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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Apr 23. 2018

에세이12_손해

소비와 손해

(전략)

저는 가계부를 쓰지 않습니다. 돈을 계산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돈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할 때도 있습니다. 회사를 경영할 때입니다. 그때만큼은 돈을 잘 계산합니다. 장부가 필요하지요. 현금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회사의 돈이란 모든 임직원의 인생을 지탱하는 주춧돌 같은 겁니다. 머리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돈을 관리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저의 의무이지요. 하지만 이 의무는 회사에서 벗어나는 순간 사라집니다. 그러면 나는 자유롭게 돈을 씁니다. 그러면서 기호와 기회와 지식을 사지요. 실수와 실패를 사기도 합니다. 실패는 공짜가 아닙니다. 숫자로만 표시되어 있지 않을 뿐 저마다 가격이 있지요. 실패를 딛고 성장하려면 돈을 써야 합니다. 직접적으로 범죄를 도와주는 소비가 아니라면, 이렇듯 헛된 소비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손해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손해는 나와 이 사회를 위해 지불하는 필수적인 세금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손해가 있다면 어딘가에서 이익이 생기겠지요. 내가 소비한 돈이 설령 내가 원하는 기대와 욕망에 미치지 못했더라도, 누군가의 경제에 보탬이 됐고, 적어도 어떤 가족의 한 끼 식사에 도움이 됐다면 그게 과연 헛된 일입니까? 돈이 어딘가에 사용되지 않고 모이는 것보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흐르는 편이 인간 사회에 더 낫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이 손해를 입으면 화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생기는 분노의 상당수는 손해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손해는 부당하며 부정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정신적인 평화와 건강을 위해서라도 손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생산적인 생각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특별한 이득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손해를 예방하고 대처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요. 쓸데없이 협상하면서 귀한 시간을 버리기도 합니다. 어째서 시간을 낭비합니까? 왜 자기 자신을 계발하고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쓰지 않나요? 생각만 바꾸면 됩니다. 차라리 손해를 보세요.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이고 본질적인 일에 집중하세요. 타인의 이익이 내 손해가 되는 건 아니에요. 협상하지 말고 그냥 상대방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먼저 제시하세요. 함께할 사람이 아니라면 협상할 게 아니라 빨리 손해를 보고 물러나야 합니다. 손해를 입는 건 꼭 나쁜 게 아닙니다.  


어쨌든 나는 돈을 소비합니다. 하지만 금세 바닥이 드러나지요. 돈이 나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른 편이지만 제 소득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언제나 제한되어 있습니다. 돈을 벌고 그 돈을 소비한 후 나는 무엇을 할까요? 네, 일합니다. 일해야 합니다. 다음 월급이 나올 때까지는 인내해야 하고요.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지 못합니다. 밤늦게까지 일할 때도 많았습니다. 어느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생각하면서 일하고, 개선하면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득이 안정됩니다. 사람들에게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벌어들이는 소득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까요. 이처럼 노동을 해야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돈을 쓸 수 있습니다.  


노동이 소득을 부르고, 소득이 소비를 낳고, 다시 소비가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노동이 나를 제련합니다. 하면 할수록 예리해지고 강해집니다. 남의 생각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갖고 일을 하면 짧은 시간에 더 유능해집니다. 타인과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가 다시 돈을 벌어줍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거대한 엔진입니다.  


만약 내가 재테크를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돈이 불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겠지요. 그만큼 일하기는 싫어졌을 겁니다.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은 감미롭지만 노동은 고되거든요. 돈이 늘어나는 만큼 게을러지겠지요. 노동하지 않는 자는 무능해집니다.  


그런 사람들은 돈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공포를 느끼지요.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자 기회를 엿보던 미래의 내가 드디어 빈틈을 발견했다는 듯이 잽싸게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에 나는 당황하지 않았어요.


미래의 나: 니 논리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미래의 내가 현재의 너보다 소득이 많을 거라고 전제하고 있지. 그것도 아주 확고하게 믿고 있군.

현재의 나: 그건 그래. 내 논리에는 그런 전제가 있긴 해. 대체로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소득이 늘어. 그만큼 실력이 늘었으니까. 게다가 난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니가 인내하고 도와준 덕에 다양한 경험을 했고 부지런히 내 능력을 계발했으니까. 너를 위해 목돈을 마련하려고 기를 쓰고 노력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

미래의 나.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거든. 인생백세 시대야. 네가 늙으면 나도 같이 늙어. 늙으면 소득이 줄어들지. 내가 병에 걸리면 소득도 없어질 거야. 소득이 없어지면 너도 결국 재산을 그리워하게 될 걸? 그리고 후회하겠지. 그때 돈을 저축해 둘 걸, 하고 말이야.

현재의 나: 너도 착각하는 게 있어.  

미래의 나: 뭘?

현재의 나: 노인이 되면 소득이 없어질 거라는 착각. 점점 일할 수 있는 연령이 늘어났다는 건 소득이 지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야. 늙어서도 소득을 늘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너와 내가 함께 찾아보자. 무엇보다 니가 잊고 있는 착각은 이런 거야. 나는 향락과 도박을 안 해. 관심도 없고 그럴 시간도 없어. 게다가 재테크 목적으로 돈놀이를 하지도 않아. 그래서 저축하지 않고 소비한다고 해서 쓸데없이 써버리지는 않아. 향락과 도박과 투기를 하지 않으면 늘어나는 소득을 다 쓰기는 어려울 거야. 언젠가 아이들이 자립할 것이고 그러면 소비는 더 줄어들겠지. 만약 소비가 줄어들지 않았다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인생을 즐기고 있거나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겠지. 뭐가 문제니?

미래의 나: 고집 피우지 말고 그냥 한번, 소득이 줄었다고 생각해 봐. 재산도 없고 말이야. 그런 경우 어떻게 할 건데?

현재의 나: 소비를 줄이면 돼.  

미래의 나: 그것만으로 될까?

현재의 나. 난 소득이 있었기 때문에 소비를 했어. 소득이 없다면 소비도 없겠지. 다행히 난 세금을 많이 냈어. 국가의 도움을 받겠지. 일단 연금이 있어. 너도 옛날에 가난해 봤잖아. 돈이 없어서 돈을 못 썼을 뿐이지 산에서 들에서 웃으면서 잘만 놀았잖아. 노인은 아이처럼 뛰놀 수 없으니까 어디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단순하게 살면 하루가 금세 풍성해질 거야. 하루 두 끼만 먹어도 돼. 하지만 연금이 있으니까 세 끼는 먹을 것이고, 병원에도 갈 수 있어.


이렇게 답하니 미래의 나는 이길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제 논리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깨닫는 눈치였지요. 체념하듯이 조용한 목소리를 이렇게 말하더군요.


미래의 나: 좋아, 내가 졌어. 너라는 사람을 인정하겠어. 그런데 아직 소득이 없거나 임금이 낮은 젊은이들에게도 니가 말한 논리가 과연 통하겠니?  

현재의 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흐름은 다르지 않을 거야. 우린 모두 소중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으니까. 내가 젊은이에게 조언을 한다면 대략 이런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무슨 일을 하든 소득이 있어야 해. 부모의 재산을 탐내지 말고 자기 능력으로 소득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어. 알바든 비정규직이든 무슨 일이든 좋아. 소득을 늘이는 일에 집중해야 해. 소득이 없으면 소비할 수 없어. 경험을 늘릴 수도 없고 도전도 어려워. 소득이 생겼다면 그걸로 함부로 재테크할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한테 써.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는데 돈이 부족하면 미래를 당겨써. 그러면서 계속 일해야 해. 직장을 바꿀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노동에 집중해. 베테랑이 돼서 그 직업의 세계가 명확하게 보일 때까지. 미래의 자신이 현재의 자신보다 소득이 더 높을 거라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소득이 늘어나면 반드시 유혹이 생겨. 불안한 미래를 들먹이면서 재테크해야 한다며 조언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침입해 들어올 거야. 그걸 진압해. 그냥 소득이 늘면 소비를 함께 늘려서 균형을 잡고 다시 일해. 돈에 관해서는 이 정도의 흐름이 아닐까? 나머지는 자기들이 알아서 채우는 거겠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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