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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Quiz? Yes I Can!

by 홍윤표

어렸을 때 TV에서 하는 퀴즈프로그램을 참 좋아했다. 요즘처럼 다시보기가 있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저녁시간에 본방사수하여 본 프로그램 중 단연 으뜸은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이다. 책으로도 출간된 이 프로그램은 패널들의 재치있는 대답과 손범수 아나운서의 맛깔나는 진행이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외에도 ‘가족오락관’, ‘도전!추리특급’ 등의 예능 퀴즈와 ‘도전!골든벨’, ‘EBS장학퀴즈’,‘머리가 좋아지는 TV’ 등의 교양 퀴즈를 즐겨보았던 기억이 있다.

퀴즈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도 있지만 지적 정보의 축적에 따른 자기 만족감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내용이 퀴즈에 나오면 자신감 있게 문제를 맞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다시금 확인하며 안도했고,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새로이 그 정보를 나만의 지식 창고에 채우는 풍성함을 맛보았다. 스무고개 퀴즈를 할 때 재치있는 문제를 내는 친구의 센스와 번뜩임에 감탄하는 나. 끝말잇기 퀴즈를 이기기 위해 화학기호를 외우는 나의 모습. 넌센스 퀴즈의 정답을 듣고 박장대소하며 ‘나중에 써먹어야지’하며 일기장에 기록하는 소년. 그러면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 모습은 그저 퀴즈 매니아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 중고등학생이 되어 입시 스트레스에 마주한 나는 기계처럼 반복되는 문제풀이로 인해 퀴즈가 주는 매력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오답은 곧 도태와 낙오를 의미하고, 반드시 오답노트라는 처방을 받아야 했다. 대학 시절, 매주 강의시간 전 풀어내야 했던 ‘POP 퀴즈’도 많이 틀리면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려웠고 시간이 갈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졌다. 심지어 취업하려면 1895년 갑오개혁이 대한민국 근대사에 주는 의의와 중요성보다는 ‘갑오개혁이 일어난 년도’를 우선적으로 알아야만 했다. 유머와 재치, 위트와 해학을 주며 나에게 인생 속 한 토막의 여유를 선사한 퀴즈는 이렇게 남보다 더 많이, 더 빨리 맞추어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미션처럼 바뀌어 버렸다.

이렇다 보니 순수하게 퀴즈를 풀고 즐거워 하던 나의 모습은 지난 날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버렸다.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는 문제가 나오자 조금이라도 빨리 맞히려고 달리던 차를 잠시 정차하고 문자를 입력하는 내 모습. 100만원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중세 시대 귀족들이 머리에 밀가루를 뿌렸는지, 석회를 뿌렸는지 급하게 검색창에 검색하는 내 모습은 그저 외적 보상만을 좇는 욕심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별안간 뒤늦게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묘하게 일렁이는 민망한 감정은 내가 감내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가 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저 퀴즈를 풀었던 그때가 그립다. 그러나 흘러간 세월을 거스를 순 없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마냥 지켜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퀴즈가 나에게 주는 숨겨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만 아직은 마주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수많은 수수께끼를 현명하고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주어지는 선택의 순간에 좀 더 신중하고 진지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퀴즈를 하나 내본다.


‘오늘 저녁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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