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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상상 더하기

꿈은 꿀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것

by 홍윤표

12월이다. 어김없이 올해의 끝이 찾아왔고

2022년을 짧게나마 어떻게 살았는지

반추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특별히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근 3년 만인가 싶다

소소하게 종로에서 소주 한잔 하러 가는 길이

여느 때 보다 가볍다. 왜냐면 난 육아 대디니까.


지하철을 몇 개월 만에 타보는지 모르겠다.

항상 카시트에 아이들을 태우고 유모차까지

트렁크에 실으며 자차로 이동했으니 말이다.

핸드폰을 보면서 월드컵 기사를 읽는다. 활자를

온전하게 읽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이 낯설다.

40분 정도 지났을까. 익숙했던 종각역 4번 출구로 내 눈보다 발이 서둘러 앞장선다.


다들 이미 모여서 한 잔 하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이 후래자 삼배(늦게 온 사람 3잔 원샷하기)

를 나에게 권유한다. 지하철이 막혀서라는 구태의연한 농담을 던지며 너스레를 떨어보지만

글쎄.. 오늘은 3잔 원샷이 좀 당긴다.

못 이기는 척 술잔을 받아들인다.


온전히 의자에 앉아 수저를 이용해

음식을 먹는 게 얼마만인가.

두 돌 지난 첫째는 요새 부쩍 젓가락질 연습에 재미가 붙어 아빠한테 계속 반찬을 알맞게 잘라달라고 한다.

동시에 내 왼팔에는 초병 나간 군인의 k-2 소총처럼 둘째 딸이 견착 되어 있다.

10개월 된 둘째는 자기 주도식에 재미를 붙여 밥알을 연신 자기 입에 가져간다.

그중 7할은 내 무릎의 몫이긴 하지만.


즐겁다. 간만의 여유가.

기분 좋다. 친구들 목소리와 적당한 취기가.

근처 mz세대들이 많이 간다는 포차가

있다 해서 2차로 자리를 옮기기로 한다.

술자리가 무르익는 것과 별개로

슬슬 걱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애들 잘 놀고 있을까?' '여보가 힘들지 않을까?'


가는 길에 영상통화가 울린다. 여보가 전화하는 걸로 봐서 첫째가 걸었는 게 아닌가 싶다

'여보세요?'

'어디야?' 역시 아들이다.

영상통화로 걸었는데 내 눈에는 뿌연 안개뿐이다.

아들이 휴대폰을 자기 얼굴에 문대는 중인가 보다.

'아빠 이제 집에 갈 거야?'

'.....어디야?'

요즘 말이 조금씩 트이는 아들은

연신 아빠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는다

'아빠 좀 있다 갈 거라니까?'

' ....어디야?'


돌연 아들이 '어디야?'소리가 점점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림이 느껴진다. 참 이상도 하지?

아들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또렷하고

입김이 느껴질 정도로 선명하다니.


이윽고 아들이 내 배 위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지고 둘째도 이에 질세라 오빠의 꽁무니를

좇고 있는 게 아닌가.


'아.... 꿈이었구나...'


꿈 속에서나마 연말 송년회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잠결에 문득 MZ세대들이 좋아하는 포차는 어떤 곳인지 가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무사히 아들, 딸과 기상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Adieu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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