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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디정 Dec 08. 2019

한국과 일본의 차이

27 | 흥미로운 역사이야기

한국과 일본의 차이


(2018년 12월, 일본 센다이 도호쿠대학교에서 한국, 한국사회, 한국인에 관해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강연문을 약간 편집해서 소개합니다)


저는 오늘 한국, 한국사회, 한국인에 대한, 어쩌면 익숙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하면 기묘한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 낙관과 비관, 부정과 긍정 사이에서 뭔가를 멋지게 제안하려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여기 계신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웃나라를 이해하는 데, 또한 일본에서 유학 중인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기 나라를 재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16년째 변리사로 일하고 있고, 서울에서 특허법인을 경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동업자인 친구와 빌딩 옥상에 올라가 함께 담배를 태우다가 문득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있잖아. 우리 한국사람은 말이야,
뭔가 오랫동안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으면 어쩐지 불안감을 느끼지 않니?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인생을 살아도 괜찮은 걸까, 하고 말이지.


친구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라고요. 우리 한국인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왠지 불안해지고 무엇인가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하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고 답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장인’의 인생을 높이 평가하더군요. ‘평가’만 생각한다면야 한국인도 일본인처럼 장인을 높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지요. 일본인은 대체로 평가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합니다.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는 일을 진짜 의욕하면서 또 ‘아무렇지도 않게 실천’합니다. 매일 같은 일을 자연스럽게 반복합니다. 심지어 똑같은 일을 대를 이어서 하더군요.


10년 전에 긴자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아내 선물로 유카타를 하나 샀습니다. 설립 370주년 기념으로 3만 7천 엔에 유카타를 할인 판매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드신 점원이, 자기들의 유카타는 이보다 훨씬 비싼 고급 제품이지만 사장이 정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아까운 표정으로 제게 물건을 건넸습니다. 370년이라, 370년 동안 대를 이어 한 가지 일만 한 것인데, 제가 아는 한국인은 그렇게는 잘 못합니다. 나쁘게 표현하면 불안해하고 좋게 표현하면 모험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형용사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을 이해하는 데 꽤 쓸모 있는 키워드이기 때문입니다.

‘dynamic’이라는 영어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가끔 ‘힘’을 뜻하는 명사로도 사용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Dynamic Korea’ 정도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십 년 전의 일입니다. 비즈니스 목적으로 도쿄에 한 달 정도 머문 적이 있었습니다. 아까 유카타를 샀던 그 시절입니다. 신바시역에 있는 회전초밥집이나 우동가게에 종종 갔는데, 딱 봐도 70세, 80세는 되었을 노인들이 초밥을 만들고 우동 면을 끓였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저분들은 수십 년 평생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자기 일을 지켜온 장인이 아닌가.


당시 연세가 80을 넘은 변리사 선생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최근 판례까지 알고 있더군요. 국제적인 쟁점과 관심사도 꿰뚫고 있었습니다. 여러 주제로 말을 섞어 보니, 이 노선생도 평생을 현장 실무에서 벗어나지 않고 장인처럼 일해 왔던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활해 본 적이 없는 저는 이런 일본인의 모습에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인의 인생이 부러웠습니다. 얼른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본인처럼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열심히 일했지요. 젊은 나이에 섣부르게 영업하는 일을 중단했습니다. 인생을 길게 보면서, 내 전문분야에서 장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 보니 세월이 좀 흘렀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국인이고 역시 일본인처럼은 못 살겠더군요. 일단 오랫동안 전해진 관습적인 지식을 정교하게 반복하기만 하는 건 너무 지루했습니다. 기존 지식과 경험을 계승하기보다는 도전하게 되더군요.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자꾸 ‘내 방식’이 생겼습니다. 역시 일은 ‘다이내믹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잇달아 들었습니다.


젊은이나 노인이나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게 꼭 좋은 건만은 아니지. 이제 막 사회에 들어간 젊은이들, 인맥과 경험과 솜씨가 부족한 젊은이 입장에서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하지 않을까? 나이 많은 사람의 조직문화에 순응할 수밖에.
내가 만약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힘들었을 거야. 나같이 하찮은 출신한테는 한국이 차라리 낫겠어.


왜냐하면 한국은 빈틈이 많거든요. 젊은 사람과 나이 먹은 사람이 다같이 열심히 일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고작 몇 년의 경험밖에 없더라도 ‘젊은 전문가’가 활동할 공간이 생기고, 경쟁력을 갖는 데 일본보다는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적습니다. 가끔 젊은 사람이 제게 찾아와서 인생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누군가의 인생에 조언할 수 있는 입장은 못됩니다만, 어쨌든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사회는 빈틈이 많으니까, 십 년 동안 인내하면서 한 자리를 지키라고요. 그러면 기회가 생길 거라고요. 하지만 한국인의 십 년은 일본인의 십 년과 그 정신적인 길이가 다릅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불안해합니다. 유학이라도 가야 합니다. 자격증이라도 따야 합니다. 글로벌 경험은 아주 매력적인 유혹이지요. 경력에 이롭다면 망설임 없이 직장을 옮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명함을 보관할 필요가 별로 없어요. 휴대폰 번호만 있으면 됩니다. 명함에 적혀 있는 직장이 ‘또’ 달라졌으니까요.


한국인에게는 특유의 다이내믹이 있습니다. 역동적인 인생을 꿈꾸고 또 실제로 그렇게 변화가 심한 인생을 삽니다. 그렇다는 건, 한국인의 정신적인 기질이 남다르게 자유롭다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유주의’라는 단어에서 쓰이는 그 ‘자유’와는 좀 다른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다이내믹’ 한 것입니다. ‘권위’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한국인의 이런 태도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권위’ 자체를 부정하는 탈권위가 아니라, ‘이 권위’보다 ‘저 권위’가 더 매력적이라면 ‘이 권위’를 부정하는 데 머뭇거림이 적다는 의미의 ‘다이내믹’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권위적인 질서와 관료적인 시스템이 당연히 존재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권위는, 그것이 무엇이건, ‘한시적인 속성’을 갖는다고 표현하고 싶군요. 한국인은 오래된 권위를 잘 인정하지 않으며 자꾸 더 나은 권위를 바랍니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역동성을 불러옵니다.


먼저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본인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이내믹합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모여들어 대통령 탄핵을 외쳤습니다. 저도 초등학생 딸아이를 데리고 촛불을 들고 그 역사적인 장소에 참여했지요. 수십 만 명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최고 권위를 부정하는 자리였지요. 데모라고 해서 무섭거나 하지도 않았어요. 거의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군중에 의해 대통령이 쫓겨난 것은 아니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통령의 직위가 해제된 것이지만, 결국 거대한 규모의 민중이 분노해서 부정한 대통령을 쫓아낸 것과 다름없습니다. 한국 현대사에는 이렇듯 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힘으로 역사를 바꾼 일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역사도 다이내믹하게 해석합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사료 중심의 역사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런 객관적이며 조심스러운 연구가 평범한 한국인의 마음에 드는 에너지를 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러운 추론입니다만, 우리 한국인은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현재의 관심’으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역사를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인에게 역사는 현재와 과거가 서로 만나는 곳이며, 상상력의 힘으로 ‘픽션’과 ‘논픽션’이 함께 섞이면서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역동적인 공간인 것 같아요.


시간은 죽어서 공간으로 갑니다. 공간 안에 있는 시간은 이미 죽은 시간입니다. 거기에 역사가 있고요. 역사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죽은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시간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관심’이 시간을 살려냅니다. 한국인이 관심을 가지면 죽은 시간도 부활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한국인은 다이내믹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한국인에게 역사는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이며, 그래서 쉽게 해결되는 주제가 아닙니다. 역사라는 공간 안에 ‘과거’와 ‘논픽션’만 있는 게 아니라, ‘현재’와 ‘픽션’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이지요.


한국인은 대체로 역동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반면, 일본인은 정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같고, 이런 큰 차이 때문에 서로 대화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 차이가 어디 정도인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역동적이건 정적이건 우리는 과거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산업은 어떨까요?

제가 어렸을 적에나 지금이나 일본은 경제지표마다 높은 곳을 차지하는 선진국입니다. 한국은 많이 다르지요. 지구라는 별에서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서 전속력으로 올라왔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 GDP 세계 12위입니다. 1위는 미국이고, 일본은 중국 다음 3위입니다. 산업에는 기술이 정신없이 진보하는 분야가 있는 반면, 오랫동안 쌓인 노하우가 중요한 분야가 있습니다. 한국의 산업은 전자에 매우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요. 예컨대 반도체 분야가 그러합니다. 정보통신분야나 디지털 관련 기술도 마찬가지고요. 오늘날 이런 다이내믹한 산업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이 웬만해서는 일본 기업에 뒤지지 않습니다. 일단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을 추월하면 다시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기초과학을 포함한 학문에는 매우 취약합니다. 변화하지 않고 오랫동안 앉아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분야는 다이내믹하지 않다는 특성이 있지요. 그러면 한국인은 약합니다. 의약, 소재, 그리고 노벨상에는 취약하지요.


한국의 다이내믹을 이야기한다면 ‘한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입니다.

이 산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얼마나 체계적이며 선진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먼저 드라마가 있습니다. 2002년 “겨울연가”라는 드라마가 일본에서 엄청난 한류를 몰고 왔습니다만, 세대가 다른 여러분이 잘 알지 모르겠습니다. 그해 저는 말레이시아, 타이, 캄보디아, 베트남을 일주하면서 배낭여행을 했었는데, 어디 가나 한국 드라마 이야기였습니다. 최근에는 드라마에서 K-Pop으로 넘어온 것 같습니다. 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케이팝에 열광하고 있더군요. 한국인인 저도 매우 놀랍습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20세기에 비틀즈가 있었다면 지금 시대는 “BTS”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희 집은 저녁을 먹을 때 음악을 틉니다. 언제가 저녁식사 시간에 비틀즈를 듣자고 말했어요. 아들이 답하더군요. “비틀즈가 아니라 BTS”라고요. 그러더니 BTS의 “DNA”라는 노래를 틀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우린 완전 달라


그러고 보면, 저는 지금 한국인의 DNA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이내믹한 DNA 말이지요.

집단적인 DNA라는 개념이 과연 가능할까요? 이리 보나 저리 보나 비과학적인 개념입니다. 그냥 ‘메타포’로 이해해 주세요. 어쨌든 한국인과 한국사회는 그만큼 역동적인 에너지가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입니다. 그게 ‘한류’, 혹은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분야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콘텐츠가 출현하고 정신없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지 모릅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그만큼 다이내믹한 분야니까요.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불행히도 한국에는 대형 안전사고가 비교적 자주, 반복돼서 일어납니다. 자연재해라기보다는 사람이 원인인 사고지요. 어떤 모임에서 NHK의 서울지부의 기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를 제게 묻더군요. 매뉴얼대로 관리하면 될 텐데 어째서 한국인들은 매뉴얼 대로 안전사고 예방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모르지요. 제가 안전사고를 예방하거나 관리하는 공무원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니며, 애당초 그런 일을 한 적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여기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자제품을 사면 매뉴얼이 있잖아요? 일본 사람은 정말로 인내심이 많아서 차분히 매뉴얼을 읽더군요. 그러나 한국인은 대체로 매뉴얼을 읽지 않습니다. 수백만 엔을 넘는 자동차를 산 다음에도 매뉴얼을 읽지 않고 그냥 운전합니다. 읽지 않는 게 아니라, 읽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차분히 생각한 다음에 움직이기보다는, 움직이면서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한국인이 다 그렇다는 게 아니라, 상당히 많은 한국이 그렇다는 이야기니까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매뉴얼을 읽고, 매뉴얼대로 행동하고, 매뉴얼에 정해진 규칙을 반복하거나 훈련하면 대형 안전사고를 훨씬 잘 예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모르는 한국인이 있을까요? 한국인도 다 압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한다면, 십중팔구 한국인인 “이걸 또 해야 해?’라고 지루해할 겁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점만 있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뉴얼 대로 움직이는 사회는 매뉴얼에 적시되지 않은 긴급 상황이 초래했을 때 우왕좌왕할 우려가 있고, 매뉴얼에 적힌 규범이 개인의 상상력을 억누르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한국인의 경우에는 한편으로는 비교적 자유롭고 유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또 매뉴얼이 없을지라도 긴급한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다이내믹한 DNA는 대체 어디에서 생겼으며 그 기원은 무엇일까요? 그 원인과 기원을 알면 한국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저는 편집자로서 나쓰메 소세키 작품을 큐레이팅해서 21세기 한국어로 재번역하는 출판기획을 하고 있는데요. 소세키가 1911년 와카야마에서 한 <현대 일본인의 개화>라는 제목의 강연 텍스트를 읽으면서 힌트를 하나 얻었습니다.


소세키는 ‘활력절약’과 ‘활력소모’가 나란히 뒤섞이면서 변화가 생기고 개화가 일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가능한 한 노동을 적게 하려는 소극적인 정신인 ‘활력절약’으로 인해 더 혁신적인 기술을 자극하고, 가능한 한 힘껏 활동해보자는 적극적인 ‘활력소모’의 정신이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서 결국 변화가 일어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활력절약’이건 ‘활력소모’이건 결국 ‘활력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거의 500년이 넘게 이런 활력이 억제되었습니다. 절약할 활력도 없고, 소모할 활력도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500년을 넘게 말이지요.


조선이라는 왕조가 있었습니다.

그 왕조는 1392년부터 시작해서 1910년까지 한국을 통치했으며 그 기간이 518년이었습니다. 조선왕국은 유교에 의해 뒷받침되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으며 변화가 없는 나라였습니다. 1876년에 일본에 의해 개항했으니까 484년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그 시절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우리 인류가 역사적으로 가장 활력을 소모하고 또 활력을 절약하던 시대였지요. 그러나 조선에서는 그런 활력이 없었습니다. 활력은 국가 차원으로 억제되어 있었습니다. 거의 500년입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에서도 물론 외발적이든 내발적이든 활력이 생기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1910년 일본제국에 강제로 병합됨으로써 스스로 활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일본제국이 패전한 다음 독립하여 1945년과 1950년 사이에 엄청난 활력이 생겼습니다만, 그것도 잠시 1950년 3년간의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내전을 겪었습니다. 수백 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모든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잔인한 전쟁이었습니다. 어떤 전쟁이건 모든 전쟁은 참혹하고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차이는 있습니다. 똑같은 전쟁이었지만, 한국전쟁이 일본제국의 태평양전쟁과 다른 점은, 자기 국토에서 내전이 벌어졌다는 점이며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였다는 점입니다. 전통은 단절되었으며 문명은 사라졌습니다. 일본이 다시 번창하기 시작할 때 한국은 지옥이었습니다. 가난했으며 난폭했고 무엇이든 금지되었으며 수십 년 동안 군사독재가 이어졌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활력을 바랄 수는 없었겠지요. 불가능했겠지요. 절망적입니다.


그런데 어떤 인종이건 어떤 민족이건 어떤 나라 사람이건 인류는 참 신기하고 기묘한 존재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능력이 우리 인류에게 있습니다. 어떤 때는 그 인류가 일본인이며, 어떤 경우 그 인류가 한국인일 뿐입니다. 1987년 드디어 군사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행 자율화가 시작된 것도 1987년이었습니다.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 정부에 의해 정식으로 개방된 것은,

고작 1998년부터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늦은 나이에 군대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일본문화의 수입이 합법화된 것입니다. 양국의 제한 없는 민간교류의 역사는 여러분 나이와 비슷한 정도입니다.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나이이지요.


어쨌든 500년간 억압된 한국인의 활력은 고작 수십 년 전에 해방됐습니다. 그게 한국, 한국사회, 한국인의 다이내믹을 만든 원천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50년간 억눌린 활력이 아니라 500년간 억눌린 활력입니다. 그냥 터진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는 개인적으로 21세기 한국사회는 이제 막 ‘현대’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뒤늦게 급행열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생기겠지요. 한국인으로서 한국사회에 살다 보면 실제로 다양한 부작용을 목격합니다. 제가 요즘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바로, <다이내믹의 부작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멈추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근 코디정이 편집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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