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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Apr 11. 2018

에세이10_규칙에대하여

규칙에 대하여

규칙은 편리하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반듯이 나눠준다. 타인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고 동기를 듣는 일은 성가시다. 반면 규칙과 결과를 비교하는 일은 쉽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규칙을 어기면 나쁘다. 비난하기 좋다. 죄책감? 하지만 나는 저렴한 죄책감이 싫고 사람들이 값싸게 멍드는 것도 싫다. 초등학생 딸에게 나는 말했다. 


세상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단다. ‘언제나규칙’과 ‘이게좋아규칙’. 사람 마음에는 깨끗하고 예쁜 마음이 있지. 그걸 양심이라고 한단다. ‘언제나규칙’은 우리 마음속 양심이 정해 놓은 규칙이야. 항상 지켜야 해. 절대규칙이지. 거짓말하지 않기, 남을 괴롭히지 않기, 도둑질하지 않기. 이런 규칙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지키려고 노력해야 해. 지켜주는 게 아니라 지켜야만 하는 규칙.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규칙이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규칙인 게 있어. 사람들이 이게 좋다고 정해놓은 규칙이란다. ‘이게좋아규칙’이라고 해. 지켜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주는 규칙이지. 학교 규칙의 대부분은 이게 좋아 규칙. 지켜주면 사람들이 좋아해. 그렇지만 언제나 규칙은 아니야. 


내가 사는 빌라는 주차장이 제법 넓다. 하지만 세대마다 차가 늘어서 공간이 촘촘해졌다. 어느 날 술렁거림이 생겼다. 빌라 입구 유리문에 그림과 숫자가 그려진 A4 종이가 붙어 있었다. 주차공간을 구획하여 공간마다 세대 호수를 부여한 포고령이었다. 나는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소요를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주차장 구역 배치에 대한 303호 입장’이라는 제목의 종이를 옆에 붙였다. 이런 내용이었다. 


주차장 구역 배치에 대해서 저희 303호 입주자에 대한 사전 동의나 협의가 없었으므로 이점 유감을 표합니다. 이번 주차장 구역 배치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으므로 다른 입주자님께서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이번 조치로 몇몇 세대는 편리함과 승리감을 경험하겠으나 그것은 고유하고 당연한 ‘권리’는 아니며, 불편함을 겪는 다른 세대는 반드시 정해진 위치에 주차해야 하는 ‘의무’를 져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권리와 의무가 없다면, 함부로 규정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이번 조치는 불필요한 감정을 유발함으로써 심리적 거주 환경을 악화시킵니다. 설령 불편함이 있더라도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조치를 강요함으로써 정해진 곳에 주차하지 못했을 때 당사자로 하여금 죄책감을 일으킵니다. 어째서 이웃에게 죄책감을 일으키게 합니까? 또한 정해진 곳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지 않으면 쓸데없는 분노와 불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어째서 이웃에게 화를 내는 상황을 만듭니까? 그런 감정들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이번 조치는 그런 부당한 감정을 발굴해냈습니다. 

셋째, 세대마다 방문차량이 있을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그림처럼 주차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죄책감을 일으키고 분노하시렵니까? 

서로에 대한 배려의 권장은 이웃으로서 아름다운 문화입니다. 반면 함부로 법을 정해서 이웃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행위를 강제하는 것은 괜한 감정만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웃이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차를 빼 달라는 전화에 기분 나쁜 적이 없었습니다. 이웃이 정당하게 요청하는데 뭐가 기분이 나쁩니까? 그런데 그런 전화가 귀찮아서 강제 규정을 만들고 공연히 감정을 유발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조치는 차량이 두 대 있는 세대는 앞뒤 나란히 주차하기를 바란다는 권고만으로 끝날 사항이었습니다. 딱 그 정도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 권고라면 경청할만합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과유불급입니다. 세대별 주차구역을 정하는 데 303호는 응할 마음이 없습니다. 반대합니다. 


소란은 금세 잦아들었다. 포고령은 사라졌다. 주차 문화도 나아졌다. 우리 인간에게는 저마다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오래된 빌라의 이웃도 그러했다. 규칙이 없어도 양심은 있다. 양심에 순종하면 남을 배려하게 마련이다. 규칙이 많아질수록 인심은 위축된다. 무엇이 바람직한가라는 물음보다 무엇이 위법한가라는 추궁이 더 큰 근육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깊이 생각할 여유를 잃는다. 규칙을 만드는 편리함보다는 양심을 따르는 불편함을 그러므로 나는 좇는다.


(월간에세이 2015년 6월호에 연재했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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