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디정 Mar 29. 2018

지식4_특허와무효

통계 오해로 말미암은 국가행정이 시장과 기업을 얼마나 왜곡하는지

질문: 한국의 특허무효율이 50%를 넘는 실정입니다. 국가가 심사를 해서 특허라는 권리를 줬는데 그중 절반이 무효가 된다면 이는 부실심사의 증거입니다. 한국의 특허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허청의 이런 부실심사 행정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허행정가 혹은 가칭 전문가들의 정말 흔한 오해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한국 특허무효율은 그다지 높지 않고 적정한 수치를 보여줍니다. 

둘째 특허청의 심사행정과 특허무효율은 관련이 거의 없습니다. 

셋째 특허경쟁력과 특허무효율도 상관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런 결론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좀더 높은 구릉에서 국가의 특허정책과 기업의 특허전략을 전망할 수 있게 됩니다. 통계 저 너머의 먼 곳까지 바라볼 시야를 얻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특허무효율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찾지는 못했습니다만, 특허청에 관한 국정감사 뉴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허심판원에서 무효가 되는 비율은 최근 5년간 평균 50.5%라는 것입니다.[1]


다른 통계도 확인해 보았는데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대략 10건의 특허에 대해서 무효심판을 청구하면 5건은 무효가 된다는 것입니다. 두 건 중 한 건의 특허가 무효가 됩니다. 여기서 잠시만, 성급하게 어떤 판단을 내리지는 말고 주위를 둘러봅시다. 독일의 특허무효율은 일부 무효를 포함해서 2000년에서 2012년까지 75%였으며

, 2010년에서 2012년에서는 78%였다고 합니다.[2] 미국의 특허무효율도 상당히 높은 수준입니다. 소프트웨어와 비즈니스 모델 분야의 무효심판사건의 경우 무효율이 80%를 넘습니다.[3] 그러니까 한국 특허무효율이 50%에 이른다고 해서 한국만의 특이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계는 참 편리하지만 편리한 만큼 사람의 생각을 게으르게 만들곤 합니다. 통계의 특정 변수만을 숫자로 표현하기 때문에 다양한 현실 변수가 고려되지 않는데, 그 숫자가 주는 메시지가 강한 나머지 더 깊은 생각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이 특허무효율이 나타내지 못한 현실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특허무효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돼야 합니다. 주장과 증거입니다. 첫째 특허무효를 '공식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행정심판을 청구합니다. 즉, 심판청구의 당사자가 필요합니다. 자기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데 그냥 특허무효를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특허침해 문제가 있으니까 특허무효도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50%에 이르는 특허무효율은 한 해 등록된 10만 건의 특허 중 5만 건의 특허가 무효가 될 것이라는 징표가 아닙니다. 10만 건의 특허 중,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5000건 정도의 특허만이 분쟁과 관련될 수 있다고 가정하지요. 그러니까 특허무효율이라는 것은 아무리 최대로 잡아 봐야 5000건 중 2500건이 무효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잘못된 이야기랍니다. 특허분쟁과 관련된 5000건의 특허에 대해 모두 무효심판이 청구되지는 않습니다. 승소가능성이 분석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가 개입합니다. 내부 논의도 할 것이고요. 요컨대 사전 검열을 통과해야 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전에 특허무효분석을 합니다. 이런 분석은 법리와 증거를 찾아서 행해지는데, 이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소송은 법적인 논리와 증거에 의해서 승패가 갈립니다. 무작정 무효심판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승패를 따져 본다는 말입니다. 질 것 같으면 무효심판을 청구하지 않습니다. 이길 것 같으니까 변리사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전략을 짜서 무효심판을 청구하는 것 아닐까요? 쉽게 설명하자면 5000건 중 예컨대 2000건만 실제로 무효심판이 청구된다는 말입니다(물론 더 적을 수도 있고 더 많을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가정해 보죠). 또한 무효심판 청구된다고 해서 모두 심리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중 상당수가 취하되거나 각하됩니다. 그 비율이 상당합니다. 2015년 특허청 무효심판 통계 중 1470건(같은 해 일본은 215건에 불과, 무효율이 문제가 아니라 남소가 더 문제지요)의 심판처리 중 527건만이 제대로 심리되었고 나머지는 취하, 각하, 무효처분되었습니다.[4] 그리고 527건 중 348건이 무효심판절차에서 무효가 되었습니다(특허법원/대법원의 결과는 생략합니다). 


이제 우리는 50%의 특허무효율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행정심판을 청구한 그 2000건의 특허 중 고작 수백 건의 특허가 무효가 될 수 있음을 뜻하고, 그렇다면 특허무효율은 10만 건의 특허 중 수백 건의 특허만이 무효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의미는 다양하게 변조되기도 합니다. 특허무효를 기대하면서 무효심판을 청구했는데 그중 절반밖에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째서 이길 가능성이 절반밖에 되지 않을까요? 충분히 논리도 준비했고 좋은 증거도 제출했는데 말이죠. 까닭은 간단합니다. 상대방이 있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도 최선을 다합니다. 특허권자는 특허무효를 주장하는 상대방의 펀치를 맞고만 있지는 않거든요. 반론을 제기하고 증거를 공격합니다. 그렇게 서로 싸우고 싸워서 50%의 승률입니다.  


무효심판은 마치 기습적으로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허무효싸움을 개시하는 것도, 무슨 주장을 하고 어떤 증거를 제출할지에 대한 정함도 모두 특허무효를 주장하는 측에서 정합니다. 준비를 꼼꼼히 한 다음에 느닷없이 특허무효전쟁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50%의 승률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특허무효율이 50%라는 통계에서 아무런 문제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증거조차 없는 강력한 특허는 무효심판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특허무효를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일단 특허 무효심판을 제기했다면 반반의 성공률입니다. 운이 좋으면 소송을 이깁니다. 물론 뛰어난 전략, 빼어난 증거, 탁월한 분쟁수행도 중요하겠죠. 그런 역량을 가진 변리사와의 소송수행은 승패에 당연히 영향을 미칩니다. 최고의 변리사끼리의 공방은 볼만하겠지요. 하지만 생각보다 그런 장면은 드뭅니다. 


이로써 앞에서 제기한 첫 번째 저의 결론, <한국의 특허무효율은 그다지 높지 않고 적정한 수치를 보여준다>라는 견해가 설득력 있게 전해졌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제 두 번째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특허청의 심사행정과 특허무효율은 과연 관련이 있을까요? 


먼저 개념적으로 구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특허심사와 특허무효의 관계와 특허심사와 특허무효율의 관계는 <다른 범주>입니다. 전자는 제도와 제도를 비교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합니다. 후자는 제도와 확률을 비교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것부터 설명하지요. 


국민(외국인도 마찬가지입니다)이 어떤 아이디어에 대해서 특허를 받으려면 국가기관에 특허를 신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국가기관은 엄정하게 특허심사를 해서 과연 독점권을 줄 수 있는 아이디어인지를 심사합니다. 법률이 정한 절차와 내용에 따라서 심사를 행합니다. 심사는 사람이 합니다. 심사관이라는 직책을 지닌 공무원이 하죠. 그런데 아이디어는 물건이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확인해서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규격이랄 게 없습니다. 아이디어는 무형이며 눈에 보이지 않고 그래서 심사가 기계적으로 행해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특허심사는 국제주의를 취합니다. 이론적으로는 지구 전체의 관점으로 새롭고 진보적인 발명만이 특허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요. 심사관은 신청된 아이디어가 과연 지구 전체의 관점에서 독창적인지를 심사해야 합니다. 법이 그렇게 규정되어 있어요. 


그렇다면 심사관은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알고 있으며 모든 정보와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가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넌센스죠. 전혀 가능하지 않습니다. 공무원은 신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특허제도는 그런 전혀 가능하지 않은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답니다.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인간의 현실 사회에는 경험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사관은 선행기술을 조사해서 신청된 아이디어와 비교해야 합니다만, 산업을 선도하는 혁신적인 발명은 지구촌 일부 나라에 한정되어 있거든요. 언어처리 기술도 많이 발전했고요. 그래서 심사관은 몇몇 나라에 제한된 범위로 선행기술 조사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칙에 의존해서 심사를 한다고 해서 완벽할 리는 없습니다. 공무원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도 당연히 특허심사에 개입하게 마련이고요.  


그래서 이를 보완하는 제도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특허무효 제도입니다. 국가기관의 공무원이 일차로 심사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완벽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혹시 특허권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특허무효제도를 둬서 나중에라도 잘못된 특허를 없애도록 했습니다. 즉 특허무효는 특허심사를 보충해주는 의미이며, 아주 바람직한 제도이지요. 


특허는 기술에 관한 것이고, 그 기술은 순수 학문적인 성과가 아니라 항상 시장에서의 활용을 염두에 둔 기술입니다. 시장활동이 없는 특허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시장이 없으면 특허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대략 맞는 생각입니다. 시장이 소멸했다거나 시장에서 패퇴한 경쟁자의 특허는 어찌 되겠습니까? 보통은 특허도 소멸됩니다. 이것도 일종의 경험칙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자 있는 특허라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자 있는 특허가 문제가 돼서 정말 무효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그 특허와 관련된 시장이 있다는 증거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권리를 둘러싼 이해관계가 있을 것이며, 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기업)들이 서로 싸우면서 특허무효를 다투게 한다면 좀더 낫지 않겠습니까? 요컨대 시장이 특허행정을 보충합니다. 그것이 특허무효 제도의 자연스러운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특허심사와 특허무효의 관계는 법제도 관점에서나 현실 시장의 관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무효제도는 심사제도를 보충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무효제도를 통해서 하자 있는 특허를 없애는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애당초 하자 있는 특허가 없도록 심사하면 되지 않겠냐고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공무원은 신이 아닙니다. 국제주의를 택한 특허심사제도에 부합하지 않은 발상입니다. 공무원 개개인에게 불가능한 과제를 주면 필경 부작용이 따릅니다. 


대부분의 하자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당사자에 의해서 발견되고 주장되는 것이지 국가기관의 의무가 아니라는 점, 무효특허의 출현이 시장과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국가행정 기관이 완벽한 심사를 추구하면 공무원의 실적부담을 증가시키며 주관성을 강화시킨다는 점, 이는 발명공개에 대한 대가로서 특허처분으로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기보다는 거절처분의 남용으로 특허행정을 규제행정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는 점, 결과적으로 특허제도가 혁신을 촉진하기보다는 가로막는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골고루 생각해야 합니다.  


특허심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무효율을 떨어트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특허법의 목적은 특허제도를 통해서 발명의 보호장려, 기술의 누진적 발전과 산업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허심사의 목적도 특허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겠지요.  


또한 공무원은 대법관이 아닙니다. 발명의 보호 장려와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려는 제도 취지에 맞게 엄정한 심사를 하면 충분합니다. 애당초 하자가 없도록 심사를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심사해서 권리를 부여한 100건의 특허에 대해서 한두 건의 특허가 나중에 무효가 되었고, 그 이유가 당사자의 공방을 통해서 전혀 다른 증거로 무효가 되었다면 그 공무원을 탓할 수 없습니다. 행정처분에 의해서 누군가 피해를 본 것도 아니며, 혹시라도 있을 피해는 법원의 판결과 시장 경쟁력에 의해서 보상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좋은 발명에 대해서 엄격한 심사라는 미명으로 간단히 거절하고 그것이 법원절차에서 뒤집어졌다면 그 공무원의 거절처분으로 특허출원인을 피해를 입게 됩니다. 대개 대기업은 괜찮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의 경우, 공연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로 시장에서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국가기관의 행정은 이런 파급력을 형량해야 합니다.  


물론 엄격한 심사를 해서 특허취득율 자체를 떨어트리면 특허무효율도 낮아질 수도 있겠지요. 논리적으로는 무효의 대상이 절대적인 양이 적어졌으니까요. 하지만 권리의 하자는 공무원이 찾는 게 아닙니다. 특허분쟁이 있는 곳에 특허무효가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특허의 권리존속기간은 20년이어서 과거의 특허가 분쟁에 사용될 수 있고요.  


행정기관은 법률의 규정을 실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장에서 발생되는 모든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특허심사는 행정기관에 전속합니다(물론 행정불복절차가 있습니다). 반면 특허무효는 시장에서 비롯되고(시장이 없는 곳에서 는 특허무효가 청구되지 않습니다), 무효율은 당사자가 쟁송절차에서 제출한 주장과 증거, 소송행위 등에 의해서 결정될 뿐입니다. 심사를 아주 잘했으나 특허가 무효될 수 있고, 심사를 아주 못했으나 그 특허가 무효의 대상이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하자가 있는 특허이지만 무효쟁송과정에서 그 하자에 부합하는 주장이나 증거가 제출되지 못한다면 유효한 특허입니다. 


그러므로 "특허청의 심사행정과 특허무효율은 관련이 거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특허경쟁력과 특허무효율의 상관성을 살펴보겠습니다.  


특허무효율은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한 사건 중에서 관련 특허가 무효가 되는 비율입니다. 일부 무효를 포함시킬지, 각하/취하/절차의 무효를 포함해야 할지, 심급의 문제는 어떻게 할지에 따라 숫자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또한 기술분야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죠. 어쨌든 특허무효율은 무효가 청구된 특허 중 실제로 무효가 되는 비율입니다. 등록되어 있는 모든 특허의 잠정적 무효 비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특허경쟁력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변하는 사람을 나는 만난 적이 없습니다. 먼저 누구의 특허경쟁력을 뜻합니까?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허경쟁력? 국가 단위로 특허경쟁력을 따지는 것은 다소 몽롱합니다. 정부는 시장의 실질적인 주체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국가의 특허경쟁력은 통계로만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해마다 얼마나 특허를 신청했다거나 등록했는지 따위의 통계입니다만, 흥미롭기는 해도 정답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특허경쟁력이 높은 수준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는 반면 통계 수치로는 무엇이든 세계 탑5 안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양적으로 뽐냈다고 질적인 탁월함을 증거하지 못합니다. 어쨌든 국가의 특허경쟁력을 분석해서는 통계밖에 얻을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다시 시장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장의 실질적인 주체는 기업이라고 볼 때, 결국 특허경쟁력은 기업의 특허경쟁력 위주로 살펴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거대한 생각의 늪 앞에 서게 됩니다. 시장은 복잡하고 기업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산업별로 특성과 환경과 요구가 다릅니다. 또 기업별로 규모와 역량과 전망이 다릅니다. 산업별, 기업별 이해관계는 천양지차입니다. 기업의 특허경쟁력을 제대로 탐색하려면 이런 요소들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한 고찰입니다. 이쪽에서 맞는 이야기가 저쪽에서는 틀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령을 피우겠습니다. 산업과 기업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딱 하나의 분류만 생각해 보지요. 특허권자와 특허권자가 아닌 자로 기업을 분류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술에 관해서 특허라는 권리를 보유한 기업, 이를 <특허권자 기업>이라고 칭해보지요. 그리고 해당 기술과 관련된 시장에서 그 특허권자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을 <경쟁자 기업>이라고 표현해 보겠습니다. 누가 산업의 주체이며 누가 시장에서 존중 받아야 합니까? 둘 다 입니다. 당연하죠. 이 당연한 문답이야말로 특허경쟁력을 따짐에 있어 아주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특허경쟁력 운운하면서 특허권자 기업의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특허권자 기업만으로는 시장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시장이든 국가든 산업이든 어떻게 표현하든 경제가 이루어지려면 경쟁자 기업의 이익도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인류사를 돌이켜 봐도 기술의 발전은 여럿이 힘을 쓸 때 더 빠르고 크게 발전합니다. 즉, 특허경쟁력이라는 표현을 우리가 사용할 때에는 항상 특허권자 기업뿐만 아니라 경쟁자 기업의 이익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특허제도는 특허권자 기업과 경쟁자 기업을 차별 대우합니다. 국가 행정기관은 특허권자 기업에게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권리자를 보호하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법치국가의 보통 원리입니다. 하지만 법률은 많거든요. 이 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법도 있습니다. 시장에서의 독점적 차별대우는 공정거래를 해치고 시장을 파괴합니다. 특허권자 기업이 대기업이거나 선발경쟁자라면 시장을 선점한 상태에서 특허로 이중 독점을 시도하기 때문에 후발경쟁자가 극심한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특허제도로부터 비롯된 차별 대우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 한계가 바로 보호할 가치가 사라진 특허는 소멸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해당 특허가 소멸되면 특허권자 기업과 경쟁자 기업의 분류도 소멸합니다. 특허가 소멸되면 누구나 자유롭게 그 기술을 이용할 수 있지요. 존속기간만료제도는 특허가 20년의 제한적인 소유권임을 원칙적으로 천명합니다. 등록료 미납 소멸제도는 특허제도와 시장을 밀접하게 연결합니다. 시장에서 망하면 자연스럽게 특허도 없어지도록 유도하여 특허제도를 보완했습니다. 2015년 현재 1,540,235건의 특허가 등록되었으나, 그중 627,792건이 소멸되었습니다. 무려 40.8%에 이릅니다(특허청 2016년 지식재산백서 중). 이 두 가지 제도는 국가가 특허권자 기업의 독점을 제한하려는 조치입니다. 경쟁자 기업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조치할 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특허무효 제도입니다.  


하지만 경쟁자 기업에 의해서 무효가 되는 특허보다 특허권자 기업 스스로 포기하는 특허가 훨씬 많습니다. 도대체 어째서 특허권자 기업은 자기가 갖고 있는 특허를 포기할까요? 시장에서 망해서 특허를 관리할 역량을 잃었거나, 특허기술이 보호할만한 가치를 잃었기 때문이겠죠. 이런 경우에 대해서는 누구도 특허경쟁력을 언급하지 않더군요.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특허가 그렇게 대규모로 소멸되는 만큼 기술 공유의 영역이 증가해서 시장과 산업에 이로워졌다고 생각합니다. 기술 공유의 영역은 무주공산이 아닙니다. 거기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일어나지요. 새로운 기술혁신과 새로운 특허활동이 생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허제도가 혁신을 막고 있다는 비판은 현실적이지 않지요.


다시 특허무효제도로 돌아와 봅시다. 보호할만한 가치가 없는 특허라면 특허권자 기업의 이익보다 경쟁자 기업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독점은 예외적인 것이고, 예외는 독창적이며 진보적인 기술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생긴 것인데, 그 예외 조항이 사라졌다면 그것을 무효로 정화시키는 것이 시장과 산업의 발전을 위해 타당한 일이 아닐까요?  


그런데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특허무효제도는 시장에서 비롯됩니다. 특허무효심판을 청구하기 전에 특허분쟁이 있었을 것이고, 특허분쟁이 벌어지려면 시장에서의 충돌이 있게 마련이거든요. 저는 그래서 특허무효는 특허제도에 대한 시장의 정화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등록료 불납 등에 의한 소멸도 마찬가지로 시장활동과 깊은 연관이 있고요.  


이처럼 특허제도와 시장의 영향력을 종합적으로 생각하면 특허경쟁력과 특허무효율은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기업의 특허경쟁력이란 무엇일까요? 특허권이라는 결과로 특허경쟁력을 가늠하는 생각보다는, 특허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혁신문화가 어떻게 자극되는지를 저는 중시합니다. 특허무효율이 이슈였으므로 일단은 여기까지만 답하겠습니다. 


어쨌든 특허무효율이 50%를 상회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아니며, 더더욱 그 원인을 특허청의 부실 심사로 유추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이며,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생각입니다. 특허청의 부실 심사를 꼬집으려면 특허무효율이 아니라 거절결정에 대한 불복절차에서 취소되는 비율을 탐구하는 것이 온당합니다. 


          

[1] <특허청, 고질적 부실심사 개선해야>, 아시아뉴스통신, 2016. 9. 22. (https://goo.gl/E1ihXf)

[2]  Joachim Henkel, Hans Zischka, <Why most patents are invalid>, 2015. 3. 24. 

[3]  Robert R. Sachs, <THE ONE YEAR ANNIVERSARY: THE AFTERMATH OF #ALICESTORM>, 2015. 6. 20. https://goo.gl/NxPlTZ

[4]<2015 지식재산통계연보> 중 152면, 특허청, 2016년 발행.


(2016년 겨울에 생각을 정리했던 글)

작가의 이전글 편지10_자유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