이 책 덕분에 이해했습니다. 편집자는 자기가 저자로부터 얻은 지식을 어떻게 하면 독자에게 잘 전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고뇌합니다. 그 결과가 책을 통해 잘 전해지기를 희망합니다. 책은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1쇄 한정이지만 번쩍번쩍거립니다.



골드바입니다.

책 읽고 부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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