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Spirit, Soul
번역가들의 잡지, <번역하다> 2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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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몹쓸 문장들을 봐 왔다. 관절이 부러지고 아프고 멍하고 혼절하고 발작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하지만 누군가 넘어졌다면 손을 내밀면서 일으켜 세우면 되는 것처럼, 병든 문장은 고쳐주면 된다. 하지만 잘못된 단어를 아이가 아니라 학자가 사용할 때, 그걸 고쳐줄 수가 없다. 단어만으로는 문제가 발견되거나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단어를 쓴 당사자도 모르는 문제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
지식은 언어로 구성된다. 철학은 지식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언어로 구성된다. 언어는 단어에서 시작한다. 철학은 언어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단어에서 시작한다. 한국어로 씌인 수천 수만 권의 철학 문서가 책의 형태로 논문의 모양으로 서점, 도서관, 카페, 창고, 이곳저곳 어딘가에 있다. 아, 빽빽한 문장들, 그 문장들을 견디는 의미들. 나는 일본어의 저주에 걸려 백 년 넘게 삐걱거리는 철학을 목격한다.
지난 세 차례의 연재를 통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영어번역본에 수록된 단어들을 분석하고 검증했다. 오늘은 ‘mind과 ‘spirit’, ‘soul’을 살펴본다. 마찬가지로 단어마다 갖는 위상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한다. 그 위상은 의미 모호성(명백하거나 의심스럽거나), 난이도(쉽거나 어렵거나), 정합도(의미에 맞거나 맞지 않거나), 오해 가능성(의사소통에 이익이 되거나 장애가 되거나)이었다. 각 단어의 위상값(Wp)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숫자가 커질수록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가 모호하다는 것이고, 어렵다는 것이며, 잘못된 번역일 수 있다는 것이고, 소통에 불리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느 항목이든 3~4에 해당하는 점수가 하나라도 있으면 원문의 의미를 제대로 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 경우 대안을 탐색해야 한다.
최재희는 ‘심성’으로 번역했고, 백종현은 ‘마음’으로 번역했다. 실제로 많은 번역가가 ‘마음’으로 번역한다. 그것이 정확한 의미이기 때문은 아니다. ‘mind’에 대한 영한사전의 표제어가 ‘마음’이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가벼운 기분으로 읽는 에세이 분야에서는 ‘mind’를 ‘마음’으로 번역해도 괜찮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철학 분야에서는 그렇게 번역해서는 안 된다. 한국인에게 ‘마음’이라는 단어는 사람의 성격, 품성, 관심이나 감정을 뜻한다. 이 단어로 이미지 검색을 하면 하트 모양의 이미지만 나온다. 한자 ‘心’은 마음을 뜻하고, 그것은 곧 심장을 가리킨다. 그만큼 ‘마음’이라는 단어는 감정적인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낸다.
그러나 철학에서 ‘mind’는 그런 의미로는 사용되지 않는다. 생각을 뜻하는 정신활동이다. 고대 그리스 ‘누스Nous’에서 유래된 단어로, 르네 데카르트는 물질인 육체body에 독립된 본체로서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지성을 ‘mind’라 칭했다. 지금도 ‘mind’라는 단어로 구글 이미지 검색을 하면 인간의 머리 모양이 결과로 출력되고, 심장은 등장하지 않는다.
한때 동양에서는 생각의 원천이 심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으므로, 옛날 관점에서는, ‘mind’를 ‘마음’으로 번역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심장에서 생각을 찾지 않는 오늘날 그런 식의 번역은 과학에도 맞지 않고 서양의 정신세계사의 수천 년의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철학서에서 ‘마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곳마다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3점). 원문에서 머리를 가리키고 있는데 번역문에서는 심장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0점). 그런데 번역가가 서양철학의 전통을 무시하고 우리식 표현을 번역어를 들이민 것이다(3점). 이런 번역가의 행동 때문에 의사소통의 혼란이 누적돼 왔다(3점). 그러므로 ‘mind에 대한 번역어 ‘마음’이라는 단어의 위상값은 다음과 같다.
마음보다 더 좋은 단어가 없을까? 있다. ‘mind’는 무엇인가를 알기 위한 정신 활동이며, 그것을 일컬어 우리 한국인은 ‘생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생각’은 ‘mind’의 좋은 우리말 번역이다. 그런데 철학 분야에서는 생각을 지칭하는 ‘thinking’이나 ‘thought’라는 영어 단어 때문에 번역가를 망설이게 만든다. 실제 철학서에 그런 단어가 ‘mind’와 함께 사용되기 때문에 번역가로 하여금 다른 단어를 탐색하게 한다. 생각을 비유적으로 지칭하는 단어가 우리 한국인에게 있다. ‘머리’이다. ‘머리’가 지칭하는 의미는 명확하다(0점). ‘머리’라는 단어가 비유적으로 생각임을 모르는 독자가 없다(0점). ‘머리’라는 단어가 비록 ‘mind’의 본래 의미를 거의 정확히 담을 수 있지만, 고대 그리스어 ‘누스’에서 시작하여 펼쳐지는 ‘mind’의 다채로운 의미까지 완벽하게 담을 수는 없다는 한계는 있다(1점). 그러나 의사소통에 어떤 혼동도 초래하지는 않는다(0점). 그러므로 ‘mind’에 대한 번역어 ‘머리’의 단어 위상값은 아래와 같다.
이제 철학서에서 ‘mind’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자명해졌다. 다음으로 ‘spirit’이다.
이 단어를 고심해 보지 않은 번역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고뇌하지 않는다. 이 단어를 거의 예외 없이 ‘정신’으로 번역한다. 서양 문물을 수입한 일본인의 번역을 아무런 반성없이 수용했기 때문이며, 그들은 지금도 반성을 모른다. 예를 들어 헤겔의 주저 <The Phenomenology of Spirit>을 <정신현상학>으로 번역한다(실은 백 수십 년 전에 일본 번역가가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spirit’의 어원은 고대 희랍어 ‘프뉴마pneuma’이며, 이는 ‘프쉬케psyche’를 어원으로 하는 ‘soul’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여기 여러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알파벳으로 나열해서 표시하여 {A, B, C, D, E}로 묶어 보자. 이들은 모두 육체가 있지만 각자 저마다 다른 정신이 있다. A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A라는 정체성을 갖게 만드는 사람의 정신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spirit’이 아니라 ‘soul’이다. A는 A의 ‘soul’이 없으면 육체가 있어도 더 이상 A가 아니다. B, C, D, E도 마찬가지다. 각자 ‘soul’이 다르다. 그 ‘soul’은 A, B, C, D, E 육체 안에 있다. 이렇게 서양 사람들은 생각했다. 이와 달리 A, B, C, D, E의 육체 안에 있지 않으면서(그러므로 누군가의 정체성과는 무관하다), A, B, C, D, E 모두에게 작용하는 정신적인 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것이 ‘spirit’이다. 서양 사람들은 그 힘을 신성하게 여겼다. ‘spirit’은 신을 뜻하거나 신성한 힘을 의미했다. 그러므로 ‘God하나님’을 ‘Holy Spirit성령’으로 부르는 것이다. ‘spirit’은 ‘영’이다.
그런데 과거 일본 번역가가 ‘spirit’을 ‘精神정신’으로 번역했다. ‘精神’이라는 한자에는 과연 ‘神God’이 들어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단어가 갖는 의미에서는 신은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철학’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메이지 시대 번역가 니시 아마네는 본래 성리학자였다. 성리학을 창시한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강학하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어록 모음집인 <주자어류>에 수록된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문구를 니시 아마네가 몰랐을 리 없다. 그때의 ‘정신’은 사람의 생각을 뜻하는 것이다.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나 작용’이 ‘정신’이라는 단어의 뜻이다. 그러나 서양철학의 문헌에서 ‘spirit’이라는 단어는 ‘신’ 혹은 ‘신성한 무엇’을 지칭한다. 적어도 A, B, C, D, E라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작용하는 영적인 힘을 뜻한다. ‘정신’이라는 단어에는 그런 뜻이 없다. A의 정신, B의 정신, C의 정신, D의 정신, E의 정신이 각자 다르다.
그러므로 ‘spirit’의 번역어로 ‘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서양 원문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를 잃고 만다. 본래의 메시지를 상실하니 의미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고, 철학이 어려워지며,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spirit’을 철학자들이 ‘정신’으로 번역한 결과, ‘soul’의 의미조차 훼손하고 헷갈리게 만든다. 따라서 나는 ‘spirit’에 대한 번역어 ‘정신’의 단어 위상값을 다음과 같이 부여한다.
서양철학은 기독교와 긴밀한 관계로 발전했다. 서양 사상은 한편으로는 철학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로 우리나라에 수입되었다. 철학에서 ‘spirit’을 ‘정신’으로 번역한 결과, 기독교와 철학의 관계를 훼손했다. 본래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성경의 번역을 따르는 것이 좋다. 그러므로 ‘영’으로 번역한다. ‘영’은 ‘정신’이라는 단어보다 의미 난이도가 있다. 하지만 중학생 정도의 한국어 수준이라면 그 의미를 이해함에 어려움이 없다. 물론 문맥에 맞게 더 좋은 단어를 탐색해서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철학에서는 문맥에서 ‘신성함’이 전해져야 한다. ‘spirit’에 대한 번역어 ‘영’의 단어 위상값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미 우리는 ‘soul’이라는 단어를 살펴 봤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을 뜻한다. 그런데 이 나라의 철학자들은 한결같이 ‘soul’을 귀신 냄새 나는 단어인 ‘영혼’으로 번역한다. 만약 귀신의 기운을 느끼는 단어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soul’이 아니라 ‘spirit’이다. ‘spirit’은 정령이나 악령까지 포함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의 전통에서 인간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있다. 사람이 죽어도 육체는 남는다, 그렇다면 인간 생명의 근원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일 것이다, 그 정신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숨결일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이 있고 그것이 바로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드는 숨결이다, 라고 서양 철학자들은 생각했던 것이다. 그때의 ‘정신’이 바로 ‘soul’이다.
일반적으로 정신은 ‘머리mind’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지만 육체적인 것은 아니어서 뇌든 심장이든 발가락이든 구별하지는 않는다. ‘mind’가 일반적인 의미의 두뇌 활동이라면, ‘soul’은 ‘그 사람’의 고유한 사유 활동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mind’를 갖고 있으며, 또한 ‘soul’을 지닌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할 것이고, 그렇다면 그이는 인간 안에 ‘spirit’이 있다고 믿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soul’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psyche’이다.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학문인 심리학은 ‘psychology’라고 부른다. 정신의학은 ‘psychiatry’, 정신병은 ‘psychopathy’, 정신분석은 ‘psychoanalysis’, 반사회적 성격장애는 ‘psychopath’라 칭한다. 모두 ‘soul’에 관한 단어이다. 그런데 철학자들은 다른 분야에서의 번역을 외면하고 ‘soul’을 ‘영혼’으로만 번역한다. 어째서? 그리 대단한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한국 철학자들의 스승’인 일본 학자들이 ‘soul’을 ‘靈魂’ 혹은 ‘魂’으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철학에서도 다른 분야의 번역과 어울리게 ‘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그 단어를 ‘spirit’의 번역에 빼앗겼다. 그걸 바꾸려면 서양철학사의 정상에 있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영의 현상학>으로 교정해야 하니, 이 나라의 철학자들은 그냥 옛 일본 학자들이 채운 족쇄에 만족해한다.
한편 ‘spirit’이라는 단어와 달리, ‘soul’이라는 단어의 의미 변천사가 훨씬 다양하고 역동적이었음을 밝혀 둔다. 그런 점에서 ‘영혼’이라는 번역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다. ‘soul’은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은 다음에 그 숨결은 어떻게 되지?’라는 보편적인 질문이 인류에게 생겼다. ‘그 사람의 soul’은 사후의 세계에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답을 철학자들은 내놓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저 유명한 <Immortality of the soul>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후반부의 거대한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이다. 철학자들은 ‘영혼의 불멸성’으로 번역한다.
‘불멸의 정신’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것처럼, ‘정신의 불멸성’이라고 번역해도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보통 죽은 다음의 정신을 ‘영혼’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soul’의 번역어로 ‘영혼’을 사용해도 문제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경우 ‘사후의 soul’을 지칭함을 잊지 말자.
그렇다면 철학에서 ‘soul’은 {정신, 영혼}이라는 번역어 집합에서, 살아있는 인간의 비물질적인 생명을 지칭할 때에는 ‘정신’을, 사후 세계의 인간을 지칭할 때에는 ‘영혼’이라는 단어를 선택해서 번역해 봄직하다. 출발 단어와 도착 단어가 항상 일대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spirit’과 ‘soul’을 철학자들이 각각 ‘정신’과 ‘영혼’으로 고집스럽게 번역함으로써 백 년이 넘게 지속된 자욱한 혼란은 오래전 일본 학자의 탁월한 솜씨에서 비롯되었다.
정신적 족쇄로써는 탁월했다. 이제 그만 풀어내자.
책을 발간했어요
책에서는 결론을 좀 수정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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