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가서 정기검진을 하면 늘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듣던 말이었다. 그렇다. 내 사랑니는 예쁘고 올곧게 자라 있는 사랑니가 아니었다. 4개의 사랑니 모두 저마다 자기주장을 하며 잇몸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고 서 있는 게 귀찮았는지 모두 누워서 자라고 있었다. 동네 치과에서는 모두 상급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기를 권장하셨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뭉개고 있던 사랑니가 똬리를 틀기 시작할 때, 난 비로소 대학병원 통합치료센터를 방문하기로 했다.
종합병원의 특성상 방문 첫날부터 바로 수술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먼저 접수처에 가서 신원조회를 하고 등록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원무과에 가서 시키는 대로 X-ray 사진도 찍고 기저질환여부 등을 체크했다. 그리고 기다림. 오랜 기다림 끝에 담당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이전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사랑니의 상태를 보고 마음 아파하셨다. 특히 오른쪽 턱 사랑니는 어금니와 자꾸 어긋나게 맞물려 있어 음식물이 자주 끼는 상태였다. 그래서 우선 오른쪽 턱 뒤에 자리 잡은 사랑니를 발치하기로 하고 예약날짜를 정했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른 뒤, 수술 당일이 되어 조퇴를 달고 병원으로 향했다. 매 끼니마다 양치 후 치간 칫솔을 달고 살던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해방감과 함께 아프지 않게 발치가 잘 되어야 할 텐데라는 걱정과 불안감이 교차했다. 그래도 종합병원에서 뽑으면 짧은 시간 안에 확실히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일련의 사례를 듣고 용기를 내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11시 집도가 시작이었는데 10시까지 도착하여 수술 전 치러야 할 절차를 성실하게 수행했다. 그리고 마취 주사를 놓고 의사 선생님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다.
"24번 진료실, 수술 들어가실게요"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주치의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두 분의 보조를 해주실 선생님까지 총 3명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치과라는 곳은 참 신기하다. 그전까지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수술이 임박하자 난데없는 초조함과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자리에 차분히 누워 입을 벌리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저 아프지 않고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
기계가 이를 긁는 소리, 침을 빨아들이는 소리 외에 묘한 정적이 흐른다. 그리고 들리는 우두득 소리와 함께 사랑니 발치가 시작되었다. 통증은 없었지만 무언가 내 입안에서 정신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었고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가 마치 백색소음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몇 분만 있으면 수술이 잘 마무리되어 집에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쨍그랑 소리가 났다. 10초가량 남짓 화들짝 놀랐던 순간이었으나 이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함과 함께 주치의 선생님의 나지막한 멘트가 내 귀에 들어왔다.
"정신 차려라. ㅇㅇ야. 팽 당하는 거 한 순간이다."
아마 수술을 도와주는 보조 의사에게 건넨 말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별 다른 해프닝 없이 수술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절차에 준해서 약을 처방받고 수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운전하며 돌아오는 내내 마취가 풀려서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은 주치의 선생님의 멘트였다. 단순히 사랑니를 뽑으러 갔을 뿐인데 드라마 '미생'을 보며 느꼈던 감정과 마주할 줄이야. 치과의사들의 세계에서도 엄연히 서열이 존재하고 그 생태계를 유지하는 규범과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들인 만큼 좀 더 체계적인 규율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1주일간의 시간이 흘러 수술했던 부분에 자리 잡은 실밥을 제거하러 다시 한번 병원에 방문했다. 지난주 수술을 보조해 주시던 선생님께서 실밥 제거 작업을 마무리해 주셨다. 차분하고 상냥한 말투로 안내를 자세하게 해 주시는 모습에서 지난주의 당황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을 빠져나오며 그 의사 선생님의 노련함과 의연함에 마음속 한편에서 박수를 보냈다. 나도 저런 프로페셔녈을 갖춰야지.