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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Jul 21. 2021

우리가 빛날 때에는

텔레그래프 3

우리가 빛날 때에는


1945년의 일이다. 이집트 나그함마디 마을 근처에서 밀봉된 항아리가 발견되었다. 밀봉을 풀자 1600년 동안 봉인된 공기가 풍겨 나왔다. 오래된 가죽 냄새였다. 가죽을 들추니 고대 파피루스 문서 더미가 나타났다. 로마 제국을 얻은 기독교 정통파의 정죄를 피해 항아리 안에 숨은 묵시록들이었다. 거기에는 초기 기독교 사회를 유혹하던 은밀한 정신이 담겨있었다. 우리가 아는 기독교와는 너무 달랐다. 그러나 실망스러웠다. 묵시록이 ‘중간계’의 탄생을 기록한 판타지 소설 수준이라니.


그런데 그중 한 문서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도마복음서(Gospel of Thomas)’였다. 제18장.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지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여 지금 종말을 묻는가?” 제50장.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희에게, ‘너희는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빛에서 왔노라. 빛은 스스로 생겨나 스스로를 이루었으며 형상으로 나타났노라’라고 답하라.” “만약 그들이 너희에게, ‘너희 안에 있는 네 하느님의 증표가 무엇이냐?’고 묻거든, 그들에게 답하라. ‘그것은 운동이며 안식이다.’


1929년 에드윈 허블(1889-1953)은 10년 동안 우주를 관찰한 끝에 우주가 팽창한다는 관측 증거를 발표했다. 우주는 놀라운 속도로 계속 팽창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은 어땠을까? 천문학자이자 천주교 사제인 조르주 르메트르(1894-1966)는 우주 전체가 ‘시원의 원자’에서 비롯됐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빅뱅(Big Bang)’이라 일컬어졌다. 증거가 필요했다. 그러자 태초의 빛이 과학자에게 빅뱅의 잔향을 선물했다. 그것이 우주 배경 복사이다.


원자는 10의 마이너스 10제곱 미터의 크기다. 너무 작아서 그 어떤 현미경으로도 원자 안을 관측할 수 없다. 138억 년 전의 우주는 원자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무한히 작았으며 무한히 뜨거웠다. 10의 마이너스 43제곱 초에 중력이 탄생했다. 먼저 양성자와 중성자가 생겨났다. 빅뱅 이후 0.0001초가 지나자 전자가 나왔다. 그러고도 전자가 원자 핵 안에서 자기 위치를 찾는 데까지 38만 년이나 지체되었다. 그 무렵 빛이 우주 배경 복사로 탄생했다. 대폭발 당시 빛은 없었다. 그러나 은하계가 생기고 별이 만들어지기 전에 먼저 빛이 있었다.


빛은 전자가 자기 자리를 찾고 나서야 비로소 생긴다. 원자 안에서 전자는 자기 자리를 바꿀 수 있다. 전자는 빛을 흡수하여 ‘운동’하는 위치로 옮긴다. 이번에는 거꾸로 위치를 바꿔 ‘안식’을 취하면서 빛을 생성한다. 태양에 빛이 많은 까닭은 수소가 헬륨으로 변화하는 핵융합반응을 통해 무수히 많은 전자들이 안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반응을 하고 관계를 가져야 안식이 생긴다. 반응하지 않고 관계하지 않으면 빛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빛은 소멸되기도 한다. 물질이 빛을 흡수하면 그 빛은 에너지로 바뀐다. 과학자들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물체를 생각했다. 모든 빛을 흡수할 터이니 검정덩어리다. ‘흑체(Black body)’라 불렀다. 19세기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은 이 흑체를 주목했다. 빛을 모두 흡수했다면 언젠가 빛을 다시 방출할 것이다. 그때 그 모든 파장의 빛을 싸그리 잡아 펼쳐 놓자. 그러면 우리는 빛을 속속들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빛의 스펙트럼’이다. 흑체는 빛 덩어리이며 또한 에너지 덩어리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어떤 특성이 있을까? 오스트리아 천재 과학자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은 빛의 에너지는 온도에만 비례함을 밝혔다(온도의 네제곱).


여기까지 이른 후, 나는 한동안 온기에 대해 생각했다. 당신의 체온은 당신이 빛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식이 아닐까? 우리가 당신과 관계하고, 당신이 우리에게 반응할 때, 빛이 생긴다. 열광하지 않아도 좋다. 태초에 우주가 모든 폭발을 대신했으므로. 우리는 그저 서로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안식은 고독과 다르다. 당신이 빛날 때에는 안식할 때이며, 당신이 운동할 때에는 우리가 필요하다. 빛과 멀어질 때 우리는 고독하다.


(2021-07-21. 텔레그래프 3)


매월 한 번씩 <코디정의 텔레그래프>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 번에 걸쳐 빛과 우주를 소재로 물리학 에세이를 썼습니다. 제 소박한 웹사이트에 방문하셔서 이메일을 등록해주시면 메일로 레터를 보내드립니다.



https://www.codyjeong.com/tele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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