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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페이즈망│당연한 건 절대 없어

'낯설게 보기'를 통한 프랑스 철학에 자리 잡은 인간 해방

by 홍윤표

2025년,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한 초대형 밈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탈리안 브레인롯' 시리즈였습니다. 이것은 틱톡,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초스피드로 퍼져나가고 관련 콘텐츠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죠.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지라 알고 싶지 않아도 쉬는 시간만 되면 브레인롯 이름을 줄줄이 읊어대는 아이들을 통해 '트랄랄레로 트랄라라', '퉁퉁퉁 사후르' 같은 캐릭터는 알 수 있었고요. 그리고 며칠 안되어 유치원생인 저희 아들, 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더니 편의점이다 다이소 같은 곳에 굿즈가 줄지어 전시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더군요. 그런데 이런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를 보니 유명한 작품 하나가 생각납니다. 바로 프랑스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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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브레인 롯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형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함으로써 잠들어 있던 상상력을 깨우는 것인데요. 이처럼 일상적인 환경에서 사물을 떼어내어 전혀 예기치 못한 배치를 통해 새로운 신비로움을 자극함을 나타낸 용어가 바로 '데페이즈망(depaysement)입니다. 강주희 및 이대규(2023)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글 없는 그림책을 통한 논문을 통해 '데페이즈망'이란 '나라나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초현실주의적 화법을 가리키는 말이라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나라', '고향'을 일컫는 단어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예술적 화법까지 전개가 어떻게 가능했는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결이 아예 다른 단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이는 20세기 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회, 예술적 큰 변화를 살펴보면 답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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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을 치릅니다. 이 전쟁 속에서 많은 프랑스 지성인들은 그동안 믿어왔던 '이성' 그리고 '합리주의' 철학에 반기를 들고 이것들이 오히려 파괴를 불러일으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성을 거부하고 무의식, 꿈이라는 환상의 세계를 탐구하는 이른바 '초현실주의' (Surrealism) 운동이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일어납니다. 초현실주의 사상은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억압된 인간 정신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서 기능하게 되고 그 중심에는 데페이즈망이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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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페이즈망은 단순한 화법을 넘어 흄, 푸코 등의 프랑스 철학적 전통을 논한 학자들의 생각과 더불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상의 인과관계나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물을 낯설게 봄으로써 사물의 본질을 재발견하고, 고착화된 사회적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마련하죠. 마그리트의 작품도 이와 같은 '낯설게 하기'의 정신을 활용해 언어와 시각의 불일치를 보여주면서 프랑스 사회의 지적 유희, 비판적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합성 및 크기의 변화를 통해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하여 '탈현실적' 환상성을 부여하는 것, 서로 다른 것의 자유로운 결합을 통한 생성은 창의적인 발상을 돕는 훌륭한 도구로 활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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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이러한 '데페이즈망'은 그 활용 가치가 비단 미술 시간으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이 외부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결합 속에서도 얼마든지 지식을 생산하고 변형하다는 것을 알려주어 내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심리적 자유를 느끼게 하는 '안식처'(sanctuary)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죠. 유아 및 초등의 이음교육에서 자주 활용되는 '데이비드 위즈너'의 글 없는 그림책 시리즈에서도 데페이즈망 기법은 중요한 서사적 장치로서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나라 및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에서 비롯된 단어 하나는 곧 프랑스의 합리주의에 대한 저항의식을 만나 인간 정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초현실주의의 핵심 기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SNS 속 밈은 하나의 작은 해프닝으로 이제는 그 영향력이 잠잠해졌지만 다가올 AI 시대를 고려해 보면 데페이즈망이 또 어떻게 고정관념을 깨뜨릴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다르게 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데 원동력으로서 데페이즈망을 활용하는 것, 그리고 딥페이크를 비롯한 현실과 상상의 간극을 악용한 사례들을 처벌할 법적 잣대가 사회 전반에 올바르게 자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당연한 건 절대 없다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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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아빠 육아 시점 』출간 작가. 15년차 서울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이며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ENFJ입니다. 인스타그램 : @tsensrigh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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