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자
그녀의 능력을 듣고 처음엔 나도 웃었다. 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냐고. 쟤도 나처럼 뻥쟁이라고 생각했다. 사기꾼으로 몰리기는 했어도 나는 화려한 증거가 있다. 하지만 ‘휠체어’는 증거가 없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영락없이 장애인이다. 의학적으로는 걷지 못한다. 의학적으로는. 그녀는 웃으면서 자기를 ‘예휠’로 불러 달라고 한다. ‘예수님은 휠체어를 구해준다’의 줄임말이 ‘예휠’이다.
“요한복음 알아? 근사하지 않아? 아저씨 내 미래 좀 봐봐. 예수님이 오셔서, 일어나 걸어라~ 이렇게 말하고 계실걸?”
우리는 그렇게 안 부른다. 이 말썽쟁이 휠체어 아가씨를 그냥 ‘힐구’라고 부른다. ‘휠’은 발음하기 어려워서 힐이 됐다. 툭하면 사고를 당했다면서 위치 정보를 보낸다. 휠체어를 구하러 오라고. 우리 중 누군가 가야 한다. 이런 식이다.
“아, 힐구한테 전화 왔거든. 걔가 또 어딘가에서 자빠져 있나 봐. 나는 지금 사정이 있어서 못 가니까 니가 가 줄래? 위치 정보 보내줄게.”
힐구가 나동그라진 곳에는 휠체어가 없다. 한번은 43.5km. 집에서, 그러니까 휠체어가 있는 곳에서 힐구가 자빠진 곳까지의 거리다. 구글 지도에서 가장 사람이 없을 곳을 찾아 42.195km를 잰 다음, 왕복하려고 했다는 게 그녀의 계획이었다. ‘두 배 마라톤’을 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반환점을 돌고 나서 자빠졌다. 급히 구하러 온 나를 보자 매우 아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아, 젠장. 그놈의 CCTV 때문에.”
“지금은 어디 가나 CCTV야. 이놈의 CCTV 때문에 난 완전 저주받았어. 아, 젠장. 아저씨, 나, 그냥 산속에서 살까? 그리고 자연인에 나오는 거지? 이렇게나 예쁘고 젊은 처녀가 신체 장애를 이겨내면서 산속에서 혼자 살아간다? 와, 이거 대박 아냐? 하하하.”
“CCTV에 찍히면 항상 자빠지는 거니? 모든 CCTV?”
“그럴걸? 아마도…”
“정확히 실험을 해 봤어? CCTV도 여러 가지잖아? 실시간으로 누군가 영상을 관찰하는 게 있고 또 어떤 것은 녹화만 하는 게 있잖아? 녹화용 CCTV에는 자빠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러면 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휴대폰으로 비디오를 찍고 있을 게. 거길 너가 지나가는 거야. 만약 자빠지지 않으면 힐구 전성기가 다시 오는 거지. 그런데 만약 자빠지면 뭐 어쩔 수 없지. 그냥 단념하고 휠체어에서 살아. 집에서만 돌아다니고. 요즘 CCTV가 없는 곳이 없잖아? 자동차 블랙박스에도 딱 걸릴걸.”
“그럴까?” 그녀가 씩 웃으며 말한다.
“아이씨, 그러다가 내가 아저씨 앞에서 자빠지면 쪽팔린데. 넘어지면 어쩌지? CCTV 해방운동 같은 거, 그런 조직이라도 만들까? 자유를 달라, 왜 감시하냐, 그냥 CCTV 케이블을 다 끊어버릴까?”
힐구의 초능력은 차보다 빨리 달린다는 것. 사람 눈으로는 힐구를 따라잡을 수 없다. 단,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아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조건이 붙는다. 날뛰는 그녀를 한 사람이라도 목격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넘어진다. 중학교 3학년 시절 한적한 시간에 학교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쓰러졌다. 휠체어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목격자가 있었다. 그게 당시 학내에서 큰 논란이 됐다고 한다. 꽤병 아니었냐 파와 귀신들렸냐 파가 대립했다. 목격자는 꽤병 아니었냐 파에 속했다. 본인은 어쩔 수 없이 귀신들렸냐 파에 들어가서 귀신 목격담으로 화려하게 논점을 바꿨다고 한다. 힐구는 장애인이다. 그건 확실하다. 그러나 그녀는 비공식 세계신기록 보유자다. 단거리든 마라톤이든. 증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