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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Apr 03. 2018

에세이9_내우주는작다

내 우주는 작다

우주는 한 벌로 존재한다. 양말이 한 켤레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자가 있다면 남자도 있다. 음양이 있으며 빛과 어둠이 서로를 증명한다. 안팎이 있고 위와 아래가 있다. 필경 우주도 한 벌로 완성될 것이며 내가 곧 우주라고 외면하며 말한다. 저쪽 우주일랑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에게 묻고, 이쪽 우주는 인간의 마음속에 거하지 않겠냐는 명랑한 생각. 두 벌이면 어떻고 서너 벌이면 또 어떤가. 누군가 내게 소주 한 잔을 건네면 그 대가로 나는 우주 한 잔을 따른다. 


이런 생각은 십수 년 전에 점화되었다. 절치부심하며 내가 속한 세계와의 싸움을 끝내지 못한 시절이었다. 막연히 대립함으로써 나는 존재했다. 이정표는 넘어졌고 청춘이 고갈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히페리온>이라는 제목의 서간체 독일 소설을 집어 들었다. 소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최대의 것에서도 위압당함이 없으며 최소의 것에서도 기쁨을 찾는다. 이것이 곧 신성한 일이다.” 


나는 이 문장을 내 생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쫄지 말고 거대한 힘에 맞서자는 메시지는 호기롭지만 모르핀 같다. 강한 힘을 뽑아내려니 연약한 몸을 보채고 채굴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기증이 난다. 높은 곳을 달리는 자는 들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나는 높은 곳에 속하지 않고 들풀에 속한다. 나는 그저 밟히면 다시 일어날 뿐이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높은 곳을 동경하면서 뜀박질을 했다. 그런 게 아니란다. 위축되지 말거라. 네 주위의 먼지들의 목소리를 들으렴. 거기에 신이 있단다. 이렇게 생각하니 미미한 기쁨이 발화되기 시작했다. 불이 번진 곳, 그곳에 나의 우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성한 문장은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묘비에 적힌 글귀라 한다. 


주말에 가끔 강릉에 간다. 영동고속도로를 몇 시간이나 달려서 강릉에 있는 보헤미안에 당도한다. 거기서 커피를 마시고 다시 돌아온다. 기름값, 고속도로 통행료, 소모된 시간, 방전된 몸을 계산하면 합리적이지 못하다. 나는 커피를 옹호하며 반론한다. 천문학적인 돈을 써서 우주를 탐험하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경제적인 일인가. 지난 주말 나는 아프리카 대륙을 두루 돌아다니며 첫 잔을 마셨고, 부룬디의 야성적인 맛과 향이 둘째 잔이었다. 아내는 쓴 맛을 이긴 커피와 아마존 폭포와도 같은 커피였다. 대륙과 바다를 건너 지구 반대편 여행을 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강릉에서 커피를 마시면 지구 중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이들은 뜨거운 숨을 내쉬는 고로케에 혀를 데며 방금 삶은 달걀 몸에 손가락을 댄다. 카페와 작별하기 전에는 분홍과 파랑 파스텔 색상이 어우러진 카페 문 앞에서 아이들 성장 사진을 찍는다. 나는 이런 식의 사소한 기쁨으로 내 우주에 푯말을 세워 왔다. 


중학생이 돼서 양치질을 하기 시작한 탓에 부끄럽고 무서워서 감히 치과에 가지 못했다. 삼십 대 후반에 처음 스케일링을 받으면서 무사했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가지런하지 못한 치아에 걸맞은 양칫법을 마흔이 넘어 알아냈을 때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곱슬이 심한 머리카락 탓에 평생 비 오는 날이 싫었다. 모자가 내게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지구의 기후를 찬미했다. 최근 나는 일곱 켤레의 양말을 좋아한다. 네 족은 물방울무늬며 세 족은 줄무늬 양말. 몸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양말을 팽팽하게 올려 신으면 빨강, 파랑, 노랑, 하양 물방울이 날마다 다르게 살며시 드러난다. 서로 다른 색채를 띠지만 세상 사람들은 나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한다. 이 은밀한 기쁨이 나만의 독특한 우주이다.  


대단한 일, 커다란 과업, 큰 일을 해냈을 때의 성취감, 명예와 성공 같은 것은 이제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른 우주에서 찾아온 교신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교신은 나 아닌 다른 지구 사람이 받아도 좋다. 나는 그저 나라는 우주가 세상에 위압당하지 않는 것으로 족하고 우후죽순 조그마한 기쁨이 피어나는 것으로 내 종교가 완성된다. 신성한 나는 세상을 향해 심각하게 저항할 줄도 안다. 큰 배가 침몰하고 수많은 우주가 무너졌을 때 나는 신용카드 서명을 또박또박한 정자체로 바꿨다. 나는 내 작은 우주를 바꿈으로써 안팎으로 존재한다.


(월간에세이 2015년 1월호에 연재했던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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