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좀 이상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어 참 다행이야.
교대에서 심화과정으로 '유아 및 특수교육'을 전공하였다. 초등교육 전반에 걸친 수업을 4년 내내 듣지만 학기마다 전공심화과정으로 유아 및 특수교육을 번갈아 수강했는데 그때 당시 대한민국 특수교육에서 이슈였던 단어는 'ADHD'였다. 주의력이 부족하고 산만한 학생들을 진단하는 학명이었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저 학습부진과 관련된 용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데 그 이후로 ADHD는 학술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반에 녹아들었고 이는 하나의 사회적 풍토로 자리매김하였다. 졸업 이후 학교에서도 심심치 않게 ADHD 학생을 만나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마주했는데 대체로 특수교사, 학부모와 상의하여 진정제를 먹이는 것으로 해결했다. 왜냐하면 도대체 정상적인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이가 산만하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진절머리라는 단어가 왜 생겨났는지 이해가 되었을 정도로.
『이 땅에 ADHD로 태어나』는 서른두 살에 성인 ADHD진단을 받은 작가가 ADHD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나는 도대체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웹툰으로 담아낸 여정의 기록이다. ADHD 당사자나 그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을 해소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가닿았는지 이 시리즈는 장장 9개월간 연재되어 사람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은 툭하면 "나 ADHD인가 봐"라며 자조 섞인 말을 하는 이들에게 ADHD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집중력'이고 ADHD는 집중력이 떨어지는 병이 아니라 집중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라는 것이었다. 이 책은 ADHD 병뿐만 아니라 하나의 밈으로 조롱받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노력의 산물이다. ADHD로 고통받는 당사자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것이 나로 인해 옅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작가는 병원약사로 일하면서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인지했다. 그냥 조금 남들과 성향이 다르다고 인식해 왔던 삶이 누군가를 해할 수 있는 상황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특히 항암치료제를 조제하는 과정에서 이 생각은 극에 달했다. 생명을 다루는 절체절명의 상황, 자잘한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는 그곳에서 그녀는 퇴사를 결심하고 정신과 치료를 다짐한다. 다행히도 이런 그녀의 모습을 편견 없이 받아주고 지지하며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뇌에 힘을 쏟아부어 말과 행동에서 실수들을 줄여나갔다. 그 덕에 그녀도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어루만져주는 멋진 웹툰을 그려낼 수 있지 않았을까.
ADHD가 꼭 단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와 관련된 인물들의 삶과 이야기를 추적해 보면 알 수 있다. ADHD를 갖고 있는 의사 제프 카프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주의력결핍과 산만함이 '몰입'의 정수로서 작용함을 주목하였고 12가지로 분류해 『릿LIT, 완전한 몰입』이라는 책을 완성했다. 비스카차 작가도 마찬가지로 ADHD의 핵심 특징은 몰입력이며 이러한 과몰입이라는 특성이 조절과 적응이란 키워드를 잘 만나며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하였다. 수년 전 교실로 돌아가, 우리 반 ADHD 학생을 돌이켜보면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유난히 만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그 아이는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혹시 몇 년 뒤에 매스컴에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참 반가울 것 같다.
그렇게 자기 자신이 ADHD라는 것을 인정한 후로 작가는 그녀의 엄마, 외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딸의 말과 행동에서 투영된 묘한 동질감에 대해 좀 더 선명하게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다. ADHD는 전 생애를 통해 우리 삶에 찾아올 수 있다고. 엄마의 자식 사랑과 내가 엄마에게 바라는 것이 숱하게 평행선을 달려왔던 것도, 이 글을 과연 엄마에게 자신 있게 선사할 수 있을까라며 망설이게 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가 결국 용기를 내어 수많은 사람들이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것을 보듬어주었듯이 지금도 학교 어딘가에서 애쓰고 있을 어린 발봉이들을 위해 나도 관심을 좀 더 갖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너의 삶에 짐이 되지 않게. 작은 힘이 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