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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Apr 21. 2018

에세이11_저축

저축에 대하여

(생략)

여러분, 사람들은 왜 저축을 할까요? 대체로 이렇게 답합니다. 

− 인생의 행복을 위해.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요. 그런데 누구를 위한 행복입니까? 당연히 자기 자신의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나는 묻습니다.  

−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는 다른 사람입니까?  

어째서 항상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참고 인내하며 희생해야 하나요?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위해 좀 도와주면 안 됩니까?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보다 돈을 더 많이 갖고 있는데 왜 자꾸 돈 없는 사람한테 돈을 달라고 요구합니까?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지 못할망정 오히려 돈을 요구하는 게 부당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를 착취하는 겁니까? 이렇게 현재의 내가 거칠게 항변하자 미래의 내가 대화를 요청하더군요.  


미래의 나: 도대체 왜 그래? 돈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회라는 거 너도 알잖아? 우린 서로 도와주기 위해 노력해야 해. 

현재의 나: 난 널 도와주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희생해 왔어. 너도 알잖아? 

미래의 나: 노력과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거야. 그거 없으면 우린 엉망이 된다고! 넌 내가 엉망이 됐으면 좋겠니? 우린 같은 사람이잖니? 

현재의 나: 아냐 아냐. 넌 엉망이 되지 않아. 그럴 리 없지.  

미래의 나: 어째서? 

현재의 나: 왜냐하면 내가 지금 네가 되고 있는 중이니까.  

미래의 나: 그게 뭐? 니가 대체 뭘 하고 있는데? 저축도 하지 않겠다면서. 

현재의 나: 난 네가 무능한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이 되기를 원해. 그래서 난 유능해지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지. 난 네가 나쁜 놈이 되기보다는 선량한 사람이기를 원해. 그래서 내가 먼저 착하게 살려고 노력 중이야. 남과 싸우기보다는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어. 남한테 욕을 먹기보다는 존경받기를 원해. 돈맛에 빠져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돈이 사라지면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지. 미래의 내가 게으름뱅이에 무능한 놈이 되어 있다니, 이건 안 되는 일이잖아? 난 니가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하고 있어. 

미래의 나: 그런 좋은 생각은 나도 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린 같은 사람이니까. 내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할 리 있겠어? 하지만 말이야. 미래는 모르는 일이잖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야지. 내가 직장을 잃어서 수입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건데? 그때 가서 어떻게 살라고? 

현재의 나: 니 문제가 뭔지 아니? 넌 희망이 없어. 그래서 자꾸 불안만 이야기해. 항상 나쁜 상황을 말하지. 어둡고 부정적인 미래로 나를 위협하면서 설득하려고  하고. 

미래의 나: 그게 인생이야. 냉정하게 생각해. 천국에 가려고 종교가 생겼다고 생각하니? 그게 아니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종교가 생겼다고. 인생은 지옥이야. 그러므로 대비를 해야 해. 내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더 나은 상황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니가 해줘야 하는 거 아니니? 

현재의 나: 아니, 니 생각이 틀렸어. 다시 생각해 봐. 은행에 현금이 많으면 부작용이 생겨. 위험에 빠졌는데 그 위험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거야. 돈이 있으니까. 자기가 지금 지옥에 빠졌는데 거기가 여전히 천국인 줄 아는 거야. 그래서 빠져나올 생각을 안 해. 아직 재산이 많거든. 내가 널 위해 하고 싶은 건 이런 거야. 니가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일. 니가 추락하고 있는 중이라면 그 중력을 느낄 수 있는 힘을 주는 일. 난 니가 나쁜 상황에 빠져도 네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싶어. 

미래의 나: 그래서 저축을 하지 않겠다는 거니? 

현재의 나: 응. 너를 위해서 돈을 모을 마음이 없어.  

미래의 나: 그러면 지금 버는 돈을 다 써버리겠다는 말이야? 과소비가 널 다치게 할 거야. 사람들이 널 비난할 거라고. 한심하고 무책임한 놈이라고. 

현재의 나: 저축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모두 소비한다는 말은 아니야. 그저 매일 돈을 절약해야 한다면서 내 머리와 어깨를 핍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지.  

미래의 나: 그래서 넌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데? 

현재의 나: 아까도 말했잖아. 많은 일을 하고 있지. 네게 줄 선물이 많아. 네게 건강한 몸을 물려주고 있지. 내가 아프면 넌 아무것도 아니니까. 돈의 지배를 받지 않는 건강하고 즐거운 정신은 네게 덤으로 주워지지. 좋은 인간 관계도 있어. 니가 상상하기 어려운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 무엇보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고스란히 네 것이고, 돈을 아끼지 않고 도전해서 얻게 된 실패와 실수,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너를 강하게 만들 거야.  

미래의 나: 니가 말하는 이야기는 다 멋은 있긴 해. 하지만 가난한 멋쟁이가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현재의 나: 아니, 넌 가난하지 않아. 적어도 지금의 나보다 소득이 좋잖니. 사는 데 문제가 없잖아? 생활하는 환경도 더 좋고. 그거 다 내가 노력해서 너한테 선물한 거잖아. 그런데 왜 자꾸 비겁하게 가난한 척하니? 재산을 보지 말고 소득을 보라고. 소득을 높이는 일도 매우 어려운 일이야. 능력과 인격과 운, 이 세 가지가 필요해. 운은 내가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두 가지를 주기 위해 노력해 왔어. 돈 대신 능력을, 그리고 인격을 너한테 선물하려고 말이야. 나는 널 위해 저축하지 않아. 대신 네게 능력과 인격을 줄게. 너도 그다음의 나를 위해 더 좋은 능력과 더 좋은 인격을 선물해 줘. 돈은 부족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니 미래의 내가 당황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때다 싶어서 강력한 어퍼컷을 날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재의 나: 넌 나보다 소득이 많지. 그건 내가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야. 너도 나를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어.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확인하고 싶은 일도 있어. 더 늦기 전에 경험하고 도전하고 싶은 일도 있어. 그런데 그런 일들에는 다 돈이 필요하잖니.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야. 그러니 네가 도와줬으면 해. 나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도 있어. 누군가에게 돈을 꿀 수도 있겠지. 또 할부로 여행한다거나 내가 꼭 원하는 상품을 살 수도 있어. 네가 해결해 줬으면 해. 나는 너를 당겨써야겠어.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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