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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Dec 29. 2021

공리주의

편집자 후기 및 해설


존 스튜어트 밀이 쓴 <공리주의>라는 책을 2022년 첫 번째 책으로 세상에 펴냅니다. 표지가 멋지지요? 패션과 출판의 콜라보 작업인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합니다.


는 가급적 을 편집하면서 편집자들의 후기를 붙여요. 독자들이 책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있는 경험을 주려고요. 책이 어떻게 기획되고 편집되는지 뒷얘기들에 대해 독자들이 궁금해하기도 하고요.  일부를 여기 소개합니다.




코디정: 이야, 이 책 진짜 재밌네요. 이건 완전히 순정 100% 칸트 비판이잖아요?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칸트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쇼킹했어요. 칸트철학을 잘 아는 독자라면, 특히 칸트의 <도덕 형이상항의 기초>라는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런 제 반응에 공감하리라 생각해요.


마담쿠: 놀라운 건 설득이 된다는 거죠. 게다가 칸트보다 훨씬 쉬웠고요. 편집자로서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요.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공감하기 쉽고 또 실용적이기까지 한 책. 아, 이것이 그 유명한 ‘공리주의’구나.


코디정: 맞아요. 저도 같은 느낌이었어요. 아, 이게 공리주의였구나, ‘공리주의’라는 표현은 밀이 처음으로 사용한 단어였구나, 벤담의 공리주의는 후대에서 붙인 거구나, 그런데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건 대체 뭐였을까? 등등의 생각이 들었어요. 공리주의 하면 우리는 그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정도밖에 알지 못했어요.


마담쿠: 그러게요. (웃음) 그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요. 우선 이 책은 고등학교 윤리 수업부터 사회인의 교양 지식에 이르기까지 도덕을 말할 때 어째서 칸트철학과 공리주의를 함께 언급할 수밖에 없는지, 그 역사적인 맥락을 독자에게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맥락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았을까 해요. 그런데 칸트와 밀은 시대가 다르죠?


코디정: 칸트는 18세기 말이 전성기였고, 밀은 19세기 후반에 주요 저작을 남겼지요. 장소도 다르고요. 독일과 영국 의 차이랄까요.


마담쿠: 밀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무엇이 올바른 행위인지 후대 인류들이 공부하고 논쟁할 때 칸트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다음엔 자기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고 확실하게 전달한 것 같아요. 다소 산만하기는 했지만요. 독자를 위해 잠시 복습 시간을 가질까요? 칸트가 뭐라고 했길래 밀이 작정하고 대들었던 것인지.


코디정: 칸트는, 모든 인간은 언제나 행위의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 도덕에서 내용을 모두 빼버렸어요. ‘형식’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이런저런 행동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여 온 이 세상의 온갖 도덕적인 가르침을 요샛말로 ‘디스’한 거죠. 쉽게 말하면, ‘그런 가르침이 당신한테는 도덕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라는 논리입니다. 진정한 도덕규칙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어야 하고, 그건 마치 자연법칙처럼 ‘법’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요. 내용이 뭐든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규범>이라는 형식만 남겨 놓으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런 형식에 맞는 ‘자기 좌우명’(준칙)을 떠올리면서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행동할까를 스스로 따져볼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우리 인간을 올바르게 만들어 줄 거라고 칸트는 믿었습니다. 칸트철학의 특징은 이처럼 도덕법의 기준을 형식적으로 매우 높여 놨다는 건데요. 대체로 많은 사람이 칸트를 오해하더군요. 그렇게 보편법률 수준으로 도덕을 높이면 어떻게 도덕을 지 킬 수 있겠냐, 불가능한 이야기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칸트는 도덕의 수준 자체를 높이지는 않았어요. 무엇이 도덕인지를 직접 이야기하시는 분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도덕의 수준은 타인이 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정하는 개인의 양심의 문제로 봤던 분입니다. 바로 그 점이 칸트의 빛나는 장점이거든요. 결과적으로 도덕 운운하면서 타인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들었어요. 인류사에서 종교와 권력이 사회를 수호한답시고 반복적으로 행해 왔던 ‘도덕을 이용한 폭력’에 철학적인 종지부를 찍었거든요. 그러면서 동시에 ‘개인이 곧 인류’라는 철학적 상상력을 낳았으니, 많은 사람이 열광할 수밖에요.



마담쿠: 이렇게 요약하니까 역시 칸트 할아버지네요. 그런데 어째서 밀 아저씨는 칸트를 비판하고 반박했을까요?


코디정: 그 부분이 이 책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겠죠. 편집자로서 되도록이면 밀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의 입장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어째서 밀은 이런 식의 주장과 저런 식의 논리를 펴게 되었을까? 왜 그랬을까? 칸트의 무엇이 밀을 불만스럽게 했을까? 둘 다 선량한 이야기를 하시는 양반들이 어째서 서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으니 어느 정도 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인류사회에서 도덕은 결국 무엇이 올바른 행위인지, 또한 바람직하고 선한 행동인지 가르치는 거잖아요? 사회가 바람직하게 나아가려면 선함과 올바름이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야겠지요.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고,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며,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면서 누구나 생각하는 도덕교육은 사실 ‘이런저런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지 ‘단순한 형식’을 가르치는 게 아닌 겁니다. 또 정치를 통해 사회를 더 선하게 만들려면 그것에 합당한 선한 여론이 있어야겠지요. 여론도 무엇에 관한 여론, 즉 내용이지 형식은 아니 잖아요? 칸트처럼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도덕교육을 할 것이며, 어떻게 선한 여론을 조성하고 퍼트릴 수 있겠는가? 이게 바로 밀의 문제의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또 적어도 철학이라면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이 충돌할 때 우선순위를 정해주면서 어떤 행동들이 더 선하다고 직접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럴 때마다 칸트는 침묵하니까요. 밀이 생각하기에 칸트철학은 ‘도덕침묵론’처럼 비쳐졌을 것 같아요.



마담쿠: 어이쿠.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가 사람들을 실제로 계몽하는 데에는 오히려 무력했다는 거군요.


코디정: 저승에 있는 밀이 좋아할 표현이네요.


마담쿠: 이 책에서 여러 번 나오는 표현인 ‘도덕의 제1원리’가 무엇인지 칸트가 침묵했으니 자신이 그것에 대해 말하겠다고 나선 거겠네요.


코디정 : 그렇죠.


마담쿠: 그런 도덕의 제1원리가 바로 공리주의라는 걸까요?


코디정: 밀의 주장에 따르면요.


마담쿠: 밀의 공리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가뜩이나 진지한 책에 대해 계속 진지하게만 대화하면 숨 막히니까요. 밀 아저씨 뒷조사는 어떻게 됐어요?


코디정: 뒷조사라뇨 (웃음). 몇 가지 알아 본 거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세 가지, 성장과 직업과 여자.


마담쿠: 오호.


코디정: 좀 길어질 수도 있어요.


마담쿠: 너무 길면 자를 게요.


코디정: 존 스튜어트 밀은 금수저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최소한 은수저는 됐을 거예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런던에 정착한 부친 제임스 밀(1773~1836)이 일단 유명한 저술가이자 사상가였거든요. 당대 최고의 지성이 들락거리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고 자랐는데, 여기서 포인트는 공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점. 우리랑은 DNA가 달랐을 거예요. 세살 때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고 여덟 살 때부터는 라틴어 고전을 두루 읽더니, 스무 살도 되기 전에 4권의 저술을 발표했을 정도니까요. 아마도 공교육은 필요 없었겠지요. 아버지가 집에서 가르쳤대요. 바깥 세상에서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아 주 엄격하게 키웠다는데, 아마 과외도 많이 받지 않았을까요? 밀은 당대 최고의 영국 지성 중의 한 명이자 자신의 아버지와도 특수 관계였던 제레미 벤담 할아버지와 자주 만나 대화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벤담의 사상이 밀에게 깊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천재적이었던 밀은 우리나라로 치면 SKY, 소위 말해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같은 대학은 껌이었을 테죠.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에 취직합니다. 17살에 직장인이 된 거죠.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에 진학하 려면 영국 국교도가 돼야 하는데, 자신이 스코틀랜드 핏줄이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종교 선택에 관한 자기만의 원칙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싫었다고 해요. 유명한 학자의 강의를 들어러 UCL 대학에 청강하는 정도였대요.


마담쿠: (팔짱을 끼며) 천재 직장인이라...


코디정: 제가 밀의 뒷조사를 하다가 알게 된 재미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밀은 17세부터 영국 동인도 회사에서 35년간 근무합니다. 학문 분야의 천재가 식민지 무역으로 돈벌이를? 동인도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갑자기 궁금해졌죠.


마담쿠: 동인도 회사는 세계사 공부할 때 몇 번 들었는데 말이죠.


코디정: 맞아요. 저는 동인도 회사는 단순히 식민지에 있는 민간 무역회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국 여왕의 위임을 받은 식민지 통치기구였더군요. 한마디로 행정기관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인 제임스 밀도, 그 아들 존 스튜어트 밀도 행정기관의 공무원이었던 셈이지요. 규모가 굉장히 컸을 테고, 아마도 밀은 거기서 무슨 연구부서에서 일하지 않았을까요? 동인도 회사는 나중에 해체돼서 영국정부에 흡수됐고, 그런 다음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인도를 직접 통치했다고 합니다.


마담쿠: 몰랐던 사실이라 흥미롭네요. 세계사만큼 흥미로운 개인적인 역사는 없나요? 연애사라던지…  


코디정: (웃음) 밀은 순정파였어요. 인터넷 검색하면 그의 연애사를 얻을 수 있죠. 노총각과 미망인의 사랑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름답고 멋진 관계 였던 것 같아요. 1858년 부인 해리어트 테일러 밀이 프랑스 아비뇽에서 여행 중에 병사해요. 밀은 그 후 영국에서 국회 의원으로도 활동했고 이 책을 포함해서 여러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러다가 생을 마감할 시기가 되자 부인이 먼저 잠들어 있는 아비뇽에 가서 영원한 평화를 얻지요. 그해가 1873년이었고, 그들의 무덤은 지금도 함께 있대요.


마담쿠: 멋지네요. 결혼생활은 7년에 불과했지만 교제는 27년이었고, 그래서 밀의 사상에 부인이 미친 영향이 매우 컸을 거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특히 최초로 여성의 투표권을 주장한 영국 국회 의원이며,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고, 노예제에 반대한 지식인. 자유를 옹호하고 진보적이며 심성이 선량한 사람. 밀 아저씨는 대략 이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코디정: 네. 매우 진보적인 사상가였으며 인류의 미래를 낙관했던 사람 같아요.


마담쿠: 맞아요. 밀의 인류 사회에 대한 낙관과 진보적인 믿음은 이 책 곳곳에 묻어 있지요. 예를 들어 2장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의 주요 원인은 다양하며, 그중 상당수는 인간의 노력과 관심으로 거의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와 같은.


코디정: 밀이 어딘가에서 이런 말도 남 겼대요. “보수파들이 꼭 멍청한 것은 아니지만, 멍청한 사람들 대부분은 보수파 들이다.”


마담쿠: (외면) 보수파 독자들이 싫어합니다.


코디정: (난감) 죄송합니다. 그래도 밀은 그런 사람이었다는 말씀. 아, 그런데 고전의 풍요로운 지혜만이 아니라 밀의 따뜻한 마음까지 잘 표현한 번역가이신 정미화 선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마담쿠: (짝짝) 그럼요. 번역가가 없다면 우리 같은 편집자도 있을 수 없죠. 공생관계! (웃음) 그런데 우리는 이 책을 원작의 번역어인 <공리주의>가 아니라 <타인의 행복>으로 변경해서 출간한 적이 있어요. 독자에게 좋은 제목을 전하기 위해서 여러 번 방황한 끝에 그런 선택을 했는데 과연 우리 판단이 옳았을까요? 우리는 몇 년이 지나 지금 리커버하면서 원제인 <공리주의>로 제목을 바꿔서 새롭게 초판을 펴냈습니다. 이 사연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는 게 좋겠어요.


코디정: 네. <타인의 행복> 판에서는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핵심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그게 이기적인 행복이 아니라 도덕 이론답게 ‘타인’을 생각하는 넉넉한 마음까지 제목에 포함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간과했던 게 있었지요. 우리 책이 제대로 검색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수십 년 전 구글 등장 이후로 인터넷 검색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사용자가 입력한 검색어뿐만 아니라 그녀가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추정해서 유사 단어나 연관 단어로도 검색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검색 기술은 네트워크 어딘가에 있는 보석을 찾아주는 수준까지 발전했어요. 그런데 서점은 책 제목, 저자 (번역자) 이름, 출판사 이렇게 세 가지 필드에서 ‘단어 일치 검색’만 지원하더라고요. 이런 수준이라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리주의’라는 단어로 서점에서 검색하면 <타인의 행복> 판이 잘 검색되지 않습니다. 우리 의도와 달리 ‘아는 사람만 아는 책’이 돼버린 것이지요. 이걸 수정하고자 부제로 ‘공리주의’를 넣어달라고 서점에 요구했더니 어떤 서점은 받아들이고 또 어떤 서점은 안 된다고 했어요.


마담쿠: 갑자기 불행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공리주의> 책을 읽고 싶은 독자가 이 훌륭한 번역본을 읽지 못하다니, 슬펐어요. 그렇지만 아주 큰 교훈을 얻었어요. 출판사는 무엇보다 그 책의 ‘진짜 독자’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요. ‘진짜 독자’라고 표현하니 좀 어색하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그 책을 찾으려는 사람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제목을 정해야 한다는 것을요. 아무쪼록 ‘공리주의’라는 단어로 검색하면 이 책이 검색결과 목록 중에서 위쪽에 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합니다.


코디정: 네. 이 판본으로 다시 시작하지요. (웃음)  


마담쿠: 많은 사람들이 ‘공리주의’라는 단어를 듣고 떠올리는 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슬로건 정도지요. 어쩐지 좀 건조하고 딱딱한 느낌의 메시지예요. '타인의 행복'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면 더 따뜻한 느낌이 들겠지요? 적어도 공리주의가 타인의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상이라는 점을 제목으로 충분히 전할 수 있으니까요. ‘공리주의’를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당연히 ‘행복’이 될 텐데요. 행복이야말로 도덕의 원리라는 게 밀의 생각이고, ‘아니야 그건 절대 그렇지 않아. 행복은 도덕과 상관없어.’라는 게 칸트의 생각이잖아요? 제가 표로 한번 만들어 봤답니다. 칸트와 밀의 생각의 차이를요.


코디정: (웃음) 마담쿠는 친절하네요.


마담쿠: (웃음) 독자들에게 점수 좀 따려고요. (학생독자에게 특히 이롭겠지요? 하지만 이런 정리를 싫어하는 독자에게는 죄송한 마음)



코디정: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버리니 더는 대화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마담쿠: 그래도 우리는 아직 책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잖아요. 여기서 멈추면 안 되죠. 자, 이제 준비 운동은 충분히 했으니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죠.


코디정: 지금이야 철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진 않지만, 당시만 해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했던 것 같아요. 칸트철학의 위세도 컸을 거고요.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칸트를 비판하고 행복론의 권위를 세울 것인가, 밀은 가장 좋은 방법을 여러모로 고민했겠죠. 특히 ‘흥행’을 생각했을 겁니다. 단순히 칸트의 도덕철학을 비판하면서 행복론을 내세우는 방법만으로는 그다지 성공을 못했을 거예요. 철학이란 웬만해선 재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밀이 생각해 낸 프레임이 바로 이겁니다.


마담쿠: 뭐죠?


코디정: 무협지!


마담쿠: 네?


코디정: 모름지기 싸움 구경은 재미있잖아요? 정파와 사파 사이에서 2천 년이 넘게 이어진 용호상박의 싸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누가 정파고 누가 사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그런 길고 큰 싸움이 중요한 거니까. 한쪽은 스토아학파입니다. 다른 한쪽은 에피쿠로스학파이고요. 칸트는 스토아학파에 속하고 밀은 에피쿠로스학파에 속합니다. (이쯤에서 스마트폰으로 스토아와 에피쿠로스를 검색하는 독자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밀은 저 ‘고결한’ 스토아학파의 에피쿠로스학파에 대한 핍박을 소 개하면서, 독자들에게 정당한 재판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누가 과연 참된 주장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밀은 이 책을 통해 에피쿠로스학파를 변호합니다. 칸트라는 거물을 혼자 상대하는 게 아니라 ‘진영 대 진영’의 논리로 상대하겠다는 것이죠. 독자들은 배심원이 되는 거고요.


(나머지 편집자 후기는 책을 통해서 읽어 봐요!!)


책은 1월 중순경에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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